배낭에서 꺼낸 수학을 읽고

배낭에서 꺼낸 수학을 읽고
학교 도서관 신간코너에 꽂혀있는‘배낭에서 꺼낸 수학’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배낭과 수학이라는 너무나 안 어울릴 것 같은 단어의 조합이라 더 강렬하게 내 시선을 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꺼내든 이 책은 문명이 시작된 이집트에서부터 수학 보따리들을 풀어놓았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경사 각도가 51.52˚라고 한다. 왜 하필 이 각도일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피라미드의 경사가 더 급했다면 피라미드는 현재보다 더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무너지기도 쉽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가장 안전하면서도 최대한 높이 피라미드를 쌓기 위해 이상적인 각도를 생각해냈다. 이 각도는 우리도 간단한 실험만으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마른 모래를 손으로 한 움큼 집어 조금씩 흘리며 쌓다보면 원뿔 모양의 모래 산이 생기는데, 이 산은 더는 높이 쌓이지 않고 흘러내리는 때가 온다. 바로…(생략)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것은 없을까 주위를 둘러보는 내 시선이 달라졌다. 무심코 바라보던 것들에서 의미를 부여해본다. 수학자들의 시선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막연히 흥분되었다. 저자는 이집트를 떠나, 그리스의 파르테논에 도착하였다. 이집트의 수학이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의 수학은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탐구해 논리적으로 증명하려고 했다. “왜 그런가”, “다른 경우에도 그러한가”, “모든 경우에 항상 성립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탐구했으며, 논리적 증명을 통해 모든 경우에 항상 성립하는 원리만을 이론으로 인정하고 정립하고자 하였다.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통해 기하학의 원리를 증명했던 탈레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유클리드는 그리스의 수학자들이다.
태양의 신 아폴론이 내린 수학 문제로 유명한 “제단의 부피를 두 배가 되게 하라”는 흥미로운 작도 문제는, 기원전 5세기부터 그리스의 수학자들이 연구한 이래로 수많은 수학자가 도전해오다가 19세기 프랑스의 한 수학자에 의해 작도 불가능함이 증명되면서 허망하게 마무리되었다. 이처럼 2000년 동안 풀리진 않는 문제로 남아 수학자들을 괴롭히던 ‘작도 불능 세 가지 문제’는 위의 제단 문제에 해당하는「주어진 정육면체보다 부피가 두 배 큰 정육면체 만들기」와 더불어「주어진 각을 삼등분하기」,「주어진 원과, 같은 넓이를 가지는 정사각형 만들기」가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풀어온 문제들, 시험을 치러 온 문제들... 내가 접해온 모든 수학 문제들은 답이 있었는데, 불가능한 것이 있다니 참 신선하게 느껴졌고, 오히려 묘한 안심이 되고, 수학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탈리아의 수학에서, 타원형으로 만들어진 콜로세움이 나의 시선을 한참 붙잡았다. 특히 이탈리아는 재작년에 직접 다녀왔기 때문에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콜로세움과 판테온, 성 베드로 성당에 담겨진 수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영국에서는 ‘속삭이는 성당’이라고 불리는 성 바오로 대성당이 있는데, 그곳에 담긴 수학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대성당 천장은 돔 형식의 타원형으로, 대성당 회랑의 한 지점에 있으면 주위에 말하는 사람이 없어도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신기해서 책 속에 더 빠져들어 갔다. 그 이유는 초점에서 낸 소리가 타원형 천장에 반사되어 다른 초점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가까운 곳보다 오히려 멀리 떨어진 초점에서 더 잘 들린다고 한다.
오늘날 이러한 타원의 성질은 신장결석 파쇠기 같은 의료기기에도 응용된다고 한다. 타원의 한 초점에 결석을 위치시키고 다른 초점에 충격파를 발생시켜 그것이 타원형 반사 장치에 부딪쳐 결석으로 모이게 하고, 결석에만 충격파가 닿아 인체의 다른 부분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면서 결석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수학이 단순히 수량을 세는 것뿐만 아니라 토지의 측량에서 시작하여 과학의 언어가 되었고, 건축물의료기기에까지 응용되는 상황들을 알게 되면서 수학의 힘에 대해서 경외감이 들었다. 또한 수학이 교과서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자의 배낭여행 종착지인 인도수학은 이전부터 0의 발견과 십진법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책을 통해,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된 힌두 경전들은 운율을 지닌 시의 형태로 써서 암송하기 좋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경전의 시문들은 핵심을 전달하기 위해 압축적 언어, 즉 약어와 기호가 사용되었으며 그래서 수학 역시 약어와 기호를 사용한 시문 형태로 썼는데, 바로 이런 형식이 대수학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의 한 부분인 학문도 그 사회의 종교와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저자는 힌두 명절인 홀리 축제를 며칠 앞둔 날, 인도의 교통수단인 릭샤를 타고 시장을 통과하며 카오스 이론이 떠올랐다고 한다. 카오스 이론이 뭔지 궁금해 집중해서 읽어 보았다. 카오스 이론이란 무질서의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것으로, 매우 불규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듯 보이는 현상에서 규칙을 찾아 예측하는 것이라고 한다. 1963년 미국의 기상학자이자 수학자인 로렌츠는 기상 예측을 위한 방정식에서 날개를 펼친 나비 형상의 ‘로렌츠 끌개’라는 카오스 이론 그래프를 발표했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수학의 발자취는 과히 놀랍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 가다니...어쨌든 릭샤는 그 많은 인파를 헤치고 안전하게 나오며, “사고가 나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것이 기본 규칙이라고 말했다.” 한다. 저자의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명절을 준비하는 인도의 시장이 정겹게 떠오른다. 이렇듯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인도 등의 나라는 과학적으로 우수하고 예술적으로 탁월한 문화유산이 많은데 그 비밀은 ‘수학’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토대로 빛나는 문명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배낭여행을 시작하던 저자가 이집트의 파피루스 서문에서 읽은 “세상 모든 지식의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 그것은 수학이다.” 라는 글귀가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장을 덮은 지금까지 계속 내 자리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