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려 위인전기를 읽고나서

장기려 위인전기를 읽고나서
요즘 가장 인기있는 직업 중 하나인 ‘의사’. 그리고 요즘 내가 가장 즐겨보는 드라마 ‘뉴하트’도 바로 의사들의 이야기이다. 환자의 건강을 생각하고, 살리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라 이야기 하는 ‘최강국’ 이라는 인물에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것은 그런 인간답고 환자중심의 의사를 만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는게 아닐까
학창시절 이후 오랜만에 읽은 위인전이 바로 이 ‘의사’ 이야기이다.
위인전이라고 하면 왠지 따분하고, 실제로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들의 일대기를 엮은 소설... 세상의 단맛, 쓴맛을 알고 나서는 그런 위인전의 내용이 순수하게 다가올 리 없었다. 그만큼 나는 세상의 구린내를 많이 맡아 봤다.
집집마다 위인전이 없는 집이 없지만, 그 위인전 속의 모습은 강감찬이나 을지문덕, 이순신 같은 구국의 영웅이거나 아니면, 비천하고 가난한 신분에…(생략)

교회도 보수교단이라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일간지에 기고했다. 북한 최초의 박사이자 김일성 주치의를 지냈던 사람으로 그 당시 국내 최고의 외과 의사였다. 그런 그가 한국전쟁으로 고향인 평양을 떠나 피난민으로 부산에 와서는 피난민들을 위한 무료 병원을 세우게 된다. 그것이 바로 천막부터 시작된 ‘복음병원’이다.
가족과 이별하고 나서도 그는 의사의 본분을 그렇게 실천하고 있었다.
[장기려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든 따지지 않고 딸린 식구 수대로 월급을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식구가 열명이나 되는 전종휘가 제일 많은 월급을 받았고, 아들 하나만 데리고 있던 장기려는 운전기사 김정일과 같은 돈을 받았다. (중략)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돈 벌자고 하는 병원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일용할 양식이 있음에 감사합시다. 돈 쓸데야 식구 수대로 생기는 것이지, 지위기 높다고 생기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아들하고 단둘이라 밥이나 먹으면 더 필요할 것도 없습니다.”] - 본문 중에서
[꿈에 그리던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오히려 정부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은 청십자병원까지 찾아와서는 다녀올 것을 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기려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산가족이 다 올라가서 가족을 만날 수 있다면 나도 가겠지만, 그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으며 가야 하는 거라면 가지 않겠소.”] - 본문 중에서
내가 가장 감명있게 봤던 구절이다. 지위가 높다고 돈 쓸곳 더 생기는게 아니라고 하면서 직원들과 식구수대로 월급을 나눠 갖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가 공산주의 사회에서 어느정도 생활했던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종교활동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어떤 이익도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덴마크는 평소에 사람들이 돈을 벌 때마다 세금으로 따로 떼어서 의료비를 비축해 놓았다가 누구든지 아프면 병원에 가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는 겁니다.“
듣고 보니 장기려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북한 공산당 정부는 노동자, 농민, 교직원을 비롯한 공무원들을 의무적으로 의료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달이 얼마를 걷어 두었다가 병이 나면 무료로 치료해 주는 제도를 일찍부터 시행하고 있었다. 채규철이 다시 말을 이었다.
“돈 없는 환자라고 해서 무료로 치료해 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약이든 입원실이든 무한정 제공해 줄 수는 없을테니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겠지요. 그러니까 차라리 조합원을 모아서 평소에 조금씩만 조합비를 넣게 하고 그 돈으로 병이 났을 때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 본문 중에서
그렇게 시작된 것이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이 가능하게 하였고, 각 지역별로 운영되고 있고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지역의료생협’의 모체이다. 청십자조합의 외로운 노력에 자극을 받은 정부가 드디어 의료보험 시행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1977년부터는 500인이 넘는 대규모 사업장에서 직장 의료보험이 시작되었고, 1979년부터는 300인이 넘는 사업장과 공무원, 교직원이 의료보험 대상자에 포함되었다. 그 뒤 1988년에 농어촌 의료보험이 시행되고, 1989년 여름부터는 도시 지역 의료보험이 실시되어 전 국민이 정부가 하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을 이루게 되었다. 그렇게 전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열리면서 청십자조합은 해체되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두고 피해다니는 ‘놀라운’일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뒤집히고, 그를 보살피는 ‘당연한’ 일이 실로 ‘놀랍고 위대한’ 일로 뒤집히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험한 길을 골라 다닌 장기려를 우리는 ‘바보’라고 하고, 이제 다시 ‘참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장기려의 삶에 대해 경의와 찬사를 보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삶에 비추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는 것이다. 우리시대의 가진자들과 지식인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보여준 ‘장기려 박사’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보다는 ‘얼마나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는가’ 라는 장기려 자신의 깨우침을 다시한번 우리안에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