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비장전을 읽고나서

배비장전을 읽고나서
드디어 등장했다, 풍자와 해학~!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마음속에서 올린 탄성이었다. 여러 작품을 대하기 전에, `고전소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익숙한 두 이름이 작품 곳곳에 들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책으로 읽기 보단, TV에서 명절 때면 방송되는 마당놀이에서 자주 `배비장전`을 봤었는데. 배꼽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원작도 역시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재미있는 부분(주로 배비장과 방자의 위치가 뒤바뀐 듯한 대화나, 배비장이 애랑의 집에 가서 벌이는 해프닝들)이 아주 많았다. 그런데, 한 가지 달랐던 것은 마당놀이에서는 배비장의 부인이 혜성처럼 나타나 배비장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배비장이 반성하고 아내에게 돌아가는 줄거리로 되어있었는데, 원작에서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이는, 예전에 이 작품이 읽혀지던 때에 주제로 삼았던 것을,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수용하기에는 거리가 있…(생략)

게 짐작해볼 수 있다. 다음으로, 신관사또로 들어오는 김경 또한 긍정적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다. 우선 부임하자마자 맨 처음 행한 것이 잔치이다. `앵무같은 고은 기생 연영 맞져 골라 뽑아 물색으로 단장하여 동문 안 대도상으로 쌍쌍이 늘어서고` 물론 김경이 `춘향전`의 변학도처럼 기생들을 불러모아, 한 명씩 인사를 받은 것은 아니며, 이렇게 처음 부임했을 때. 이러한 잔치는 당연한 것이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당연함`도 비판받을만한 소지는 있는 것이다. 새로 부임한 사또, 관리면 응당 업무를 인수인계받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의심은 또한 배비장을 시험하는 것에서도 품게 되었다. 관리라는 사람이 아랫사람을 놀리는 작전을 계획하고, 그것을 위해서 한라산으로 화전놀이나 가고... `사또와 모든 비장이 명기색기 술을 부어 감홍로 계당주 취케먹고 춘흥겨워 노닐적에`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비록 직접적으로 김경을 비판하는 표현은 한 군데도 없지만, 그 또한 민중들의 눈에는 그리 좋게 보였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역시 배비장이다. 그가 비판받는 중심적인 이유는 다음 대사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애랑에게 애걸복걸하는 정비장을 보고 `허랑한 장부로다. 이친척원부모 천리밖에 와서 아녀자에 대혹하여 저대지 애걸하니 체면이 틀리었다. 우리야 만고절생 아니라 양귀비 서시라도 눈이나 떠 보게 되면 바색의 아들이다.`라 말한다.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단어는 `체면`일 것이다. 양반이란 어떤 존재인가 체면만 차리는 존재이다. 이는 곧 양반의 알고 보면 허위로 가득한 권위와 명분을 비판하는 것이며, 그것은 애랑을 보면서 그의 그러한 말이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리는 것을 근거로 들 수 있다. 그 비판의 방법으로 쓰인 것이 `풍자`인데 비꼬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체면에 어긋난다는 것으로 정비장을 비판했던 배비장은 남의 집 아녀자의 (과부도 아니고)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반하여, `수절고행 부질없고 활인적덕 으뜸이니` 라는 구절이 들어있는 편지를 보내어 수작을 거니, 자신의 말은 완전히 빈 껍데기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내용상의 비꼬기와 더불어 표현상의 비꼬기로 대표적인 것을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방자에게 점점 애걸하는 태도를 보이니 방자의 말공대는 점점 없어진 것들과, 애랑의 집으로 갔다가 방자가 그녀의 남편인 것처럼 호통을 치니 그에게는 위기의 순간임에도 `문자는 놓치 아니하고 쓰던 것이었다.`는 구절이 자주 반복되어 나오는 것을 들 수 있다. 참 흔하게 들어온 말이다. `해학과 풍자`란 것. 하지만, 작품 속에서 직접 느끼면서, `어떻게 이런 수법을 사용함으로써, 후련히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해낼 수 있었을까` 하는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러한 방법을 나도 배워서, 겉으로는 마냥 자유스러운 듯 보이지만, 온갖 규율과 법칙으로 가득한 이 사회를 향하여 한방 날려주고 싶은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런 식으로 문제를(지배층의 횡포라고나 할까.)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순간적인 시원함만 안겨줌으로 `혁명`이 일어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든다. 우리 나라의 갑오경장을 통한 제도적인 신분타파는 어쨌든 외세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서양의 여러 시민혁명들에 비하여 한참이나 늦었으며, 계속 쇄국정책을 고수했을 시에는 갑오경장보다 늦어졌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우리 나라를 근대화시켜주었다는 이상야릇한 논리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내용들과 더불어 여러 고전 소설 작품들에 나타난 `풍자`와 `해학`의 양상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며,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일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