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오두막 편지
동틀 무렵, 구름을 승무를 추는 여승의 고깔이라도 되는 듯 쓰고 있는 산, 그리고 태곳적부터 일어난 일들을 노래하며 흐르는 맑은 물은 내게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새벽에 피어오르는 땅안개와 우리에게 항상 모든 것을 주기만 하는 흙의 정겨운 냄새는 내게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그렇지만 내가 이러한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다. 생활을 하다보면 하루 종일 흙을 한번도 밟아보지 못하는 날이 많은 것 같다. 집은 공중에 떠있는 셈이고 현대 문명과 과학 기술이라는 미명 아래 생산된, 나를 잃어버리게 하는 많은 것들에 둘러싸여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법정 스님께서는 강원도 산중에서 홀로 생활하신다. 다른 사람이 찾아오지 않도록 위치도 밝히지 않으신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모든 것을 손수 지으신다. 집도 텃밭도 모든 도구들도……. 97년 봄에도 흙방 하나를 일꾼 두…(생략)

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시계를 확인한다. 학생들은 지루한 수업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며 한 시간에도 몇 번이나 시계를 본다. 모든 사람들이 무슨 기계라도 되는 듯이 톱니바퀴처럼 아귀에 꼭 맞아 들어가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에 시계를 백 번도 넘게 보는 것 같다. 나도 가끔은 시계가 원망스럽다. 고작 바늘이 돌아가면서 눈금을 가리키는 것이 전부인 시계에 내가 묶여서 아등바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현재의 나에게는 이 세상에 맞춰서 살아가기 위해서 시계가 꼭 필요하다. 사실 많은 일들이 시간에 맞춰져야만 편리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수백만 분의 일초라도 좀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우주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고 그것을 알고자하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그것이 그렇게도 중요한 일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겨울에 따뜻한 물에 찻잎을 우려서 마시면 차가운 몸이 찻잔에 닿은 손부터 따뜻하게 녹는다. 새벽 차밭의 이슬을 머금은 것 같은 차의 향은 은은해서 좋다. 법정 스님께서도 차를 무척 즐기신다. 그래서 차밭에도 가보시고 그 주변의 찻집에도 들르셨다. 스님께서는 다기도 무척 중요하게 여기신다. 자연과 함께 하시는 스님께서 차를 즐기시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나도 차 마시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아직은 해보지 못했지만 운치 있는 정원에서 차의 은은한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잊고 소박한 웃음을 지어 보일 수 있는 작은 행복이 나에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소박한 다기를 직접 만들어 보고도 싶고, 가끔은 다른 사람이 만든 다기를 감상해보고 싶다. 그런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느껴보고 싶다.
한때는 나의 소망이 건축가가 되어서 아름다운 서양식 주택을 짓고 그곳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법정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스님이 사시는 곳 같은 작은 오두막집에서 갈빛 느낌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스님의 생활이 너무 부러웠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숲 속의 동물들과 살아가는 스님의 생활이 너무 좋아 보인다.
난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무언가 하나를 선택하기가 힘들다. 아마도 이것은 나의 욕심과 소유욕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도 조금은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언젠가는 모든 것을 남겨둔 채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우리의 삶은 커다란 세상에 산들 바람이 한 번 부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법정 스님을 한 번 만나 뵐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인 허영심 때문에 그분을 만나고 싶어 하고 있다. 어쩌면 나도 그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접 만나서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창문이 없는 방에 한 줄기 빛이 비춰지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 방엔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벽에 금빛 태피스트리를 짜놓았다. 아직은 하루 중 잠시나마 자연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일주일 정도는 법정 스님처럼 자연에 파묻혀서 생활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