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쓰기 -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고서 독서편지

박사가 사랑한 수식
할아버지께
어느 날 엄마를 따라가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우리엄마는 가정부로 들어갔는데 최근 수년간 9명이나 되는 가정부를 갈아치웠단 소리를 듣고 처음에 할아버지가 멀게만 느껴졌어요. 꼭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나오는 까다로운 영국신사 필리어스 포그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집에 하인이 수차례 바뀌었는데, 그 사람은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인데 그 뿐만 아니라 욕탕에 물의 온도까지도 정확히 해야 했던 굉장히 꼼꼼하면서도 제가 보기엔 까다롭게 느껴졌거든요. 물론 그 책의 주인공도 책 제목 그대로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하면 여러 가지 이변을 통해서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어요.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났고요. 어찌됐건 할아버지는 생각과 달리 처음부터 그 주인공처럼 냉철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언제나 늘 마음씨가 넓으신 분이었으니까요. 제가 처음에 착각했…(생략)

고, 본받고 싶었고요. 할아버지가 무조건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물론 1시간 전에 만난 사람을 잊게 되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 입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있어요. 잊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나머지, 잊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 너무 많은 나머지, 할아버지가 부러웠고요. 하지만 분명, 할아버지처럼 된다면 저는 아마 이때와 같이 말할 수 있다고 장담 못해요.
박사님은 수학을 사랑하시지요. 저는 박사님을 사랑해요. 그리고 저는 수학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이 모든게 할아버지 덕분이에요. 박사님도 사람에 비해 수식에 대해 더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더 같아요. 참 이런 면을 토대로 수식에 대한 박사님의 사랑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수의 가학을 듣고 있으면 두꺼운 책밖에 연상되지 않았던 ‘수학’이란 학문이 어느새 어디서나 누워서도 편하게 볼 수 있는 만화책과 같게 느껴져요. 그래서 인지 매일같이 다음날 할아버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해져요. 가끔 할아버지는 했던 말을 또 다시 말하시는데 할아버지의 말씀이 듣기 싫다는 것보다는 제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했어요.
할아버지는 그런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시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매달고 있는 메모지 중의 하나, ‘내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를 보면서 할아버지가 얼마나 1분, 2분을 신경을 쓰며 보내는지 저는 잘 몰랐지만 할아버지가 슬퍼하지도, 슬퍼서 울지 아니하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평소 쑥스러워서 말하지 못했지만 이 편지를 전하며 한 마디 더 올리고 싶어요.
“할아버지가 기억 못해도 우리들이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니 울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