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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해세 - 데미안
Dear 싱클레어
안녕? 싱클레어. 몸은 좀 어때? 다친 곳은 다 나았는지 모르겠다. 네가 보낸 편지 잘 받았어. 글쎄, 너무 너무 길어서 다 읽어보는데 한참이 걸렸기 때문에 답장이 늦어버렸지만 말야^^. 사실은 나 학교 시험이 있어서 끝나고 쓰느라 좀 늦었어. 미안~.
어때, 이젠 네 말대로 할말을 했으니 죽을 땐 맘이 편할 것 같아?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너의 이 말 속엔 후회가 담긴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을까` 라는 과거형 표현이나 편지 말에 네가 네 맘속에서 자랑스러워하는, 아니 흠모해하는 데미안의 모습을 본단 말로 보아 지금은 그래도 약간 좋아 보이니 다행이다.
싱클레어. 넌 내게 너무 많은 얘기를 해준 반면에 난 너를 너무나 조금 이해하고 있는지도 몰라. 어쩌면 그게 네 말대로 이해는 가능하지만 의미를 해석하는 건 각자의 몫이어서 난 내 몫만큼만 너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비록 동시대가 아닌 점을 고려하더라도 네가 부유하고 위엄 있는 집안-네가 밝음, 부드러움,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던 곳-에서 태어나서 또 하나의 극명하게 대비된 어두움의 세계를 관찰했을 때, 난 평범한 부모님들 밑에 태어나 나와 다를 수 없는 친구들과 추억을 나누었고(내가 우리 부모님과 친구들 얼마나 사랑하는지 강조할 필욘 없겠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상대적으로 난 네가 처음 인식했던 그 두 세계의 경계를 공간적으로 찾기 힘든 배경을 가졌었단 점이야 나 스스로 평범을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 평범의 의미는 경계-윤곽의 모호성 아니겠니?), 그리고 네가 데미안과 그의 사상을 만나 인생의 전환기를 맞을 즈음엔 난 너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고 더 크게 웃을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조금은 네가 이해 못할 방식으로 학교에 순종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라. 더욱이 네가 전쟁에 참전하고 네 스스로 `그땐...` 이라고 내게 편지를 썼을 …(생략)
시기엔 난 또 아기를 키우며 너의 어릴 적 어머니 모습을 꿈꿀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싱클레어. 내가 처음으로 친구를 오해하고 그 미워함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나 자신이 프란츠 크로머가 되어 내가 그 친구의 잘못만을 볼 수 있게끔 유도해 나갔을 때-그리고 화해, 학교 선생님이 나의 실수-잘못에서 그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에 광적으로 집착한다고 느꼈을 때, 남자가 적어도 내가 팔을 뻗치면 닿을 거리에 있다고 느꼈을 때, 만약 내가 나 자신이 이상적이라 여기는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된다고 해도 그런 내 창은 세상이란 창문틀에 맞지 않으리란 걸 알아챘을 때, 그리고 "사과와 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가정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를 네가 크로머의 인도를 거역할 수 없어 처음으로 밝음에서 어둠의 세계로 넘어갔을 때, 데미안의 도움으로 밝음으로 돌아온 후 그에게서 아벨과 카인에 대한 재해석(카인이 강하고 멋진놈일 수 있고 아벨의 후예들은 그에게 무형의 표적을 씌웠을 것이라는)을 들었을 때, 베아트리체가 너의 이성에 대한 욕망을 영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을 때, 피스토리우스가 너의 또 다른 데미안이 될 수 있다고 믿었을 때, 에바 부인을 만났을 때와 연관지으려 든다면 네가 굉장히 불쾌해 할까? -그래 알아, 싱클레어. 솔직히 난 너무 어려서 네가 데미안을 봤듯이 난 너를 보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내 삶은 아직 너의 얘기처럼 챕터로 구분되지, 아니 구분할 수 없어. 그리고 솔직히 지금도 내 경험이 너를 흉내내어보기를 원하고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단, 아니 해선 안 된다는 것도 알아(네가 이런 금기투를 싫어하는 건 알지만 최소한 난 내가 확신하는 것만큼만 나를 자유롭게 해야된다는 면에선 너를 벗어난 게 아냐)- 어쨌든 너와 같이 표현은 못하겠지만 네가 두 세계를 교류하고 있을 때 나 역시 작은 진폭이지만 교류하고 있었다고 여기는걸 내가 이 답장을 쓰는 의미로 삼는걸 이해해줬음 좋겠어. 난 너를 감싸주고 싶으니까. 아니 솔직히 나를 감싸고 싶으니까..`사과-배` 얘기 재미있지 않아? (너에게 좀더 그 사람을 소개하고 싶지만 실은 나도 잘 모르는 사람이야. 그는 카인족 같아 보였지만 그 스스로 아님을 증명하고 있어. 그 사람 데미안일까?) 분명 말이 나온 배경이 다를 수 있겠는데 여러모로 데미안이 네게 해준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먼저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 라는 말과 닮은 "꼴"(적어도) 인 것 같아. 그 전제는 껍질이고 사과와 배가 같이 있다면 아프락사스니까.
싱클레어, 네가 내게 가장 많이 한 말이 뭐지 알아? 두 세계-아벨?카인-아프락사스-그리고 데미안. 두 세계-아벨?카인은 약간 왼쪽에 치우친 돌과 오른쪽에 치우친 돌들이고 아프락사스는 징검다리야. 조금이라도 관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징검다리는 결코 모든 돌이 직선으로 놓여있지 않다는 걸 간파할 수 있어. 그렇지 않다면 우린 위태위태한 곡예를 해야 할거야. 양팔을 뻗치고서 말이지. 그리고 데미안은... 아무래도 너인 것 같아. 왜냐면 난 네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여 자신의 원하는 것을 추구해야된다고 3번 이상, 아니 내가 눈치채지 못한 것까지 아주 많이 일관되게 강조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어. 게다가 넌 꿈을 많이 꿨어. 그리곤 결국 데미안을 꼭 닮는 너를 네 속에서 보고야 말았지. 어때, 이 정도면 내 추리도 독심술로 보여질까? 그렇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아. 네가 데미안일 순 있어도 데미안은 너일 수 없으니까...
데미안, 지금 여기는 비가 많이 와. 비록 지금은 창밖에 눌러버린 빗방울들이 가로지르는 것만큼이나 나의 데미안을 그리기 어렵지만 만약 네가 계속 나를 지켜봐 준다면, 약속할게. 내 속에 그린 나의 데미안의 모습이 너의 꿈속에 나타나길 강렬히 소망하겠다고...그럼 넌 또 내게 말하겠지. "그건 좋아, 하지만... ." 난 그 `하지만` 이 좋아. 우린 또다시 알을 깰 준비가 되었잖아^^. 그럼 몸조심하고 다음에 꼭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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