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쓰기 - 좁은 문 좁은 문을 읽고

좁은 문을 읽고
편지글 형식으로 썼음
친애하는 알리사에게
안녕하세요. 알리사? 전 한국에 살고 있는 유나라고 해요. 얼마 전 알리사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실린 `좁은문`이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어요. 가족들과 나들이를 나갔다가 서점에 잠깐 들렀을 때 아버지께서 읽어보라고 권유하셨지요. 처음에는 아버지의 뜻이라 별 생각 없이 읽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 당신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 갔답니다.
`좁은문`의 이야기는 알리사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여 당신이 신의 곁으로 간 뒤에도 알리사 당신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평생 의무로 받아들인 제롬이 들려주었답니다. 그분은 이야기를 자신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의 여름부터 시작하더군요. 당신의 어머니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버지와 당신에게는 소중할 지도 모르는 그러나 너무나 경박한 어머니 -아마 당신은 이 말에 대해 화를 내시겠지요-, 그리고 우아하면…(생략)

고통에 대한 말씀을 하셨지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는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아마도 이 말씀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삶을 대변해 주는 글귀가 아닌가 싶어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저조차도 그 넓고 평탄한 길로 가고 있어요. 단지 짧은 쾌락을 맛보기 위해 멸망으로 향하는 것이죠.
그러나 제롬은 오히려 그 말씀을 통해 자신과 알리사 당신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요. 지금의 제 나이와 같은 소년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좀 우스운 일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해할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언젠가 제롬이 쥘리에트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당신이 당황한 것은 그 때 쥘리에트가 제롬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아서였나요, 아니면 다만 제롬에 대한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인가요? 전 그 당시의 당신을 알다가도 모를 사람으로 여겼어요. 당신의 깊은 마음도 헤아리지 못한 채로 말이죠. 당신은 쥘리에트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려까지 하였지요? 동생에 대한 사랑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해야 할만큼 중요했나요? 당신은 이기주의로 물든 현대사회에서는 도저히 이해도리 수 없는 분이예요. 저 역시 현대인의 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답니다. 전 아직 어리지만 지금까지 접한 `사랑`이라는 것들은 자신과 상대편, 그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그보다 먼저는 존재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어요. 설사 그것이 부모님이었다 할지라도 말이예요. 하지만 당신은 자신을 희생시키면서까지도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가…봐요. 알리사 당신은 자신 스스로를 넓고 편한 문이 아니라 그 힘들고 어려운 좁은 문 속에 가두어 두려 한 것인가요?
쥘리에트는 거칠게 제롬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고 당신도 쥘리에트와의 거센 폭풍우를 견뎌내어야 했지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속에서 당신 다음으로 비극의 인물이 되었던 쥘리에트는 결국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결심했더군요. 그래서 제롬은 당신 곁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도 억누르고 파리로, 그리고 다시 군으로 들어갔지요. 두 사람은 수없이 아름다운 편지들을 결코 짧지 않은 몇 년 동안 주고받았지요? 어쩌면 그 순간이 두 분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었을지도 몰라요. 그 종이들에 쓰인 서로의 생각이 어느 한 순간의 만남보다도 더욱 더 고귀하고 숭고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 이별의 시간 뒤에 이루어진 만남이 오히려 더욱 고통스럽고 딱딱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만 그토록 사랑하는 두 분을 괴롭혔던 것은 진정 무엇이었을까요? 아픔만을 간직한 채 헤어진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따뜻한 4월의 봄날이었다면서요? 당신은 제롬을 꽃 속에서 맞아들였고 두 분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으셨는데, 왜 당신께서는 결혼을 거부하셨나요? 당신이 말한 `성스러움`만이 좁은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였나요? 당신은 아마 짐작했겠지만 제롬은 너무나도 아픈 마음으로 당신 곁을 떠났다더군요.
그리고 다시금 만났을 때 당신은 변해버렸다구요? 너무나도…. 당신은 왜 제롬을 그리도 아프게 했나요? 당신은 신에게 당신을 봉헌하면서 꼭 제롬을 물리쳐야 했나요? 오랜 세월동안 당신을 기다리며 살아온 제롬에게 당신은 너무 가혹하지 않았나요? 당신이 제롬에게 말했다지요.
"네가 원하는 것은 나의 환영일 뿐이야."
당신은 제롬을 너무나도 사랑했고 제롬도 그러하였는데 왜 두 사람은 행복에 다다를 수가 없었을까요? 제롬은 실망감에 당신 곁을 떠났고 또 다시 3년이란 무의미한 시간이 흘렀지요. 저의 의문에 대한 답을 하듯 두 분은 다시 만났고….
그러나 당신은 완전한 이별을 고했더군요. 당신은 그 때 그 이유를, 두 분이 사랑보다 더 높은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지만, 혹시 당신은 그보다도 당신 앞에 다가온 죽음과 위대한 신 앞에서의 무기력감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가요? 당신 앞을 가로막는 것이 없는 아무 것도 없는 그 순간,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피해버렸고 제롬은 결국 당신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지요. 쓸쓸히 요양원에서 죽은 당신이 남긴 작은 일기장을 받았을 뿐이었어요.
당신이 신에게로 향한 뒤 제롬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추구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는데 그는 그때 절망보다는 사랑을 택했습니다. 당신은 좁은문 안으로 숨어버렸을 뿐이지만, 제롬은 당신을 찾기 위해, 당신에 대한 사랑을 평생의 의무로 받아들이기 위해 고통의 좁은 길을 스스로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는 당신을 사랑했고 당신도 그를 사랑했죠. 그러나 형체조차 없는 그 무엇인가가 두 분을 아프게 했고 결국 두 분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저물어갔어요. 하지만 제롬에게 고통만이 남았느냐라고 묻는다면 그는 아마도 고통스럽지만 당신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었기에 또한 행복했다고 대답했을 겁니다. 그게 바로 좁은 길을 택한 사람들의 기쁨이겠지요. 저도 넓은 길보다는 생명의 좁은 길을 택해서 걸어 나가고 싶어요. 그것이 꼭 사랑은 아니더라도 삶에서 그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이야기예요. 다시는 두 분과 같은 아픈 사랑이 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마음속에 이제는 평안만이 가득하기를 빌면서…….
유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