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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진언니께
안녕하세요? 진진 언니.
언니라고 불러도 되지요? 될 거라 믿을게요. "안 진진`이라는 이름, 이렇게 불러놓고 보니까 의미야 어떻든 참 이쁜 이름이네요. 제 소개를 할게요 저는 대구에 사는 고등학생 김민지입니다.
잘 지내세요? 요즘도 제가 알던 진진 언니 모습 그대로 인가요? 궁금한 게 많아요. 어머니와 동생은 어떻게 지내세요? 또 무엇보다도 지금은 행복하게 지내세요?
겨울도 아닌 한여름에 우연히 `헤어진 다음날`을 듣게 되었고 한동안 잊었던 언니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1999년 언니를 알고도 어느덧 3년이나 지났네요. 새 천년이 되고 저는 고등학생이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 고등학교 생활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온통 모호하기만 했고 그래서 멋있게만 보여졌던 언니의 말들을 이젠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저도 많이 자라 났네요.
그중에도 내 머리속을 가득 채운 모순이라는 단어. 창…(생략)
좋은 대학 좋은 미래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삶. 하지만 그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불행하다면 지금 불행하다면 과연 그것은 옳은 행복인가요? 행복하기 위해서 행복을 포기하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 참 멋진 모순 아닙니까!
물론 공부를 한다는 것이 불행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부 때문에 잃는 것이 있다면, 또한 그것이 더욱 소중한 것이라면, 그건 불행이 아닐까요? 전 말이죠 공부하면 할수록 제 꿈에서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단지 공대에 가고 싶을 뿐인데 말이죠. 근데 말이죠 아무런 말 한마디 않고도 내게 안 된다고 외치는 세상들. 제가 공부하면 할수록 잃는 것들은 제 꿈이에요. 이공계 인력 부족을 말하면서도 나는 안 된다니, 웃기죠. 결국 대학은 가겠지요. 공대든 아니든. 쉽게 얘기들 하더군요. 공대=고생. `네 성적이면...` `너정도면...` 누군가는 내가 하는 고민과 반대의 고민을 할지도 모르죠. 성적이 모자라 공대에 못가 절망하는 사람이 있을꺼예요. 웃기죠.. 이런 모순...
나도 언니처럼 어느 한쪽을 선택 해야겠죠. 비록 두 남자 사이의 행복한(?)고민은 아니지만 어쩌면 여기서 내 인생이 결정나 버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절박한 심정이에요. 어쩌면 지금 공대를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데..
그 많은 고민을 하면서 `행복` 이란걸 생각해 봤어요. 행복에는 항상 모순이라는 말이 꼬리를 물고 따라 나오더군요.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 사실은 저도 언니처럼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해요. 행복하다는 것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언니는 `행복` 이란에게 뭐라고 생각해요? 언니 어머니와 이모님을 생각하면, 글세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게, 아니 내게 보여지는 행복이라는 게 정말 행복인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문득 영어 지문 하나가 생각이 나네요. 모의고사에 자주 나오는 답이 뻔한 문제 중 하나예요. `행복은 가까운데서 찾아야 한다` 는 것이 항상 답인 주제 찾는 문제 말이죠. 좋은 직장 멋진 휴가, 승진, 좋은 차 그런 것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다. 대신 단지 아이들의 모습이나 사랑하는 사람,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가 있다. 뭐, 내용은 그런 거예요. 시험 칠 땐 그저 1.5점짜리 이었는데 다시 보면 여기에 우리가 놓치는 몇백점짜리 진리가 있지 않나 싶네요.
비슷한 것 같아요 채울 것 없이 가득한 삶은 일시적인 만족을 줄뿐이에요. 희망이란 거 빈 공간이 너무 너무 많아서 끝없이 채워나갈 때 찾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이렇게 되고 보니 모순이라는 거 또한 많은 모순을 갖고 있었네요. 누군가가 시에서 말한 `절망과 희망의 변증법`이란 것처럼 모순이 절망을 가져다주지만 그 절망은 희망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닐까요? 단조로운 삶은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고 했잖아요 어쩜 우리한테는 행복이란 게 늘 필요한 게 아니라 그 행복을 위해 절망과 아픔이라는 불행을 거쳐감으로써 그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거죠. 늘 행복하면 그게 행복인가요.
근데 말이죠, 곰곰히 생각하면요 이 모순이라는 녀석 단지 그런 거기만 한건 아닌 거 같아요. 모순이라는 누구도 정의 못 내리는 이것을 이렇게 정의 내리면 어떨까요. "인생을 받아 들일 수 없는 자의 비관", 아니면 이건 어떨까요 "상황에 굴복하는 자의 변명" 이렇게요. 언니가 말한 사람들의 장부책 계산이나, 선택에 있어서 보여지는 모순들, 그건 아무 것도 아닌 건지도 몰라요. 언니나 나도 역시 같은 공식을 가진 장부책을 가지고 있는 걸요. 그게 또 다른 누군가가 모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말이죠.
과연 언니 어머니는 삶을 모순이라고 말할까요? 아마 아닐꺼예요. 받아 들였기 때문이 아닌 맞서고 있기 때문에 절대 모순이라고 느끼지 않을꺼예요. 선택의 문제가 너무 버겁다고 느껴졌을 때,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질 때, 다시 한번 가까이 다가가 보면, 아니 때론 한발 물러서 보면 모순이란 거 답답하게 느껴지던 문제들이 별거 아닐지도 몰라요. 나에게만 초점을 두고 말하기 떄문 아닐까요 내가 좀더 특별할 것도 없고 덜 특별할 것도 없는 건데 인생은 결국 `나`의 것이기에 나의 시선에 맞추어서, 인생은 언제나 불공평했다고 그래서 받아 들일수가 없다고 말하는 우리의 핑계고 변명이 아닐까요.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불행한 선택 따위의 모순은 없을지도 몰라요. 정말 진정한 모순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우리가 행복을 위한 불행한 선택을 한다는 것이 되겠지요. 언니가 그랬던 것 처럼 말이죠.
언니 저는 조금은 자신이 생겼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한 사람이 될래요 때론 불행할 수 도 있지만 단조로운 삶은 단조로운 행복만을 준다는 거 잊지 않을게요. 우리 하나씩 바꿔 봐요. 모순을 이해할 순 없지만 받아 들일 수 있다는 언니의 생각부터 바꾸고 나면, 많은 것들이 달라 질꺼예요. 모순이란걸 받아 들이지 않는 다면 언니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할수 있을 꺼예요. 다시한번 시작해봐요 그럼 언니가 말하는 인생의 볼륨이 생기지 않을까요? 모순이라는거 단순히 맏아들일 운명은 아닐꺼예요.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만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이른걸요. 삶의 어느 한곳에서 안주 하는 우리가 아닌 행복을 위해 절망과 싸우고 있는 모습 그것도 또하나의 행복이 될꺼예요.
아, 제 얘기는 이에 전부예요. 3년간이나 묵혀둔 이야기를 내어놓고 보니 조금은 부끄럽네요. 이젠 머릿속이 깨끗해진 느낌마져 드네요. 제가 할일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행복한 제모습 보여드리는것 뿐이예요. 그럼 제얘기는 그만 하구 언니의 이야기를 기다릴께요. 건강하시고, 언제나 행복하게 지내세요.
추신 : 저는 공대 원서를 한군데 내게 되었어요. 좋은 소식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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