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도서 - 교실 밖 수학여행 교실 밖 수학여행

교실 밖 수학여행
이제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심도 있게 공부할 날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나는 이른바 `수학경시`이다. `수학경시`는 다들 알겠지만 각종 수학 경시대회에 참가하고 그에 대비하여 수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제 각종 수학 경시대회들이 끝났고 지금부터는 진학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경시 공부를 할 시간과 이유과 거의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매주 독서 토론회에 참여하는데, 얼마 전에 정기 토론회의 독서 제재라는 이유로 이 `교실 밖 수학 여행`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내용이 그리 심도 있지도 않고 감동을 받았다거나 흥미 있게 읽었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이 책으로 인하여 그동안 접어두었던 수학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것에 이 책의 의의를 두고 싶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수학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공식적으로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교외 경시대회에 출전해…(생략)

경지였다.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구원받고자 절대자를 찾으면서 종교가 생겨난 것과 일맥상통하는 상황이었다. 나 역시 힘든 상황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고자 신이라는 경지를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2003년이 되면서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마다 신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아주 어려워서 접근조차 하지 못할 문제를 읽고 있으면, 참으로 나는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 어려운 문제들, 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풀어온 모든 문제들은 이미 풀이과정이 밝혀진 것들이었다. 마치 신은 그 풀이과정들을 훤히 내려다보고 있고, 나는 미로를 헤매며 그 풀이를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뇌는 신의 장난이라는 커다란 장벽에 가로막혔고, 다른 문제들을 볼 때마다 역시 다른 수많은 신들이 나를 향해 비웃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문제 푸는 시도도 제대로 못해본 채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참으로 그 신들은 시간을 쓰레기로 만드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나름대로 마음을 잡고 일정 시간을 정해 놓은 뒤에 상쾌한 마음으로 문제를 풀고자 했을 때 신은 자주 나를 방해했다. 몇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히고서 죄책감만 남겨 놓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문득 후회가 되는 것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수학을 공부한 방법에 대해서 회의가 들었다. 나는 경시 공부를 할 때마다 감을 익힌다는 목표를 가지고 공부했다. 그래서 많은 문제를 풀지는 않았고, 정말 안 풀리는 것들은 풀이를 살짝 읽으면서 어떤 방법으로 접근했는가에 대해서 연구했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를 풀 때마다 내가 사용했던 접근 방법들을 모두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되는 방법과 안 되는 방법을 연구했다. 각 유형의 문제들마다 그런 식으로 연구를 했고 각 문제들 옆에 풀이 과정을 쓰는 대신 접근 방법을 써 놓았다. 또, 매일 문제를 푸는 것은, 실전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빨리 찾아낼 수 있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왔다. 적은 문제를 풀고 지금까지 버텨낸 것과 나름대로의 나의 방식에 나는 항상 자부심을 느껴 왔고, 이 방법에 대해 신뢰를 해 왔다. 하지만 나의 능력으로 접근 불가능한 문제들이 그렇게도 많을 줄이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했던가. 나는 레벨 상승의 목표보다는 그 레벨에서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향해 공부해왔던 것이다. 내 머리와 사고 방식이 이미 더 높은 레벨로는 올라가기 힘들게 설계된 이상, 나는 정말 어려운 문제들을 제대로 풀어낼 수 없었다. 항상 내가 보고 깨우쳤던 방식으로만 문제를 풀려고 했지 새로운 접근방법을 시도하는 태도가 부족했다. 가까운 곳만 찾는 내 시야엔 신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수학에서 손을 놓은 지금에서야 저 높은 곳의 신의 존재가 어렴풋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인간의 지혜를 추구해 왔으며, 상당수의 문제들은 신적인 방법으로만 풀린다는 것이다. 수학을 잘 하는 사람들은 나의 이런 말에 입을 다문 채로 한쪽 입꼬리를 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나는 내 나름대로 생각할 뿐이지, 남에게서 동의를 얻을 목적으로 이 생각을 글로 옮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후회하는 것은 내가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신의 경지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수학을 제일 잘한다는 사람들이 문제를 푸는 실력은 나의 이런 생각을 깊게 한다. 약 3년간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 문제를 봐 왔다. 난이도가 어려워 보이든 쉬워 보이든 간에 항상 우리나라 출전자들의 성적은 비슷비슷했다. 문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점수는 별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한 결과들을 보고 나는 그들이 신의 경지에 거의 도달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또 나의 이런 후회가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회의를 느꼈다. 신의 경지에 가까운 노력은 선천적인 것인지도 모르고 또 후천적으로는 절대로 얻어질 수 없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저 인간이 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헛된 발버둥일지도 몰랐다. 결정적인 것은 신의 경지를 추구하는 법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나는 수학에 있어서 신의 경지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 온 여러 어려운 수학 문제들의 벽이 선택적 통과성을 지니는 것으로 판단하건대 신의 경지와 비슷한 어떤 보이지 않는 기준은 존재하는 것 같다. 이제는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아쉬움을 마지막 페이지로 장식하면서, 근 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어온 내 수학 경시라는 역사책을 끝마치고자 한다. 그 마지막 내리막길에 서서 이렇게 멋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뿌듯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