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도서 - 해석학의 화신 오일러 오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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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10-13

해석학의 화신 오일러 오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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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학의 화신 오일러
평소에 수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수학에 관한 서적을 많이 읽어보았다. 그래서 그중 에서도 기억에 남았던 “오일러”에 대해서 쓰고자 한다. 오일러는 “오일러의 공식”에서도 유명하다. 그는 수학자들 중에서도 업적이 가장 많으며 위대한 논문을 마치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이 썼다니... 오일러에게 왜 ‘해석학의 화신’이라고 붙여진 지를 알 것 같다. 오일러는 파울 오일러와 알게 리더 부루커 사이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파울 오일러도 뛰어난 수학자였으나 직업을 캘빈파 목사로 바꾸어 생활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역시 자기 아들인 오일러가 자기의 대를 이어 목사가 되기를 바라였으나 수학을 가르치는 바람에 그의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다고 한다. 만약 파울 오일러가 오일러에게 수학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오일러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아버지의 바램대로 목사가 되었을 것 같다. 그렇게 되었다면 수학에 대한 업적도 세우지 않았을 것이고 ....아무튼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실수를 범했다는 것은 참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그에게 가르치겠다는 후원자가 나타나 그를 도와주기도 한다. 때문에 그는 젊은 나이에 페테르스크 학사원에 의학부준 회원으로 초빙되어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후에는 26세라는 나이로 페데르스부르크 학사원의 주요한 지위에 취임하여 가정을 꾸렸다. 아버지의 기대 때문에 수학을 못하고 신학대에 들어간 오일러는 아이들을 좋아하여 연구논문을 쓸 때에도 어린아이를 안고 큰 아이들은 둘레를 뛰놀게 하면서 연구서를 썼다고 한다. 그의 이런 뛰어나고 다산한 업적을 남긴 뒤에는 오일러의 열정과 노력이 뒷받침되었다. 후에는 연구 탓으로 양쪽 눈이 실명이 되었지만 비굴하지 않고 더 열심히 노력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 결국 그는 1783년 9월18일 78세로 죽는 최후의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으며 연구 논문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또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으로도 전해지고 있는데, 청년시절에 읽은 후 좀처럼 펴…(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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