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3일 천하로 끝난 개화의 물결 3일 천하로 끝난 개화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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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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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천하로 끝난 개화의 물결

비록 ‘3일 천하’로 그 막을 내린 갑신정변이긴 하지만, 이 땅에 새 시대의 물결을 끌어들이려고 한 김옥균의 애국 사상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따를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김옥균의 성격이나 수완, 또는 역량에 대해서는 혁명가로 일컬어지기도 하고, 혹은 경박한 재사로 비난하는 사람도 있어서, 평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참고삼아, 그와 뜻을 같이하고,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박영효의 평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김옥균의 장점은 친구를 잘 사귀는 것이다. 그는 글을 잘 쓰고 말을 잘 하며, 또 시문에도 능하다. 그러나 그의 단점은 덕의와 지략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편 이규완은 김옥균을 이렇게 평하고 있다.
“처음에는 김옥균을 가볍게 보았는데, 나중에야 애지중지 알아보게 되었다.”
이상의 인물평과 국내외의 여러 가지 기록을 종합해 볼 때, 김옥균의 사람됨이 대 정치가의 역량은 부족하다 할지라도, 혁명가적인 소질을 지닌 것은 사실이며, 또 깊은 지모와 앞을 내다보는 긴 안목은 부족하다 할지라도, 결코 경박한 재사이기만 한 것은 아닐 뿐 아니라, 외교에도 능하여 기민한 수완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옥균은 1851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당시 호군이라는 하찮은 벼슬자리에 있던 김병태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김옥균이 5세 되는 해, 그는 당숙 김병기의 양자로 들어가, 젊은 시절을 물 좋고 경치 좋은 강릉에서 지냈다. 그가 시문과 예술에 능하게 된 것도 강릉에서의 생활이 큰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21세 때, 알성시 문과에 장원 급제함으로써, 김옥균은 벼슬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1882년, 그 전 해에 홀로 일본 서찰을 마치고 돌아와 있던 김옥균은 일본 수신사 박영효 일행의 고문이 되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일본인 후쿠자와의 집에 6개월 동안 머물면서, 일본 각지를 돌아다녔다. 여기서 그는 놀라움과 선망, 그리고 울분 등을 느끼며 새로운 문물을 모두 살펴보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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