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소설 논이야기, 레디메이드인생, 치숙 채만식의 소설

채만식의 소설
나는 채만식의 소설 몇 개를 읽어보았다. 채만식은 풍자성이 강한 소설을 많이 쓴다고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읽어본 `논 이야기`, `레디 메이드 인생`, `치숙` 이 세 소설 모두 풍자성이 강한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속시원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소설이 부정적인 면으로 많이 치우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해서 아쉬웠다. 그렇지만 일제 치하에서 쓰여진 대부분의 문학 작품이 풍자성이 강하고, 일제 비판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았다.
채만식의 `논 이야기` 는 1946년 `해방 문학 선집`에 수록된 단편 소설이었다.
일인들이 재산을 내어놓고 달아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 소설의 주인공 한 생원은 자신의 땅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우쭐해졌다. 아버지의 부지런함으로 장만한 열서너 마지기와 일곱 마지기의 두자리 논을 가지게 되었다…(생략)

내게 무얼 해 준 게 있길래, 이번엔 일인이 내놓구 가는 내 땅을 저희가 팔아먹으려구 들어? 그게 나라야?" "일 없네. 난 오늘부터 도로 나라 없는 백성이네. 아니 글쎄, 나라가 있으면 백성한테 무얼 좀 고마운 노릇을 해 주어야 백성두 나라를 믿구, 나라에다 마음을 붙이고 살지. 독립이 됐다면서, 백성이 차지할 땅 뺏어서 팔아먹는 게 나라 명색야?" 심지어는 "독립됐다고 했을 제, 내 만세 안 부르기 잘 했지."라고 하기에 이른다.
나는 이런 한 생원의 태도를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생각해보았다. 그래도 어쨌든 자신의 조국인데... 나라면 아무리 국가에서 자신에게 이득을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독립됐다고 했을 제, 내 만세 안 부르기 잘 했지."라고 말한다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한 생원이 불쌍하기도 하지만, 시민 정신은 결여된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한 생원은 너무나 지독하게도 이해관계를 잘 따지는 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적인 상황, 국가적인 개념은 전혀 없이 그저 더 이상의 징용 이자는 없을 것이라는 것만 좋아하는 한 생원의 모습은 독자를 화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나도 읽으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편, 채만식의 `레디 메이드 인생`은 1934년 5월부터 7월까지 `신동아`에 발표된 단편 소설이었다.
고등 교육을 받고도 마땅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살아가던 주인공 P는 이력서를 들고 모 신문사 K사장을 찾아가지만 거절당하고, 오히려 농촌 운동이나 하라는 충고를 받는다. P는 "농민이 우매하다든지 문화가 뒤떨어졌다든지 또 생활이 비참한 것의 근본 원인이 기역 니은을 모른다든가 생활 개선을 할 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에 농촌 운동과 문맹 퇴치는 허구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문을 박차고 뛰어나온다.
P는 차라리 무식했다면 농민이나 노동자라도 되어 실직은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으면 이런 불행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지식인인 것을 원망한다. 또 이렇게 자신이 실직하게 된 사회를 원망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의 형에게서 아홉 살짜리 아들 창선이를 올려 보낼테니 아비 구실을 하고 기르라는 편지가 왔다. 창선이가 온다는 날, P는 어느 인쇄소의 문선 과장을 찾아 아들을 무료 견습공으로 써 달라고 부탁하고 자취 도구를 장만한다. 아들만은 자신과 같은 실직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인 것이었다. "내가 학교 공부를 해 본 나머지 그게 못 쓰겠으니까 자식은 딴 공부를 시키겠다는 것이지요."라고 과장한테 말하면서, "아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그게 나한테는 약이니까."라고 말하는 P에게서 그러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을 취직시켜 달라고 부탁하고 나와서, P는 자신과 아들 모두가 팔려가기를 기다리는 레디 메이드(기성품)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레디 메이드 인생이 비로소 겨우 임자를 만나 팔리었구나."
`레디 메이드 인생`은 일제 강점기 시절에 수없이 쏟아졌던 인텔리의 한 사람이었던 P를 주인공으로 하여, 비꼬는 듯한 어조로 풍자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K사장의 무관심과 화려한 생활과 위선적인 행동이 싫었다.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P에게 말도 안되는 억담으로 농촌 운동을 해라, 문맹 퇴치 운동을 해라,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또, 어린 아들을 교육시키지 않고 공장에 취직시키는 것을 보면서 무작정 쏟아져 나온 지식인 중 한 사람인 P의 결단이 너무 아쉬웠다. 좀 더 실속있는 교육을 시켜서 자신과 같은 무력한 지식인을 만드는 길은 없었을까... 당시의 교육현실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좀 더 실속있는 교육이 없었을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내가 읽은 또다른 채만식의 소설 `치숙`은 1936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단편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는 사회주의 운동을 한 후 생활고에 빠진 숙부 `아저씨`가 등장하고, 보통 학교 4학년을 마치고 일본인 밑에서 사환으로 있는 소년 `나`가 등장한다.
아저씨는 일본에 가서 대학에도 다녔고 나이가 서른셋이나 되지만, `나`가 보이게는 철이 들지 않아 보이고, 딱하게만 보였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소설상에서는 서술자가 지껄이는 형식이다.) "대학교까지 공부한 것 풀어 먹지도 못했지요, 좋은 청춘 어영부영 다 보냈지요, 신분에는 전과자라는 붉은 도장 찍혔지요, 몸에는 몹쓸 병까지 들었지요, 이 신세를 해 가지고서는 굴속 같은 오두막집 단칸 셋방 구석에서 사시 장철 밤이나 낮이나 눈 따악 감고 드러누웠군요."
착한 아주머니를 친가로 쫓아 보내고 대학을 다니다가 신교육을 받았다는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감옥살이 5년만에 풀려났을 때, 아저씨는 이미 피를 토하는 폐병 환자가 되어 있었다. 식모살이로 돈 100원을 모아 이제 쉬려던 참인 아주머니는 그 아저씨를 데려가 구완하여 병도 많이 나아갔지만,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면 또 사회주의 운동을 해보겠다고 말한다.
`나`가 보기에, 경제학을 공부했다면서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돈을 벌어서 아주머니에게 은혜를 갚을 생각은 않고, 남의 재산 뺏어다 나누어 먹자는 불한당질을 또 하겠다니 아저씨는 분명 헛공부한 것인 것이었다.
`나`는 아저씨께 정신 좀 차리라고 당부를 해도 아저씨는 도무지 막무가내다. 일본인 주인의 눈에 들어 일본 여자에게 장가들어 잘 살겠다는 `나`를 도리어 딱하다고 한다. 그러니 `나`가 보기에 아저씨는 도통 세상 물정도 모르는, 참 한심한 사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내가 보기에도 `아저씨`는 너무 고지식하게 집안의 생존여부에는 관계없이, 자신의 이상에 너무 치우져있다. 그리고 또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칠전 팔기해서 성공한 몇사람만 보았지, 여덟 번 일어섰다가 아홉번째 가서 영영 쓰러지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 숱한 사람이 있는 건 모른다."라는 대목에서 부정적인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가 그런 `아저씨`를 `세상 물정 모르는 참 한심한 사람`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민족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에는, 분명 `나`가 부정적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나`가 도리어 `아저씨`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이다.
이 소설이 `나`와 `아저씨` 모두를 비난하는 쪽으로 결말이 나서 누가 더 부정적이고, 누가 더 잘하는 행동인지 생각해보았다. `아저씨`의 고지식한 이상세계에도 문제가 있지만, `나`의 행동은 민족 정신도 말살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조선 민족으로서, 그저 일본인의 눈에 들어 잘 살겠다는 그러한 발상은, 그래도 나름대로 자신의 조국에 대해 생각해보는 `아저씨`에 비해서 훨씬 더 파렴치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채만식의 소설 세 개를 읽어보면서, 국가와 민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래도 국가가 있어서 내가 맘편하게 살고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국가를 미워하는 말을 함부로 하지는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