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서 - 과학 콘서트 과학 콘서트

과학 콘서트
며칠 전, 나는 정말 특별한 음악회에 다녀왔다. 좌석을 예매할 필요도 없고, 주변의 휴대폰 소리에 방해받을 걱정도 없는 그런 음악회였다. 멋진 음악회 티켓 한 장만 있으면 된다. 이번 음악회 티켓은 중학교 은사님께서 선물해 주셨다. 잠시 학업을 잊고 즐기면서 기분 전환을 하라고 배려해 주신 선물이었다. 선생님으로부터 음악회 티켓을 받고 나서 나의 마음속에서는 ??과학 콘서트? 도대체 어떤 콘서트일까? 과학이 연주하는, 과학을 연주하는 콘서트??? 알 수 없는 호기심들이 자기들만의 연주를 펼치고 있었다.
이번 음악회의 지휘자인 정재승씨는 젊은 물리학자 출신답게 그가 지휘하는 악곡 곳곳에는 젊음과 생기가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음악, 철학, 문학, 영화를 좋아했던 그였기에 그의 음악회에서는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남다른 풍미가 느껴졌다. 곡들은 저마다 지휘자를 닮아 있었다. 지휘…(생략)

실에 즐거웠다. 또한 수능시험 날 유독 춥고, 소풍 가는 날마다 비가 오는 머피의 법칙 때문에 ??나에게는 왜 나쁜 일만 일어날까??? 하면서 한숨쉬게 했던 일들을 과학의 선율이 위로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통계학의 허실이 O. J. 심슨 사건을 무죄로 만든 무서운 곡조는 나를 섬뜩하게 하였다. 무조건 통계나 확률을 들어 주장을 펴기 보단 정확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음악회는 점점 그 흥미를 더해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매일 보는 토크쇼, 그러면서도 알지 못했던 사실, 왜 방청객들은 모두 여자일까? 여성이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란다. 선율은 어느 덧 웃음의 심리학을 지나 만리장성의 망루에 닿아 있었다. 정말로 만리장성이 달에서도 보이는 것일까?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잘못된 사실을 얼마나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지 학생으로서 부끄러웠다. 세기의 천재라고 불리는 아인슈타인은 정말 죽을 때까지 뇌의 15%밖에 쓰지 못했을까? 별똥별이 질 때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질까? 이것들이 모두 거짓이라면 그 궁금증은 해결될 것이다.
경쾌한 연주에 푹 빠져 있다보니 지휘자는 어느덧 제2악장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이번 악장은 Andante 느리게이다. 느린 곡조로 시작한 제2악장에서는 예술과 과학의 앙상블이 연주되었다. 현대 미술가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에서 혼돈 속의 규칙, 카오스 이론을 발견하였다. 중학교 미술시간, 추상화라고만 알고 지나쳤던 그의 그림에 이런 심오한 이론이 숨어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역시 무엇이든지 깊게 바라보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배우는 사람의 자세인 것이다. 선율은 흘러 흘러 프랙탈 역에 잠시 정차하였다. 서태지의 헤어스타일과 아프리카 마을의 가옥구조는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프랙탈, 자기 유사성??이 그 해답이다. 세부구조들이 전체구조와 유사한 구조를 반복하는 원리이다. 처음에 보았을 때에는 어떠한 특징도 찾아내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자세히 보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이 프랙탈 구조는 해안선, 눈의 결정, 나무 등 우리 주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프랙탈 역에서 머무르는 동안 바하와 비틀즈 음악 등 동서고금을 넘어서 유명한 음악들이 연주되었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음악들이다. 도대체 어떤 비결이 있길래 세월이 지나도 인구회자 되는 것일까? 답은 1/f 음악이기 때문이다. 음폭이 변화하는 빈도수가 정확히 주파수에 반비례해서 나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변화가 적고 조화가 강조되는 프랙탈 음악인 것이다. 프랙탈 역에서 연주가 잠시 쉬어가는 동안 지휘자는 질문 하나를 던졌다. ??미국인과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지프의 법칙은 그에 대한 답을 알려 주었다. 미국인들은 정관사 the를, 한국인들은 사람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게다가 1000개의 단어만으로 한국어의 75%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따름이다. 잠시 후 연주는 남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번에 연주되기 시작한 곡은 처음부터 슬픈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세상 사람들의 20%가 나머지 80%의 소득을 독점한다는 파레토의 법칙.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과 ??노동의 종말??에서도 위와 같이 곡이 연주되었던 적이 있었다. 부의 불공평한 재분배에 의해 야기된 사회 불평등을 해결해야 함을 지휘자는 그의 격정적인 몸짓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나 자신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내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주변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음악회는 제3악장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Grave non tanto 느리고 장중하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 지휘자와 음악, 과학, 평범한 일상생활이 하나가 되어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쇼핑의 천국, 백화점의 미로 안에 자본주의의 심리학이 숨어 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백화점의 구조를 잘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화장실과 엘리베이터는 잘 보이지 않으며 백화점 안은 항상 대낮과 같이 환하다. 또 시계와 창문의 수는 적은 대신 거울은 수도 없이 많아 어지러울 정도이다. 이것이 바로 ??부딪힘 효과??이다. 상품을 거울 속에 비치게 하여 시선을 유도, 걷는 속도를 늦춰 구매의욕을 높이는 것이다. 쇼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백화점이 따뜻한 배려(?)를 해준 것이다. 패스트푸드 점의 의자가 유난히 딱딱한 것도 빨리 먹고 나가도록 하는 자본주의의 노력인 것이다. 그밖에도 미국 시장에 NASA의 물리학자들이 뛰어들어 주가변동을 예측하는 등 기존의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해결하며 고수익을 창출해 내고 있다. 경제학과 물리학이 만나 연주하는 협주곡은 마치 젓가락 행진곡과 같았다. 경제학과 호흡을 맞췄던 물리학이 이번에는 교통과도 협연을 하였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왜 매일 자기의 차선이 다른 차선에 비해 느린 것일까? 그래서 차선을 바꾸면 이번에는 바꾼 차선이 느려지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으로 실제로는 어느 차선이나 빠르기는 비슷하다. 교통 물리학 사단조 28번은 복잡한 도로에서는 차선을 바꾸지 않는 것이 교통 혼잡을 막는 단순한 진리임을 말해주었다.
어느덧, 연주회는 마지막 악장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Poco a poco Allegro. 자못 장중하던 리듬이 점점 빠르게 연주되었다. 휘몰아치는 듯한 연주는 나와 음악을 하나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우리는 옆 사람의 코고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소음공명 E단조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연주되고 있었다. 적당한 소음이 있을 때, 미약한 원신호가 더 잘 들린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인지심리학 콘체르토에서도 연주되었었다. 어느 정도의 소음이 있는 상황에서 학습한 내용의 경우 더욱 집중하게 되어 나중에 기억이 더 잘 난다는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친구들은 벌써 이 음악회에 다녀갔단 말인가? 오늘은 다행하게도 옆에 코고는 사람이 없어서 소음공명의 고통을 느낄 걱정은 없었다. 또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돌기에는 너무 큰 지구를 수치교향곡으로 연주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초속 1434㎞로 달려 한 집에서 0,07초만 머물러야만 세계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산타클로스를 믿고 있고 있는 어린이들에게는 너무 큰 상처를 주는 변주곡이 되지 않을까 싶다. 1악장부터 쉴 새 없이 달려온 물리학이 박수와 만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였다. 무심코치는 박수 속에 무질서와 질서가 교대로 나타나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박수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만들어낸 독특한 하모니인 것이다.
마침내 음악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과학과 세상사가 빚어낸 유쾌한 연주는 끝이 났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Molto espressivo - 매우 감명 깊다?? 제5악장이 연주되고 있었다.
학제 간의 벽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하는 지휘자 정재승씨에게 경의를 표하며 각 악장별로 자세한 설명을 달아준 그의 정성과 노력에 감사했다.
그런데 나는 이번 음악회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을 발견하였다. 어떻게 해서 물리학과 사회학이 만나 인간사회의 법칙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 또 작은 세상 이론을 통해 지구촌이 가깝다고 협연하면서 산타클로스가 세상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기에는 너무 먼 지구라고 조바꿈을 하였다. 잭슨 폴록의 그림이 멋있고, 바하의 음악이 감명 깊은 이유는 1/f음악이라고 협주하면서 20:80의 사회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1/f의 논리, 파레토의 법칙을 독주하였다. 이에 대해 지휘자는 그 이유를 ??복잡성의 과학 - 카오스이론??이라고 답했다. 즉,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법칙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초기 조건의 민감성 -북경의 나비가 날면 뉴욕에서는 태풍이 분다-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정재승씨는 지휘 소감을 이야기 하면서 처음이라 부족한 점도 많았다며 앞으로는 모든 학문 음악회가 인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하며 과학이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데 악보와 같은 도움을 줬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라고 하였다. 덧붙여서 다음 음악회는 혼돈스런 세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 속에 숨겨진 질서와 법칙을 찾아내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음악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음악회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눈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이번의 특별한 음악회를 통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머피의 법칙을 연주하는 동안 혹시 벌어질지 모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자세와 좋지 못한 기억보단 좋은 기억을 생각해내려는 선택적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잭슨 폴록의 작품을 보며 그의 작품이 그간의 미술사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고 혹평하기 보단 그 속에서 한 예술가의 창조 정신의 배우며 과학의 원리를 깨우칠 수 있었다. 또 파레토의 법칙을 감상하며 경제 시스템의 정비, 평등하고 정의로운 분배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뿐만 아니라 근거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상식처럼 받아들였던 나 자신을 반성하였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 처음 시작된 음악회를 통해서 이 복잡한 세상을 다 설명하기엔 한참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음악회가 계속적으로 열린다면 카오스의 이론과 잘못된 지식이 지배하는 인간사를 좀더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함 질문이나 호기심에서부터 시작하여 세상의 법칙을 발견해내는데 학문들 간의 조화는 필수적이며 과학자들만의 노력이 아닌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는 풀 수 있는 문제만을 푸는 음악회가 아니라 복잡한 인간사에서 풀어야 할 문제를 푸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콘서트가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