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서 - 삼중나선 삼중나선

3중나선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우선 이러한 새로운 관점(어쩌면 아주 오래부터 있었던 관점이나, 이것은 요즘 유행하는 유전자 중심의 진화론에 대항하는 형식으로 쓴 것으로써는 매우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도 있을 뿐더러, 일단 내가 지금 Purdue University 의 GERI summer camp에서 수강하고 있는 Bioengineering class 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즉, 생명윤리학(bioethics)이나, 사회생물학 (sociobiology) 등 에서 이미 고전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Nature vs. Nurture debate( 한 개체의 특성을 발현시키는 데 중요한 요소가 본성(유전적 요인, genetic factor)이냐, 환경(environmental factor)이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과제를 위한 다른 책과 함께 Purdue University 의 Humanities, Social Science and Education Library 에서 빌렸고 따라서 원서로 읽었는데, 아직 나의 영어 실…(생략)

하겠다.

본격적인 독후감

이 책은 리처드 르원틴이 쓴 유전자(gene), 개체(organism), 환경(environment)라는 세 가지(이것을 저자는 triple helix 라는 재치있는 제목으로 표현했다.)를 중심으로 진화와 환경, 생명체에 문제에 관해 다룬 책이다. 분량은 비교적 짧은 편이나, 그 양에 비해 내용은 매우 심도있고, 일반적인 진화론 관련 서적이나 이론이 빠지기 쉬운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상당히 고급 서적이다. 더군다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나, “이타적 유전자(The Origin of virtue)”와 같이 원래 교양과학서적으로 쓰여진 책과는 달리 이 책의 4개의 Chapter 중 3개는 원래 강의에 쓰였던 것이기 때문에(책의 앞쪽에 Acknowledgement에서 “The first three chapters of this book were originally presented as lectures in the Lezioni Italiani in Milan, … having pressed for their original publication as Gene, Organismo e Ambiente…” 라고 밝히고 있다.) 상당히 내용이 어렵다. 이러한 책 자체의 특성 및 내가 개인적으로 진화론에 매우 관심이 있고 생물학의 전문적인 내용을 배우고 있다는 점 등으로 말미암아 나의 독후감 역시 “책을 읽은 후의 느낌과 감상”을 쓰는 원래의 목적을 벗어나 약간 학술논문적 성격을 띄는 부분이 어느 정도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점들을 널리 양해해 주기 바라며 나역시 이러한 점을 상기하여 비교적 비전문적이고 독후감 자체로써의 성격 및 이 책이 본질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전달에 충실하도록 노력하겠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해부칼과 가위를 들고 “삼중나선(Triple Helix)”라는 책을 해부해보자! 이 책의 골자는 단순히 유전자 결정주의(gene determinism)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단순화된 모델과 분리주의적(separatism; 유전자, 환경, 개체 등의 요소 들을 각각 분리시켜 해석하려는 생각.), 환원주의적 방식(reductionism; 생명현상을 근본적으로 분자나, 원자 등의 화학적 방식으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는 중성자, 양성자, 전자 등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하는 등 계속적으로 그 기본적인 단위로 접근해 생각하는 것)의 접근으로는 생명현상과 그것을 둘러싼 환경관의 상호작용 등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재치있는 설명으로써 그는 우리는 유전자 코드만을 입력받아 단백질의 3차 구조를 나타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유전자 중심적 자연선택이론에 대해서도 살아가는 것도, 자연선택의 대상이 되는 것도 개체(organism) 그 자체이지, 단순히 유전자라고 하는 분자 덩어리(정확히 말해서 DNA 가닥 중 특정한 단백질의 정보를 지정하는 부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그의 설명에도 약간 문제가 있다. 개체는 한 세대를 살고 사라지지만 유전자는 (그 개체가 번식에 성공한다면..)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또한 유전자는 자기복제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개체의 형질을 나타내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 자연선택의 중심적 존재로써 인정될 만하다. 바로 이것이 최근에 유전자를 중심으로한 자연선택이론과 진화이론이 널리 인정받는 이유이다. 물론 Lewontin 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한다. 그러나 그의 주요 주장은 그렇다고 할 지라도 유전자가 개체의 형질을 완전히 결정하지 않을 뿐더러 환경과의 복잡한 상호작용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의 그러한 단순한 진화이론을 무작정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것을 단순히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실험적 증거를 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있다. 나 역시 아직까지 정확히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그 책에서 예로써 든 한 실험에 의하면 어떤 식물의 여러 변종을 저지대, 중간지대, 고지대의 3가지 환경에서 길렀는데, 저지대에서 가장 잘 자란 종류가 고지대에서도 가장 잘 자랐는데, 중간지대에서는 가장 잘 자라지 못했을 뿐더러(수치를 나타내는 표에서는 두번째로 잘 자라지 못하는 것으로 나왔으나, 일단은 저자가 쓴 내용을 따르기로 한다.) 꽃조차 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꽃(현화식물의 생식기관)을 피는 데 실패했다는 것은 그러한 환경에서는 번식을 할 수 없고 따라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지 못하고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많은 종들이 단순한 규칙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패턴을 보였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생명현상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며 그저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것이 환경에 의해 약간 다르게 나타나는 정도로써 유전적인 틀과 환경의 작용에 따라 어떠한 규칙처럼 도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약간은 반박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실험에서 과연 고도라는 요인 이외의 요인들이 일정했는가가 확실하지 않다. 가령 중간고도의 토양의 산성도가 고지대나, 저지대의 산성도와 달라서 그러한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실험이 아니더라도 분명 생명체와 환경, 그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단순한 모델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지금 오늘날의 생태계는 최소한 35억년 간이나(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생명체의 화석이 35억년 전의 지층에서 발견된 박테리아였다.)치열한 진화의 과정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인간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가장 복잡한 기계조차 가장 단순한 생명체인 원핵생물보다, 심지어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바이러스보다도 단순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이론조차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 이론 조차 확실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생명체와 환경(organism and environment)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도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기본적으로 환경과 생명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환경은 개체를 변화시키고, 개체는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재미있는 생각은 환경이 없이 생물이 존재할 수 없듯이, 생물이 없이 환경이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환경(surrounding)이란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데 그러려면 당연히 그것에 의해서 둘러싸여지는 것이 필요하는 것이다. 또한 환경의 개념도 상당히 새롭다. 예를 들어 바위를 사용하지 않는 생명체에게는 바위가 환경으로써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각 유전자를 다른 유전자의 환경으로 보면서 환경의 개념을 각각의 유전자에 까지 확장시킨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발상이다. 어쨌든 분명 이러한 내용들의 중심생각은 결코 생명체와 그것은 환경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며, 어쩌면 환경과 개체, 그리고 그 안의 유전자까지 하나의 연결된 체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나온 생각은 아니지만, 극단적으로 이러한 체계 전체를 진화의 대상으로 보는 것도 가능할 듯 싶다. 진화를 단순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의 개념이 아니라 좀 더 포괄적인 안정화(stablization)의 개념으로 설명하면 이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어떤 안정화된 상태가 나타나면 그것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그러한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진화의 과정, 즉 지구상 생명체들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안정화된 상태의 양상이 약각씩 달라지는 형태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안정화개념으로 진화를 설명하는 것은 내가 요즘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구상하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것은 단순히 생명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무생물적인 현상, 심지어 우주의 발달과정에까지 적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보편적 진화 이론(universal evolution theory)이라고 부르고 싶다. ) 바로 이러한 진화에 대한 넓은 시각과 생물학, 궁극적으로는 모든 학문의 접근에 있어서 단순히 기계적인 이론으로 만물을 쪼개고 각각을 분석하고 규칙성을 찾아 설명하려는 데카르트적 기계주의 사고관(Descartes’ mechanism)에 반대하며 좀 더 폭넓고 유기적인 시각을 가지라는 것이 바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주요 메세지라고 생각된다. 바로 이러한 것이야 말로 우리와 같은 과학도 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사항일 것이다.

이러한 훌륭한 책이 흥행 위주의 상업적 도서판매 실태에 밀려 대중에게 널리 이해되지 못하고 심지어 우리나라의 경우는 절판되어 버리고 만 것은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삼중나선”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검색결과가 없다는 메세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Amazon.Com에서는 다행히 이 책이 남아서 판매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서양의 교양과학도서 애호수준을 절실히 드러내주는 부분이다.) 이 책이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일단 위에서 말했듯이 원래 강의 자료를 정리한 것이다보니 내용이 상당히 어려운 데다가 복잡한 실험사례들을 제시하고 있고 (이에 대해서 Bioengineering Class 의 선생님에게 여쭈어봐서 설명을 듣고 나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또한 문체가 상당히 딱딱하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다른 서적들은 우리말로 번역된 것을 읽고 이 책의 경우 영어로 읽었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는 불가능하나, 확실히 독자를 위해 “다듬어진” 형태는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분량도 다른 교양과학서적보다 작아서 실제로 다른 책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초라해 보인 다는 단점도 있다. 이에 따라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게놈(Genome)”, “이타적 유전자(The Origin of Virtue)”, “붉은 여왕(Red Queen)” 등의 서적에 밀려 서점의 한 구석탱이를 차지하다가 끝내 절판되고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입견을 버리고 좀더 본격적이고 진정한 진화론을 배우고 싶다면 반드시 한 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또한 이 책을 읽어보지 않더라도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기본적인 내용, 단순한 부분의 분리와 분석 등 만으로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원리를 이해하고 좀 더 넓고 유기적인 시각을 갖기를 바란다. 만일 그런 시각을 가질 수 있다면 아마 세상을 완전히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개인적으로 원서로 보는 것이 좋기는 하나,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책이므로 이왕이면 일단 한국어로 번역된 것을 읽기를 권한다. 나도 가능하면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간단하게라도 다시 한 번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