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서 - 철학을 위한 물리학 철학을 위한 물리학

“과학, 그 의미”
<철학을 위한 물리학>
하랄드 프리쯔쉬 지음 / 이희건?김승연 옮김
중간고사가 끝나고 부산과학영재고에도 평화로운 날들이 찾아들 무렵, 난데없이 내 정신을 흐려놓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독후감 숙제였다. 학기 초, 김동화 선생님 시간에 언급되었었지만 쉽게 망각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시험이 끝나고 나니 남은 시간도 얼마 없었다. 내가 읽은 책이 혹시 추천도서목록에 있지나 않을까 하고 찾아보았지만 전혀 없었다. 이정도면 추천도서목록에 있을 만 한데 하는 것도 없었다. 암담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는 도서관으로 냅다 뛰었다. 일단, 물리에 가장 흥미를 느껴서 물리코너로 갔고, 거기서 책을 훑다가 “철학을 위한 물리학” 이라는 책을 발견했고, 그것이 도서목록에도 있는 것을 알았다. 당연히 그 책을 빌렸고, 어려운 말이 많았지만 그래도 빠르게 읽었다. 그리고 제출일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생략)

때문이다. 작가는 그 점을 강조했고, 그 점은 1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이야기는 옳다.

작가는 우리 우주를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물질적 우주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 우주이다. 물질적 우주는, 말 그대로 전체 우주, 쿼크와 전자로 이루어진 모든 체계들을 포함하는 것이고, 정신적 우주는 인간의 산물을 뜻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가 만들어낸 개념과 상징이 정신적 우주에 속한다. 우주를 이렇게 나누는 것은 컴퓨터의 경우와 비교할 수 있다. 컴퓨터의 경우에서 하드웨어는 물질적 우주에, 소프트웨어가 정신적 우주에 비유될 수 있다. 하드웨어가 없이는 소프트웨어가 그 의미를 잃게 되는 것처럼, 물질적 우주라는 전제조건 없이 정신적 우주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둘에는 명백한 차이점이 있다.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는 명확하고 획일적이다. 그것에는 불확실성이란 없다. 하지만 정신적 우주에는 명확한 것이 드물다. 개념이나 상징들은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차이점은, 우주의 경우에서 정신적 우주는 물질적 우주에 변화를 준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바꾼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환경을 바꾸어가고 있지 않은가. 물질적 우주가 정신적 우주를 낳았지만, 정신적 우주를 물질적 우주의 개념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정말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의 이런 이분법에 대해 나는 동의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하랄드 프리쯔쉬 말처럼 정말 물질적 우주와는 무언가 구별되는 정신적 우주가 있다고 단정한다면, 우주의 본질에 관한 우리의 연구가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 언젠가 한계에 도달한 과학자들은 그것을 ‘정신적 우주’ 라는 개념 속에 집어넣어 버리고 방치해 버리지 않을까?
반대로, 만약 정신적 우주가 결국엔 물질적 우주의 개념으로 설명될 것이라 생각해보자. 이것은 운명론자들의 생각과 비슷한데, 오늘날 이런 생각은 양자론의 발전으로 많이 사라졌다. 아인슈타인도 이런 생각을 가졌었는데, 그 또한 양자론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생각을 고쳐먹었을 것이다.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무엇이든 ‘확실한’ 것이 없고 ‘확률’ 로서 그것을 나타낼 수 있다. ‘확률’ 로서는 그 일이 일어날 ‘확률’ 만을 구할 수 있을 뿐,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는 보장을 할 수가 없다. 뒤에서 말하겠지만, ‘확률’에서 어떤 경우를 정하는 과정에 대해 우리는 무언가 알 수도 없고 그 과정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따라서 물질적 우주의 개념만으로는 모든 현상이 정확하게 해명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의견 - 정신적우주의 존재여부에 관한 - 은 서로 상반되어 보인다. 게다가 나는 위에서 두 상반되는 의견을 동시에 반박함으로서 내 의견에 대한 타당성을 짓밟아 버렸다. 하지만 사실인 것을 어떡하지? 나는 정말 두 가지 의견 모두에 반대한다.

정신적 우주를 이루는 개념과 상징. 이들은 모두 인간의 뇌에서 나온 것들이다. 인간의 뇌는 사고 작용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창출해냈으며, 그 과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뇌 또한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고 세포들의 상호작용들을 통해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세포들의 상호작용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원자의 세계까지 들어가야 하고, 더 정확히 하기 위해 더 작은 소립자들(이 책에서 말하는 쿼크와 전자들)의 움직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런 미묘한 움직임들까지도 명확히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정신적 우주를 물질적 우주로써 ‘계산’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문제점이 있다. 소립자들의 움직임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의 움직임은 앞에서 말했듯이 ‘확률’ 로서 나타내어진다. 심지어는 이들의 존재 자체도 전 우주에 퍼져있는 ‘확률’ 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확률로 시작해서 확률로 끝나는 계산을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정신적 우주는 확률적으로 겨우 이해될 수밖에 없고, 작가는 그것을 물질적 우주와 구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확률’ 의 개념을 확장시킨다면 정신적 우주를 이해할 수 없을까. 앞에서 ‘확률’ 의 문제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정신적 우주를 물질적 우주 개념으로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확률’ 이 가지는 불확정성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수학이라는 학문에서 그런 불확정성을 이미 인정했고, 그것을 확장시킬 수 있다. 단지 수많은 경우 중에 한 경우가 택해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다. 다만 가만히 그것을 지켜볼 뿐이다. ‘신’ 이 이런 과정을 주관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자꾸 확률, 확률거리니까 헷갈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내가 이해가 안 간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정신적 우주는 물질적 우주에서의 확률로 나타내어질 수 있다.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확률 자체의 문제 - 불확정성의 문제 - 로 들어가서 나는 ‘중재자’ 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신’ 은 존재하는 것일까......?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작가는 상호 보완적이라는 의견을 갖고 있다. 이 의견에는 나도 동의한다. 과학과 종교는 우주관의 상호보완적인 두 측면이다. 그 둘은 자립적이지만,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이 책에 아인슈타인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며, 과학이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논할 때, 작가는 동방의 종교와 기독교를 비교했다. 모든 동방의 종교들은 우주의 통일성과 그 의미에 대한 인식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우주의 분리는 인간의 짓이며 본래의 우주에 내재된 성질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기독교의 신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는 개인의 고통과 슬픔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것에는 기독교의 힘과 성공이 들어 있지만 취약성 또한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주의 섭리와 연관성이 큰 것은 동방의 종교라 할 수 있다. 나 또한 동방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을 읽을 때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과학은 자연을 분해하여 그 원리를 알아내는 학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분리에서 벗어나 자연을 전체적으로 보는 통찰력의 필요성 또한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항상 마주치는 친구들이라 가족들을 쿼크와 전자의 구조물이 아닌, 하나의 ‘인간’ 으로 봐야 하듯이, 우주를 그렇게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을 분해하여 얻은 지식들은 우리가 자연을 통찰력 있게 바라볼 때 그 의미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물리학 책을 보다 보면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물론 물리학이라는 학문이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물리학이 과학의 전부인 양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쪽에 심취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다른 것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물리, 그 하나만을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그런 것일까? 어쨌든, 나는 이런 면에서 물리에 매력을 느낀다. 앞으로 더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더 배우면 배울수록 흥미를 잃어갈지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이상적으로 생각할 뿐이다. 단지 내가 바라는 것은 나도 물리학자가 되어서 이런 책을 한 번 써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