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서 - 파인만농담도잘하시네 파인만농담도잘하시네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1,2)’를 읽고...
이 책은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만의 친구 랄프 레이튼이 그와 함께 드럼을 연주하면서 지내온 7년 동안 이따금 오고 간 격의 없는 대화들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파인만의 일생 중에 모든 명성과 업적 뒤에 숨겨져 있는 솔직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다. 모두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총 5부에 걸쳐 리차드 파인만의 전생애에 걸친 모험과 사상을 보여준다.
이 책에는 그가 일생을 살면서 펼쳤던 온갖 무용담이 담겨 있다. 그는 원자폭탄의 모든 비밀들이 깊숙이 보관되어 있는 금고를 털기도 했고, 전혀 뜻밖의 제안을 받아 발레 공연에서 드럼을 연주하기도 했으며, 안마소에 걸어 둘 나부상을 그려준 화가이기도 했다.
지난겨울에 읽었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그에 관한 이론적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놓은 책 ‘E=mc2’ 에서 ‘리차드 파인만’의 이…(생략)

좀 고쳐달라고 찾아왔다. 물론 어린 파인만이 전문 기계공만큼 기계를 다룰 줄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 때가 미국의 대공황 때라 아마도 돈을 아끼려고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파인만이 그 집에 가서 라디오를 살펴본 후 한참동안 가만히 서서 고민을 하다고 결국 고쳐내자 그 사람은 그 날부터 사람들에게 파인만이 ‘머리로 라디오를 고치는 아이’라고 칭찬하고 다녔다고 한다. 또한 파인만은 학창시절에 기존의 수학기호들 보다 편리한 자신만의 기호들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만의 기호들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먼저 그의 인생의 다양성과 황당한 사건들은 다른 전기문에서 볼 수 없는 재미를 준다. 또한 창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다른 한 가지는 이 책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의 인생 에피소드만 나열해 놓은 것 같이 보이지만 이면에는 그의 독특한 사상과 철학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이 책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덧붙여서, 이 책을 읽으면서 그와 나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도 즐거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쉽게 알 수 있었듯이 인생은 도전과 즐거움의 연속이다. 그 누가 아둥바둥 힘겹게 살라고 했는가. 그는 순진하고 단순하고 호기심도 많고 그것을 곧 행동에 옮긴다.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신에 대해 뭔가 자신감이 느껴진다. 자기가 옳다는 생각하면 지지 않는다. 자신이 손해 보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점은 나와 비슷한 것 같았다. 분명 나와는 많이 다른 사람이지만 유명한 과학자가 나와 비슷한 점도 많아서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의 경험을 읽어보며 특히 느낀 것은 그의 집중력이 대단히 놀랄만하다는 점이다.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호기심을 느낄 수 있는 일에는 매 순간순간 그는 항상 최고의 경험을 가지려고 했으며 그것이 그 자신에게 있어서 최대의 효용이었다.
리차드 파인만의 인생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물리학자로써 핵폭탄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금고털이로 잠시 활약하기도 하고, 봉고 연주자, 가짜 음악가, 화가 등등 그의 생각이나 행동들이 모두 맘에 들거나 바람직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않지만 꽤나 재미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파인만, 그는 꼭 인생을 즐기라고 말하는 것 같다. 파인만은 정말로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진정한 과학자이며 천재이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눈을 가졌고 구체화는 그의 특기이다.
그리고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뼈가 들어있다는 것 또한 느꼈다. 특히 브라질의 과학교육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는 우리나라의 학교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의 브라질의 교육 내용에 대한 비판은 그 자체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아주 따끔한 비판이었다. 또한 마지막에 실린 캘텍(Caltech)에서의 연설은 과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끔 했다.
이 책을 읽으며 파인만의 살아온 이야기들 속에 숨어 있는 과학자로서의 탐구 정신은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게 해주었다. 물리학, 생물학, 화학 등을 연구함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연구 자체를 흥미 거리로 여기며 탐구를 즐겼던 사람, 게다가 미술가로서의 삶도 산 그의 태도는 공부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또한 ‘생각의 전환’을 통해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훨씬 나은 새 방식을 추구하는 그의 태도는 나에게 과학도로서의 자세를 다시 한번 자각하게 해주었다.
한편 프린스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원자폭탄 제조를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속에서의 생활은 검열이 심하고 경직된 분위기였음에도 아내와 재미있는 암호를 써서 편지를 교환하기도 하고 딱히 즐길 거리가 없는 그곳에서 금고를 여는 기술을 습득해 원자폭탄 제조 비밀이 담긴 문서를 슬쩍해 친구인 금고 담당자가 사색이 되게끔 하기도 했다.
이처럼 과학자라기보다는 재기 넘치는 예술가 같은 그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황당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노벨물리학상까지 수상했으면서도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익살과 재치가 가득했던 그의 일상이 내게 때로 무거울 수 있는 삶을 가볍게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듯도 했다. 그러나 가벼움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가벼움 속에 삶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가치를 전해주었음은 물론이다. 아울러 그가 삶을 대할 때 가졌던 끝없는 호기심과 대담성 그리고 모험정신은 그의 물리학에 대한 깊이 있고 진지한 업적과 어우러져 향기 있는 삶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목에서 `농담도 잘하시네!`라고 해서 심각하고 무거운 책이 아니라는 것은 감을 잡고 있었지만 최소한 노벨상을 타기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어떤 고뇌를 하면서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참가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자부심은 철철 흘러넘치지만 ‘그 결과가 사회에 어떤 영항을 끼쳤는지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게 진짜 학자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던 이론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경우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난 뒤 크게 후회를 하여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49∼50년에 있었던 수소폭탄제조의 시비를 둘러싼 논쟁에서, 제조에 반대하는 등의 온갖 노력을 했다. 그에 비해 파인만은 자신이 이십 여만 명의 피해자를 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죄책감을 느낀 것 같지는 않았다. 파인만에 대해 출판된 다른 책들엔 그런 부분이 나온 것도 있는 지 한번 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