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색자작 - 가시고기 고쳐쓰기 가시고기

`가시고기` 고쳐 쓰기
벌써 프랑스에 온 지도 일주일이 다되어 가요. 그런데 아직 아빠는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았어요. 혹시 날 잊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주 조금이예요. 그리고 내가 아빠에게 준 조각이 있으니까 걱정 없어요. 그걸 보면서 아마 날 기억할꺼예요.
내가 살고 있는 프랑스는 멋있는 곳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 이상해요. 눈도 파랗고 아마 외국 사람들은 이렇게 생겼나 봐요. 엄마는 나에게 잘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이것 저것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난생 처음 보는 훌륭한 집에서 살아요. 그런데 어제 저녁을 먹는데 엄마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코털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라는게 아니겠어요. 전 너무 놀라고 또 화도 났어요.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죠. 그러니까 코털아저씨가 아니라면서 그럴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도 코털아저씨가 싫은 건 아니지만 다움이에게는…(생략)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 아빠는 놀라실 거예요. 나는 여기서 미술을 배우고 있어요. 처음에는 엄마가 시켜서 시작한 미술인데 하면 할수록 정말 재미가 있어요. 아, 이번에 한국에 나가게 되었어요. 내 작품이 대회에서 1등을 해서 한국에 초대를 받았어요. 아빠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한국에 오지 말라고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어요. 뭐 저도 이제는 많이 컸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아빠도 무척 기뻐하실 거예요. 아빠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고 한국에 갈 생각이에요. 아빠를 놀라게 할 생각이거든요. 아빠를 만나게 되다니 정말 잠이 오지 않아요.

나는 며칠 전 TV를 보고 나서부터는 기대 반 당황 반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다움이의 입국소식을 TV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다움이가 받은 상이 꽤 유명한 상이라 다움이가 한국에 초청을 받게 된 것이다. 언젠가 다움이가 돌아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올지는 몰랐다. 그래도 제 엄마가 훌륭히 키워놓았군. 만약 선배가 살아 있었으면... 어쨌든 드디어 다움이와 함께 사락골을 가게 되었군.

나는 한국에 오자마자 아빠를 찾았어요.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빠에게 전화를 해도 다른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니겠어요. 자긴 우리 아빠가 아니래요. 내가 들어도 아빠 목소리는 아니예요. 아빠의 소식을 아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어요. 이런 날 엄마는 말렸어요. 하지만 난 아빠를 꼭 만나야만 해요. 분명히 아빠가 가장 기뻐 해주실 거예요. 아! 맞다. 진희 고모를 잊고 있었어요. 진희 고모라면 분명히 아빠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 거예요.

그렇게 다움이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움이는 훌쩍 커 있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하려 했지만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다움이를 차에 태웠다. 다움이가 아빠의 소식을 계속 물었지만 한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다. 이윽고 차가 사락골에 다다랐다. 슬쩍 다움이의 얼굴 표정을 보니 아빠와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그런지 슬픔 반 아빠를 만난다는 기쁨반의 표정이었다.

진희 고모가 오늘 따라 이상해요. 평소 같으면 빨리 아빠를 만나게 해줄텐데 왜 사락골로 온건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갑자기 그때의 기억들이 났어요. 몸은 힘들기는 해도 정말 즐거웠던 한때였던 것 같아요.

우리는 계속해서 걸어가다가 조그마한 무덤 앞에 멈추어 섰다. 나는 무덤의 잡초를 뽑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다움이의 몸이 경직되었다. 나는 사락골에 오기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다움이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가장 사랑하는 아빠가 누워있는 곳이라는 걸.

난 너무 당황스럽고 서러워서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울기 시작했어요. 정말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은 한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아마 없을 거예요. 하지만 난 곧 울음을 그쳤어요. 내가 운다면 아마 아빠는 싫어하실 거예요. 아빠는 내가 프랑스로 떠나는 날, 씩씩한 모습으로 살라고 했어요. 이제부턴 어른이라고 어른답게 생각하고 어른답게 행동하라고. 난 그 말을 잊지 않았어요. 그리고 지금 그걸 실천하는 거예요. 이 말이 아빠가 나에게 부탁한 마지막 부탁이니까요. 그래서 난 울지 않았어요. 하지만 조금씩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어요.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그 눈물만은 참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오늘에서야 내가 깨달은 게 있어요. 이 세상 하나 밖에 없는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 아빠는 언제나 나의 곁에 함께 있다는 것을.

가시고기 우리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