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걸리버 여행기

내가 바라본 걸리버의 인간들
‘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인간은 어떠한 존재일까? 나는 이러한 질문을 나 자신에게 쉴새없이 던져본다. 그러나 인간이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동물이기에 나는 여러 가지 인간의 특성을 보고 보편적인 인간상을 그려보아야 했다. ‘걸리버 여행기’는 그러한 인간들 중 무언가를 지배하려고 하는 인간의 특성을 보여준다.
걸리버의 첫 번째 여행지는 소인국이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왕국이었지만 실제로는 외국의 침략과 당파싸움으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원인은 ‘계란을 어느 쪽으로 깨먹어야 하는가’ 였다. 그 사소한 명분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갈라진 것이다. 사실 계란을 어느 쪽으로 깨먹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계란이다. 위쪽이든 아래쪽이든 쪄먹든 삶아먹든 알아서 먹으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는 이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생략)

육도 그저 그렇게 살만한 대로하고 어려운 말이나 사색을 싫어한다. 그런 나라는 분명 당분간 살기에는 최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나라가 몇 십 년 지속되다 보면 언제나 제자리에 서 있게 돼서 발전하지도 않고 나아지지도 않아 결국엔 다른 나라에 발견되어 점령당해 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나라가 그러한 나라였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머물러서 안주를 바랬지 발전을 이룩할 생각은 적었던 것이다.
세 번째는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였다. 그곳의 이상한 연구소 연구자들은 허황된 지식인들의 피폐를 보여준다. 그들은 실현 가능성 없는 실험 주제에 억지 연구를 하면서 거액을 받는다. 들판의 농민들은 굶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변화가 없는 것은 악’이라며 계속 새로운 것을 원하고 있다. 새로운 것, 혁신된 것은 분명히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전까지 지속된 것들 중에도 훌륭한 것은 있을 수 있다. 또한, 새로움을 찾지만 그곳에 불필요한 것이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시한 채 오직 변화만을 주장하는 것은 책상 앞에서 명령만 내리는 이들이 이 나라에 만발하다는 것이다. 변화시킨다는 것은 실체에 상관없이 겉으로는 힘들어 보이고 새로워 보이고 좋아 보이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변화’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일에 지지를 모으는지도 모를 일이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나에게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인간의 본성에 귀 기울이게 하는 것은 바로 마지막 여행인 휴이넘과 야후와의 만남이다. 가장 더럽고 욕심 많고 사악한 존재인 야후와 고상하고 이성적인 말 휴이넘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야후를 보면서 나는 큰 두려움을 느꼈다. 야후는 인간의 한 모습이다. 아니 인간은 모두 야후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야후보다 더한 존재일지 모른다.
같은 무리끼리 싸우는 것은 야후 뿐이라고 휴이넘은 말한다. 사실 같은 무리끼리 싸우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지만 대대적으로 서로 죽이려는 싸움을 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얼마 전 뉴욕의 세계 무역센터가 무너졌다. 그 안에 있던 이들은 영문도 모른 체 세상을 떠났다. 이 일을 누가 지도했건, 인간에게 그러한 일을 계획할 마음이 있다는 것에 같은 인간으로서 수치심을 느낀다. 그런데다가 그 테러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미국과 아프카니스탄의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 전쟁은 아무런 이득이 없는 데도 복수라는 깃발을 든 채 무고한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너무 커다란 가치를 부과한 나머지 무고한 인명을 해치는 일을 한다.
어느 누군가가 인간은 우주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인간은 이 지구와 맞지 않은 존재라는 말이다. 정말 그렇다. 인간이나 야후는 지구의 생태계에 맞지 않는다. 만약 나를 문명의 혜택이 전혀 없는 자연에 떨어뜨려 놓는다면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 그 만큼 우리는 자연에 우릴 맞추지 않으며 우리의 문명 기기로 자연의 모습을 우리 인간에게 맞추어 왔다. 그러다가 우리가 한순간 문명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우리는 휴이넘이 될까, 아니면 야후가 될까. 아마도 우리는 야후의 습성에서 벗어나질 못할 것이다. 겉으로 고상한 체 점잔피우는 이들도 그들을 덮어 줄 돈, 힘이 사라진다면 끝까지 고상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나 역시 야후의 습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걸리버’라는, 야후라고 할 수 있으면서 자신의 더러움을 인지할 줄 아는 야후가 있다는 것이다. 걸리버는 반성을 알고, 본받음을 알고, 높음과 낮음을 알고, 또 자유를 안다. 그것은 우리가 지닌 야후의 본질을 덮어 줄 수 있고 우리의 삶을 인간다운 삶으로 인도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