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 서울 1964년 겨울

`서울, 1964년 겨울`
흔히 현대인을 두고 군중 속의 고독한 상태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서로 자신들의 일만 생각해서 군중 속 사람들이 서로 연관되지 못하고 개개인으로 행동함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군중 속의 고독은 비단 현대인에게만 해당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마음의 교류가 없다면 그것에서 고독함을 느낄 것이다. 다만 현대사회의 기계화 속에서 사람들의 감정이 메말라가기 때문에 서로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아서 군중 속에서도 고독한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김승옥 님의 `서울, 1964년 겨울`은 그러한 군중 속의 고독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와 `안`은 25살 동갑내기로 겨울 밤 선술집에서 만났다. `나`는 육군 사관 학교에 지웠했다가 떨어져 지금은 구청 직원이며 `안`은 부잣집 장남에 대학원생이다. `나`와 `안…(생략)

왜 그들은 외로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들이 소유하길 원했던 것은 한낱 물건이나 사실 따위가 아니라고. 그들이 정말 원했던 것은 타인 마음의 소유라고. 나는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 파리나 꿈틀거림 등에 대해 말을 하는 `나`와 `안`이 안쓰러워졌다. 왜 그들은 주위에 있는 사람과 그 마음을 먼저 사랑하지 않았을까?
마음을 주고받으면 외롭지 않을텐데.....
반면에 사내는 `나`나 `안`과는 조금 달랐다. 그는 마음을 소유했었다. 외롭지 않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단 하나의 소유 대상인 아내가 죽어버려 외로워진 사람이다. 나는 사내가 제일 불쌍했다. 아내의 장례를 세상 누구보다 잘 치러 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난뱅이에 아내의 친정마저 몰라서 해부용으로 아내를 팔아버리고 그 죄책감에 시달렸다. 게다가 오늘까지 함께 하던 사람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그는 견디지 못했다. 세상에 자기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 얼마나 처참했을까? 어쩌면 자살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사내가 살았다면 둘이 있던 세상에 혼자만 남겨진 달래지지 못할 외로움을 평생 지고 가야 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안`이 여관에서 외로워하는 사내를 둔 채 각방을 쓰자고 했을 때는 화가 치밀었다. 그의 눈에도 사내의 위태로움이 보였을 텐데 어째서 기댈 수 있게 하지 않았는지...더욱이 자살할 것을 짐작했다면 죽을 때마저도 덩그러니 외롭게 두지는 말아야 하지 어째서 혼자 두는 것이 최선일 줄 알았다는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한 이기적인 모습들을 보고 느꼈다. `나`와 `안`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비록 단 하룻밤을 함께 지냈지만 독자인 나에게까지 전이되는 사내의 커다란 슬픔에 동요해 주지 않았고 급기야 죽었을 때는 욕을 하며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도망가는 것을 보고 차갑고 자신들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떻게 하루 전날에 함께 했던 사람의 죽음을 덤덤하게, 아니 재수 옴 붙은 것처럼 여길 수 있는지......
만약 내가 사내를 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비단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내의 돈을 함께 써버리기 보다는 그 돈으로 열심히 살아보라고 위로했을 것이며 외로워하는 사내의 등을 한 번쯤은 쓰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더욱이 죽을 것을 예상했다면 밤을 새워 같이 있어 주어야 하는 건 마땅한 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문득 지금의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중에 내가 `안`들의 나이가 되면 그들처럼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려워졌다. 소중한 나만의 것이 단지 아무 감정도 없는 사물뿐이라면 얼마나 허무한 인생이란 말인가?
나도 가끔씩은 이 글의 주인공들처럼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사내와는 달리 외로움을 이길 수 있다. 나에게는 나의 일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 친구들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내와 달리 외로움을 이겨낸다. 또한 `안`들과 달리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과 함께 살아있는 순간 순간이 의미 있다.
`나`와 `안`처럼 자신의 일에만 감정을 느끼고 남의 일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우리주변에 그리 많지 않다고 나는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처럼 외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겠다. 당신의 마음을 먼저 열라고. 한번이 안되면 열번이든 백번이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소유하길 노력해보라고. 군중 속의 고독을 피할 수 있는 건 군중 속의 사람들과의 연결이기 때문이다. 마음과 마음의 연결만이 군중 속에서 외롭지 않고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2002년 봄이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또다른 `나`와 `안`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사내의 죽음으로 `나`와 `안`에게 변화의 희망이 싹트는 것처럼 자신만 아는 누군가와 어딘가에 숨어있을 우리들의 외로움이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다른 사내가 군중 속의 고독에 지쳐 죽어가기 전에 구해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