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의 도가니`를 읽고 얼음의 도가니

‘얼음의 도가니’를 읽고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서인지 종래의 소설 읽기와는 다른 소설이어서 좀 많이 당혹스러웠다.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쉽게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한 번 읽어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고 해야하나..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것은 소설이 주는 차가운 느낌이 일관되어져 있어서 줄거리보다는 그런 느낌으로 이해를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특별한 줄거리라고 할 것도 없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여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나라는 인물이다. 소설가인 나는 쓰고 있는 작품이 마음에 들지를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소설이 아니거나, 쓰고 싶어했던 말을 마무리 짓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진평이란 한정된 무대에서 그는 한정된 사람들을 만나면서 결국 삶과 융화가 된다. 다시 소설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눈덩이 속에서 미세한 실…(생략)

내가 진평에 와있는 것도 출판사인 "배경과 윤곽"사에서 꾸민 농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소설의 출판을 돌연 취소해버린다. 그렇게 "배경과 윤곽"사에 저항하면서도 결국은 그 질서에서 못 벗어난 채 진평을 맴돌기만 한다.
출판사의 농간에서 벗어나서 자기의 영토를 확보해야 할 유일한 자격은 내가 소설가이고, 작가라는 것이었다. 정식의 작가라면, 응당 자유인이어야 한다. 그것은 소설의 결미에 가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런데 실제의 나는 아직 자유인이지를 못하는 것이다. 나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나를 용서하지를 못하는가.
얼음으로 된 도가니 속에 내가 있었고, 나 자신이 실상은 얼음으로 된 도가니였던 까닭이다. 얼음으로 된 도가니에서는 "악마의 서" 같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장사꾼의 하수인 노릇 하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창조할 수 없다. 출판사 나부랭이에 놀아나는 작가란 결코 용서될 수 없다.
『밤중에 깨어 있으려는 성향. 삶과 죽음과 더 나아가 문학이라는 것. 나는 그냥 잠이라는 것에 저항한다. 그러면서 나는 현실 속에서 의도적으로 죽음 속으로 잦아들고자 한다. 그것은 한밤중의 어둠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밤중에 잠이 깨어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거리는 지금, 나는 모든 것이 너무도 간단히 뒤집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작가의 진면목이란 이래야 한다. 이에 충실치 않은 경우 나는 나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나를 용서할 길은 없는가.
내 의식이 일상이며 내 일상이 의식이기 때문에 의식을 끌고 간 만큼 일상을 인정해야 한다면, 일상을 인정한 그만큼 의식을 긍정해야한다. 개와의 눈싸움으로 듣게 된 개 짖는 소리는 마지막 개 짖는 소리에 와서 싸움 의지로 충혈된 눈에 돋아난 실핏줄들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실핏줄은 대립의 균열, 막막한 타자로부터 가늘고 따뜻한 떨림으로 전해오는 통화의 갈망, 바로 그것의 실증이다. 나를 새하얗게 얼어붙게 하는 죽음의 철로, 즉 과거의 불행한 기억들, 미래의 암담한 전망을 싣고 나에게 몰려오는 철로는 더 이상 종착지가 예정된 외줄기의 직선로가 아니라 마음의 교류의 떨림을 은은히 전하는 울림통이 된다. 그 철로는 붉다. 다시 말해 생명의 기운으로 약동한다. 그것이 나를 그토록 가두었던 거대한 빙산을 두 쪽으로 가른다.
나는 비로소 화해에 대해 말한다. :
『아마도 중요한 것은 변화가 아니라 화해다.』
이 기나긴 과정의 촉발제가 된 개는 긴 의자에 앉은 검고 가늘고 긴 머리의 소녀 곁에서 길고 붉은 혀를 늘어뜨리고 있다. 그 모든 긴 것들은 철로의 암시이며, 철로 자체의 변화에 대한 암시이다. 개 짖는 소리는 일상에 대한 부정의 외침이 아니라 일상을 부정한 나의 의식, 선택에 대한 각성의 외침이다. 로즈마리나, 아버지, 망명, 아들과의 인연 등은 모두 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 개 짖는 소리다. 그리고 그것은 <톰과 제리>의 불독처럼 삶의 아슬아슬함을 단숨에 파투 낼 백일몽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삶도 부조리에 싸여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내가 정말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는데 나는 삶이 나를 속이는 것이 두려워서 그저 일확천금을 노리는 장사꾼의 하수인 노릇이나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이라도 내 얼음의 도가니를 깨고 나올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