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를 읽고 허삼관매혈기

스토리 자체로 매력 있는 책을 읽는다는 건 큰 행운이다. 할머니의 구수한 옛날 이야기를 들을 때와 같이 눈을 반짝거리며 책을 읽고 싶을 때는 더욱 더. 친구의 강력 추천작, 제목부터 맘에 든다. 내용은 허삼관 아저씨와 그의 미워할 수 없는 부인 허옥란 아줌마, 그들의 아들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의 굴곡 있는 가족사. 사람의 인생 역정을 그린 소설은 이 세상에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러한 책들은 대부분 읽고 나면 가슴 한켠이 저려오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허삼관처럼 주인공이 피를 팔아가며 생계를 유지해야만 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런 어두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일단 이 책은 만화책 마냥 재미있기 때문에 손에 잡히면 쉽사리 뗄 수가 없다. 군더더기 없이 진행되는 빠른 전개 속에 풍자와 유머로 가득찬 대사는 마당놀이를 보는 듯 소설 안으로 독자를 통화케 한다. 이 책의 작가가 중국인이라지만 그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세상을 살고있…(생략)

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인생`이란 허삼관과 같은 노동자 계급에게만 해당하는 것 같다. 병원에서 혈두 노릇을 하는 이 혈두를 보라. 그는 성 안의 사람들이 쌀 한 줌에 목숨이 오가는 판에도 혈색 좋은 얼굴을 하고 배부른 권력층을 대표하고 있다. 진리라는 것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들어맞아야 하는 이치가 아니던가? 누군가에게는 목이 타들어 가는 언덕의 비탈길이 누군가에게는 한 몫을 단단히 잡을 기회가 되니-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 뿐만이 아니다. 허삼관의 세 아들들은 장성하여 첫째는 식품회사, 둘째는 백화점, 셋째는 기계공장에 자리를 잡고 벌이를 하며 살게 된다. 허삼관은 더 이상 끼니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에 너무나도 흡족해하지만 이 얼마나 씁쓸한 일이란 말인가? 신분의 세습은 이 시대에도 여전하고 서민층은 그저 생활의 작은 안정에 만족한다. 그리고 이 소박한 만족이 그들의 신분을 굳히고 있다. 글의 문체가 다소 단순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무척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정말 좋은 글은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 한다. 읽기 쉽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