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 오래된 정원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을 읽고 -
80년대를 휩쓸었던 독재 타도의 물결이 수그러든지도 벌써 오래되었고, 경제적인 이유로 빛을 잃긴 했지만 평화적인 정권교체도 이루었고, 독일이 통일되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세계적으로 이념에 대한 공방이 사라진지도 오래인 지금,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80년대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끄집어 내는 이유는 황석영씨 작품 때문이다. 88년 『무기의 그늘』을 발표한 이후 방북, 독일체류, 5년 남짓한 감옥살이로 인해 12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접어야 했던 황석영씨가 다시 독자들 곁으로 다가오면서 발표한 소설, 80년부터 90년대에 이르는 역사의 격동적인 현장을 담아낸 『오래된 정원』이 그것이다.
『오래된 정원』은 간첩단 조작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정치범 오현우가 18년 동안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감하면서부터 시작된다. 18년 세월이 주…(생략)

고 동료들을 배신했다는 자책감에 술로만 살아가는 아버지, 그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도피중인 오현우를 숨겨주고 운동권 사람들을 도와주는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때문에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도 오현우를 붙잡지 못한 채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울 수밖에 없었다.

갈뫼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딸을 만나기 위해 다시 서울로 떠나는 오현우의 모습에서 끝을 맺은 『오래된 정원』은 어쩌면 황석영씨 그 자신을 위한 후일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오현우라는 인물은 작가의 젊은 시절이 투영된 인물이고 한윤희 역시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인상을 투영하고 있다. 한윤희의 기록을 통해 오현우가 지난 18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듯이 작가 역시 오현우와 한윤희의 18년을 통해 그 자신이 걸어왔던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정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작가가 오현우화 딸 은결이와의 만남을 애써 뒤로 미룬 것은 지금은 미래를 위한 계획보다 과거를 향한 돌아봄과 정리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에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윤희의 말처럼 80년대를 관통했던 그 시대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져 이제 그 의미조차 희미해져 버렸다. 하지만 그 가치들을 위해 온몸으로 살아냈던 사람들이 있었고, 오늘의 우리는 그들이 온몸으로 지키고자 애썼던 그 가치들 위에서 집을 짓고 있다. 이제는 빛바랜 가치들이지만 그래도 그 가치들을 잊지 말아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가치들을 기억하지만 그 가치들에 목매달지는 않는 작가 황석영씨가 있다. 앞으로 그의 작품이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가 주목된다. 애써 미뤄놓았던 딸 은결이와의 만남에서 앞으로 그가 추구할 문학적 경향을 짐작해 본다. 그의 힘있는 서사와 오랜 연륜 끝에서 나올 서정의 합일을...

"이제는 당신도 나이가 많이 들었겠지요.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 빛나고 있어요. 살아있는 한 우리는 또 한번 다시 시작해야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 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햇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대학시절을 생각하면 언제나 함께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매캐한 최루탄 냄새, 부서진 인도의 벽돌, 학교 정문 앞 인도변에 피곤한 모습으로 앉아 있던 전경들, 마스크를 하고 몽둥이를 들고 화염병으로 무장한 학생들, 수배중인 학생들을 잡기 위해 고정적으로 학교에 배
치되던 경찰, 체포조, 페퍼포그... 매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시위가 벌어졌고, 축제때면 광주의 비디오들이 상영되곤 했었다. 그리고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우리가 강의를 듣고 있던 그 시간, 그 강의동에서 투신을 한 동기... 박종철이나 이한열처럼 인구에 회자되지는 못했지만, 그 무렵 유난히 많았던 대학생들의 분신이나 투신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도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그 친구... 그 친구때문일까. 80년대를 생각하면 왠지 빚진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목숨까지 내던지며 치열하게 그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의 희생을 발판삼아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80년대를 휩쓸었던 독재 타도의 물결이 수그러든지도 벌써 오래되었고, 경제적인 이유로 빛을 잃긴 했지만 평화적인 정권교체도 이루었고, 독일이 통일되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세계적으로 이념에 대한 공방이 사라진지도 오래인 지금,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80년대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끄집어 내는 이유는 황석영씨 작품 때문이다. 88년 『무기의 그늘』을 발표한 이후 방북, 독일체류, 5년 남짓한 감옥살이로 인해 12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접어야 했던 황석영씨가 다시 독자들 곁으로 다가오면서 발표한 소설, 80년부터 90년대에 이르는 역사의 격동적인 현장을 담아낸 『오래된 정원』이 그것이다.

『오래된 정원』은 간첩단 조작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정치범 오현우가 18년 동안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감하면서부터 시작된다. 18년 세월이 주는 단절감은 오현우가 감당하기 힘든 무게로 다가온다. 잠시 동안의 병원생활과 옛날에 함께 운동을 했던 동료들과의 해후를 뒤로 한 채 오현우는 갈뫼로 향한다. 갈뫼는 투옥되기 직전 오현우가 잠시 몸을 피했던 곳으로 거기서 그는 한 여인을 만났고 그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다. 투옥되기 직전 보냈던 삼 개월 남짓한 시간은 황석영씨가 갈뫼를 하나의 이상향으로 설정하게 되는 가장 큰 동인이 되고 있다. 18년만에 찾은 갈뫼에서 오현우는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된다. 그가 사랑했지만 이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인, 한윤희가 그에게 남겨둔 기록을 만나게 된 것이다.

한윤희의 기록은 도피중인 오현우를 만나 그를 사랑하게 되고 그와 함께 하였던 시간들을 기록한 부분과 오현우의 투옥 이후 홀로 겪어야 했던 80년대의 세월과 독일로 유학가서 직접 독일의 통일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사랑에 눈뜨게 된 90년대에 대한 기록들로 구분할 수 있다. 한윤희가 운동권 사람들을 도와주게 된 배경에는 빨치산 아버지를 둔 원죄의식이 놓여 있다. 빨치산 출신이지만 전향서를 작성하고 동료들을 배신했다는 자책감에 술로만 살아가는 아버지, 그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도피중인 오현우를 숨겨주고 운동권 사람들을 도와주는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때문에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도 오현우를 붙잡지 못한 채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울 수밖에 없었다.

갈뫼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딸을 만나기 위해 다시 서울로 떠나는 오현우의 모습에서 끝을 맺은 『오래된 정원』은 어쩌면 황석영씨 그 자신을 위한 후일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오현우라는 인물은 작가의 젊은 시절이 투영된 인물이고 한윤희 역시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인상을 투영하고 있다. 한윤희의 기록을 통해 오현우가 지난 18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듯이 작가 역시 오현우와 한윤희의 18년을 통해 그 자신이 걸어왔던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정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작가가 오현우화 딸 은결이와의 만남을 애써 뒤로 미룬 것은 지금은 미래를 위한 계획보다 과거를 향한 돌아봄과 정리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에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윤희의 말처럼 80년대를 관통했던 그 시대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져 이제 그 의미조차 희미해져 버렸다. 하지만 그 가치들을 위해 온몸으로 살아냈던 사람들이 있었고, 오늘의 우리는 그들이 온몸으로 지키고자 애썼던 그 가치들 위에서 집을 짓고 있다. 이제는 빛바랜 가치들이지만 그래도 그 가치들을 잊지 말아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가치들을 기억하지만 그 가치들에 목매달지는 않는 작가 황석영씨가 있다. 앞으로 그의 작품이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가 주목된다. 애써 미뤄놓았던 딸 은결이와의 만남에서 앞으로 그가 추구할 문학적 경향을 짐작해 본다. 그의 힘있는 서사와 오랜 연륜 끝에서 나올 서정의 합일을...

"이제는 당신도 나이가 많이 들었겠지요.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 빛나고 있어요. 살아있는 한 우리는 또 한번 다시 시작해야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 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햇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