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속의 외침을 읽고 가랑비 속의 외침

가랑비 속의 외침
순서를 따지자면 <내게는 이름이 없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가랑비 속의 외침>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 매혈기> 순이 맞지만, 나는 <허삼관 매혈기>부터 시작해서 거꾸로 읽어나갔다. 중간에 이 책을 빠뜨렸는데, 덕분에 중단편과 장편 사이의 너무도 큰 차이점에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이 소설은 중단편에서 장편으로 변해가는 위화 소설의 특징을 아주 잘 보여준다. 흔히 그를 `선봉파`로 불리게끔 한 소설들은 대개 중단편들인데, 우리에게 친숙한 <허삼관 매혈기>나 <살아간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실험적 성격이 강한 작품들이다. 이 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은 쓰여진 시기로 보나, 내용상으로도 그의 중단편과 장편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쓰다보니 자신의 유년 시절이 생각났다고 하는데, 그의 말대로 주인공은 어린 아이다. 그러나 화자는 성인이 된 주인공이라고 할 …(생략)

께 진흙탕 속을 굴러다니는 기분이랄까? 정말 무례하고 비열하고 음흉하기 짝이 없는 등장인물들의 모습 때문에,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 적잖이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니, 그런 당혹감이나 실망 같은 것은 조금 희석되는 것 같다. 오히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그들을 이해하거나, 이해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연민을 보낼 수는 있을 것 같다. 특히 이 책의 서술자인 `나`의 마지막 한 마디가 이 책의 느낌을 확 바꿔버렸다. 낭랑한 열두살 짜리 소년의 천진한 한마디가 마치 내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뭔가 다시 시작할 것만 같은 그 한마디.
여하튼 이 책은, 이제껏 같은 문화권이라 여겨왔던 중국(또는 중국문화)에 대해 상당한 이질감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시점도 특이했고, 특히 뒤죽박죽인 시간적 구성이 이 책의 여운을 길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 것 같다.
할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한편으로는 중국인의 고질적인 생활 방식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점은 루쉰의 <아Q정전>이나 <공을기>에 나타는 것처럼 극명하지는 않지만, 개인의 이야기가 당시 사회상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읽음으로써 국내에 출간된 위화의 모든 소설 작품을 읽은 게 되어버렸다. 이문구씨가 자신보다 어린 그를 "문림의 고수"라고 극찬한 바 있는데, 순서대로 읽으나 거꾸로 읽으나 그의 작품세계의 변화를 쉽게 가늠해볼 수 있었다. 위화 장편의 시작이라는 의미로서도 읽어볼 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