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제국의 발견

개미제국의 발견
제 목 : 개미제국의 발견
지은이 : 최재천
출판일 : 1999년 1월15일
출판사 : 사이언스 북스
인간과 같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동물을 예로 들 때면 대표적인 것이 개미와 벌의 사회를 꼽는다. 비록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고 전혀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그들의 생활상을 관찰해 보면 인간사회와 흡사하다고 한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에 우연히 아빠의 서재에서 흥미로운 책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이직 내가 과학도가 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하기 이전이었지만 책의 제목이 나의 흥미를 유발하였다. 그 책은 개미를 소재로 공상소설을 썼다고 이 책에서도 소개되는 프랑스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평소에 궁금한 잡다한 것들을 메모해 두었다가 책으로 엮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었다.
나는 이 책을 영어단어집 가지고 다니듯이 손에 들고 다니면서 탐독하였…(생략)

식은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도 더욱 특화된 면모를 볼 수 있다.
처음 여왕개미가 수정비행을 하고나면 새 살림을 차릴 여왕개미는 자그마한 단칸방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 먹지도 않고 오로지 자식 키우기에 전념한다. 쓸데없이 먹이를 구하려 바깥출입을 하는 위험한 일은 아예 삼가고 몸속에 축적했던 지방과 이제는 쓸모없게 된 날개근육을 분해하여 나오는 에너지를 가지고 첫 일개미들을 키운다. 제한된 자원이 동나기 전에 충분한 병력을 확보해야만 한다. 제한된 시간 내에 외부로부터 식량을 수확해올 충분한 숫자의 일개미들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 왕국은 제대로 한번 서보지도 못하고 멸망하는 것이다.
한 나라를 일으키는 일은 인간 세상이나 개미 세상이나 대단히 어려운 일이어서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여왕개미들 사이에 협동이 이루어진다. 물론 공동 국가는 한 핏줄을 이어받은 동종 사이에서 빈번하지만 중남미 열대림 속에서 서식하는 아즈텍개미의 경우를 보면 이종간의 공동 국가도 발견된다. 그러나 동종이든 이종이든 궁극적으로는 왕권을 쥐는 것은 한 마리의 여왕개미이다.
이렇게 형성된 군락에서는 고도로 조직화된 분업이 이루어진다. 분업구조 속에서 어떤 개미들이 어떤 일을 담당하게 되는지는 종에 따라 다르다. 대부분의 개미사회는 전부 체격이 균일한 일개미로 구성되어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몸의 구조나 크기가 다른 두 계급이상의 일개미로 구성된 종들도 있다.
일개미들의 체격이 균일한 개미 종들에서는 일개미들의 담당업무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를 먹으며 차츰 다른 종류의 일들을 하게 되는 이른바 연령별 분업제도가 행해진다. 아주 어릴 때에는 여왕의 시중을 드는 일부터 시작하여 알이나 작은 애벌레들을 돌보기도 하고 그들의 부화를 돕기도 하는 이를테면 산파나 간호사 역할을 담당한다.
유년기에 접어들면 큰 애벌레들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고 목욕을 시키기도 하는 본격적인 유모의 일을 하다가 장년기가 되면 굴 밖으로 나가 식량을 구해오거나 군락을 지키는 일을 하기도 하고 새 굴을 파는 작업에 가담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개미들이 매일 그저 한 가지 일만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고 일하는 지역이 정해져 있을 뿐이다. 일개미들의 계급이 둘 이상인 사회에서는 업무 분담이 보다 전문성을 띤다. 대체로 체격이 큰 개미일수록 보다 전문적인 업무를 맡고, 거북이 개미 사회에서는 아예 이마가 넓고 평평한 일개미들이 보초를 보는 보초계급이 따로 있기도 하다. 개미 사회에서 이처럼 역할 분담이 이루어짐으로 인해서 철저히 분업화된 작업구조를 가지게 되었고 효율을 대폭 늘릴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또 한 가지 개미의 특성 중에는 철저한 자기 희생정신이 있다.
개미사회는 여왕을 중심으로 이룩된 하나의 국가로 비유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한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딸부자 집 가족사회이다. 그러나 대부분 딸들은 스스로 자식 낳기를 포기하고 여왕을 도와 그로 하여금 집안의 모든 번식을 담당하게 하고 자신들은 일생동안 맡겨진 일만하다 죽어가는 것을 볼 때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사회에서 어떻게 이 같은 이타주의적 개체성향을 보이는지 의문이 간다.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분업화된 개미사회는 이미 오천만년 전부터 나뭇잎을 물어다 그 위에 버섯을 재배하는 농경생활을 하였고 이 같은 공정을 여러 개를 운영함으로써 어느 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여도 전체업무에는 큰 차질이 없도록 조직화되어 있다. 또한 개미들은 진디를 무당벌레나 풀잠자리 같은 천적 곤충들로부터 보호해주고 대신 진디는 식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일부를 개미에게 제공하는 공생관계에 있다. 그러나 단순한 공생의 차원을 넘어 개미는 진디떼를 이 잎 저 잎으로 몰고 다녀 식물로부터 보다 많은 즙을 빨아 당길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식물뿌리나 뿌리 가까운 줄기에 흙으로 움막을 만들어 그 속에 진디를 키우는 것을 보면 인간이 가축을 기르는 것과 차이가 조금도 없다.
개미와 공생관계에 있는 것에는 식물들도 다수가 있다. 개미를 파수꾼으로 이용하면서 개미에게 꽃밖 꿀샘을 통해 개미들에게 고농축된 단물을 제공하고 온갖 초식동물로부터 보호를 받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아예 개기가 살 집을 제공해주는 쇠뿔아카시아나 트럼핏 나무와 같은 식물도 있다.
동물들의 의사소통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크게 네 가지로 이루어진다.
대부분 곤충들이 그렇듯이 개미의 언어도 기본적으로 화학언어 이다. 화학언어는 우리 인간이 사용하는 음성언어에 비해 훨씬 경제적인데, 잎꾼개미의 냄새길 페르몬은 독침샘에서 분비되며 화학적으로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1mg으로 지구를 세 바퀴나 돌 만큼 긴 냄새길을 만들 수 있으며 대단히 휘발성이 강하여 먹이를 다 거두어들이고 난 후에는 냄새가 사라짐으로써 동료개미들이 헛걸음하는 경우를 줄일 수 있다. 청각과 촉각도 그들의 의사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개미들은 원시적인 종일수록 몸짓을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즉 동료를 안내할 때 더듬이로 동료를 몇 번 두드린 다음 돌아서서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하고 뒤따르던 동료의 더듬이가 느껴지지 않을 때에는 물고 끌어당기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을 병렬주행이라 부르는데 어떻게 이런 비효율적인 의사소통 방법으로부터 냄새길을 놓아 한꺼번에 여러 동료들을 동원할 수 있는 이른바 대중전달수단이 진화되었는지 흥미롭다.
개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알아내는 것은 몇몇 원시적인 개미들을 제외하고는 냄새길을 이용하지만 냄새길은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줄 뿐 방향을 제시해주지는 못 한다. 이러한 의문에 해답을 준 사람은 100여 년 전의 산치라는 이탈리아인으로 우연히 개미가 방향을 잡는데 태양을 이용할지 못한다는 생각에 판자를 이용하여 햇빛을 가리자 우왕좌왕하는 것을 발견하고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개미사회에도 무임승차하려는 사기꾼들과 도적들이 있다. 개미 사회의 불청객으로는 응애, 좀, 딱정벌레, 노래기, 귀뚜라미, 나비 등 수천 종에 이르지만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딱정벌레들이다. 도대체 이들이 어떻게 개미들만의 비밀 암호를 해독하였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개미들을 유화시키는 페르몬을 분비하기 때문이고, 침노린재 등은 도둑의 수준을 넘어 개미를 살해하여 피를 빨아먹는 살인강도들도 있다. 또한 여러 가지 동식물들이 개미사회의 번영을 저해하고 있는데 모래함정을 파놓고서 개미가 빠져들기만을 기다리는 개미귀신, 단단한 발톱으로 개미집을 파헤친 후 끈끈한 혀를 이용하여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개미핥기, 같은 개미종류의 군대개미, 끈끈이주걱 등이 있고, 기생충이나 곰팡이류도 개미의 생존을 위협하지만 무엇보다도 개미사회를 위협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다. 군대개미와 같이 다른 종의 개미를 습격하는 것은 물론 같은 종 내에서도 노예를 획득하기 위하여 남의 군락을 유린하는 개미들이 심심찮게 존재한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한 곤충을 들라면 개미를 꼽을 수 있다. 학교 길에서 아파트주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곤충이지만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다.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은 개미에게 특별한 무엇이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때로 개미의 군집생활에 대하여 책에서 보았지만 다른 곤충에 비하여 조금 다를 뿐이겠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개미가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하여 온 생활방식이 현대 인간사회와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없을 때를 대비하여 비축할 줄 알고, 노예를 길러 노동력을 이용하였으며, 고도로 분화된 분업을 실시하는 영악함이 놀랍다. 일생을 조직을 위하여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인 자손의 번성을 포기하게 하는 여왕물질의 통제사회가 섬뜩하다.
지금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이 땅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은 개미인지도 모르겠다. 개미는 인간보다 훨씬 먼저 지구에 나타났듯이 강인한 생명력으로 인간보다 더 오래토록 지구에 생존할지 모른다. 그러나 개미는 지난 어느 때보다도 위험한 환경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에 의한 환경파괴, 각종 공해물질과 인간중심의 자연개발은 결과적으로 개미의 생존기반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5000년 동안 쌓아온 진화의 지식체계를 파괴하고 말 것 같다. 지구가 인간만의 것이 아닌 살아있는 동식물 모두의 것임을 상기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