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을 읽고나서 검은꽃

검은 꽃을 읽고..
맥시코 농장으로 이민을 떠난 한 무리의 조선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애니 깽`이라고 하면 다들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법한데. 애니깽`이란 한국영화가 있었다. 언제였던가 대종상의 각종 상들을 휩쓸었었다. 애니 깽이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었는데, 그게 사실은 에니캔이라는 농작물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알로에와 비슷하게 생겼다는데 그 농작물로 섬유를 뽑아낸다고 했다.
여하튼 몰락하고 있는 조선에서 희망을 보지 못한 각기 각층의 조선인들은 일포드 호를 타고 1905년, 제물포항을 떠나 대서양을 건너 맥시코로 도착하게 된다. 각기 각층의 사람이라고 했지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황실 가문의 가족, 파면당한 신부, 박수무당, 피리를 불던 내시, 소작농, 제대군인.......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은 이런 많은 사람들이 맥시코로 건너가 애니캔 농장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노예 계약서…(생략)

손끝에서 되살아났다. 낡고 희미한 무수한 스냅사진들을 보면서 글을 적 듯 그는 한 걸음 멀찍이 뒤쳐져서 그들의 걸음걸음을 뒤따랐다. 소설 속의 인물들이 행동을 하고 말을 하고 모의를 할때 김영하는 허름한 배낭과 허름한 옷 차림을 하고 그들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글로 옮기는 것이었다.
다시금 난 소설의 매력에 빠져든다. 손끝에서 하나하나 부활해나가는 나라와 배경과 인물들 속에서 난 또다른 세상을 관찰하는 독자가 된다. 어느새 여리게 스며드는 슬픔. 물 속에 떨어물 속에 떨어진 피 한방울이 하늘하늘 퍼져가듯 슬픔이 가슴속으로 점점이 스며들었다. 이름없이 잊혀져간 그들의 삶을 보며 진정 살풀이 한 장단을 쳐주고 싶었다.
김영하라는 작가를 진정으로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달라졌다고들 말하지만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그릇됨이 느껴졌다. 신세대 문체 신세대 감각을 뛰어넘어 우리의 전통이나 이름없이 살다간 영혼들에 숨결을 불어넣는 그를 보며 희망이란 것을 느꼈다.
단지, 아직은 장편소설이란 장르에 미숙한 듯 조금은 매끄럽지 못한 흐름을 지니고 있었다. 단락단락으로 나뉘어지며 진행되는 사건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했으나 읽는 흐름을 끊게 만드는 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검은 꽃>은 읽고 난 뒤 아련한 슬픔을 던져주는 소설이다. 무언가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 소설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