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이 책을 처음 집어들고 난 눈물 자욱 짙게 만들 쉬운 소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내 기대와 달리 눈물과는 거리가 멀었고 간단히 읽고 넘어갈 수 없는 철학적인 냄새를 한없이 풍겼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버지의 부재와 빈곤 속에서 사는 어린아이의 한 시절을 그린 것이었지만 나이 지극한 김주영이라는 작가의 시선이 분명히 묻어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책을 놓았다 들기를 수 차례 겪은 후에야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려웠던 만큼 나 역시 생각의 깊음과 풍부함이 더 해 좋았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면 이야기는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외국의 원조를 받아야만 했던 궁핍과 빨갱이에 대한 경계가 있던 시기를 다룬다. 그리고 주인공이자 화자인 김형석은 매일 품앗이를 하는 어머니와 다부진 아우와 함께 산다. 다행이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주눅이 들거…(생략)

이 미치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 역시 어쩌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내가 보이는 대로만 믿고, 내가 느끼는 대로만 알았다. 그러다 가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에 혼란을 겪은 적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 지금 내 눈을 통해 보이는 세상이 진실이 아닌 거울로 보이는 세상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모든 세상의 이치엔 한 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양면이 존재하며 어떠할 때에는 그 이상이 존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바닥아래에서 거꾸로 얼굴을 들이민 선생님과 마주친 눈도 서로의 뒤집힌 눈을 바라본 것이므로 진실 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자 어느 순간에 그가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하늘로 걸어오지 않는 선생님을 보며 의문을 가졌던 것도 결론을 찾았다. 그 것에 대한 뿌듯함으로 책을 다시 읽어 내렸다.
그리고 나서 책을 읽는 동안 난 왠지 여러 가지 사건들이 순차 없이 나열된 것 같아 약간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여러 사건 중에 하나의 굵은 덩어리가 된 줄거리가 머릿속에 잡혔다. 우선 이야기에서 빨갱이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모든 사건의 실마리는 그에게 있었다. 학교에 유일한 여선생님이 그에게 딱지모양의 쪽지를 이발사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지만 그가 이발소에 도착하기 전에 장석도와 최동수의 힘 겨루기 대결을 지켜보느라 정신을 쏟아 그만 쪽지를 잃어버린다. 결국 쪽지를 찾지 못하고 다음날 학교에서는 예정 없는 주머니 검사로 딱지를 수거해간다. 그리고 이발사인 설영도는 빨갱이라며 거울 위의 수채화 뒤에 숨겨둔 서류가 발각되어 잡혀가고 곧이어 여선생님도 자취를 감춘다. 자물쇠로 잠겨진 이발소 안에 수채화가 탐났던 그는 장석도에게 부탁하여 문을 따 수채화를 갖게 된다. 시간이 좀 흘러 경찰관들은 장석도가 자물쇠를 부순 것이 설영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체포해간다. 그 일로 그의 어머니까지 봉욕을 치루고 열흘만에 돌아온 장석도는 이별의 기색을 보이다 결국 마을을 떠난다.
아무래도 이 책은 빨갱이라는 사회적, 역사적 인물을 개입시켜 무엇인가 말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겐 그러한 것보다도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심리상태가 더 마음에 남았다. 더 솔직해 지자면 원미동사람들이란 책을 읽었을 때처럼 너무나 인간적이고 어느 한 부분도 애정들이지 않은 부분이 없는 등장인물 개개인에게 모두 마음이 쏠렸다. 특히 난 삼손이라는 별명을 가진 장석도란 사람에 대해 깊은 애정이 쏟아졌다. 비록 배움이 짧아 셈조차 할 수 없지만 강단 있고 우직하고 순박한 그 청년이 참 좋다. 술도가에서 일을 하는 그는 고두밥을 말릴 때 아이들과 새들로부터 고두밥을 지켜내는 일이 주 임무였다. 그 속에서 그는 약삭빠르고 속되지 못해 늘 성실했고 정 많은 사내임을 알았다. 그리고 최동수의 거짓에 금새 속아 벌벌 떠는 모습도 바보 같다는 느낌보다는 참 순수한 사람이라는 생각이었다. 돌덩이를 들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신과의 싸움을 해대는 강인함과 소탈하게 체포된 일을 넘어가는 모습. 정분이 있으면서도 차마 돌아서던 모습도 모두 내 마음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책을 덮기가 정석도란 사람과 이별하는 것 같아 무엇보다 아쉽게 만들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꼭 포도밭 그 사나이란 책에서 장택기라는 인물에게 느꼈던 그러한 감정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처음의 모습에는 하나의 매력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의 행동 하나 하나에서 베어 나오는 인간미가 마음을 울리는 매력적인 인물인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실재한다면 책 속에서 그가 반편이라 불렸을 지라도 떠난 후에 그 공허함이 하늘만큼 컸던 것처럼 아마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또 옥화라는 장애우에게도 관심이 갔다. 늘 이용하기 위해서만 존재했던 그 아이의 죽음에 와락 눈물을 쏟아버린 아우가 눈에 선하기도 했다. 그러니 괜히 내 주변에서 나를 보다 일찍 떠난 이들이 떠올라 나도 가슴 한쪽이 아련해 지기도 했다. 그러니 지금 내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내 주변에 또 어떤 사람이 떠나거나 그 떠나는 사람이 내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 마음을 써야 겠다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 그것이 어떤 것이든 현재라는 시각에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바로 이별이란 것이었다. 가장 확실하게 되돌려 놓을 수 없는 것이 이별인 것을 경험했다는 말에 백 만 번 동감한다.
감상문을 마무리짓는 이 시점에도 참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할 말이 너무나도 많아 정리하기조차 힘든 이 기분이 새롭기도 하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되새이며 감상문을 쓰는 이 시간에 난 조금이나마 어른이 된 모양이다. 감상문을 쓰니 그제야 가슴에 깊이 자리잡는 이 책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아마 한참동안 여운이 짙게 남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