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읽고나서 고래

제목:고래
겨울방학동안 하루 5시간씩 도서관에서 일주일정도 봉사활동을 했다. 사실 도서관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우표 붙이는 일을 할 때를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을 책을 읽으면서 보내야만 했다. 장소가 도서관인만큼 친구들과 떠들 수도 없어서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나의 무료함을 달래 준 책이 바로 `고래`였다.
반납된 책을 정리하던 중 `고래`라는 제목을 보고 책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첫 장을 펼쳤다.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칠 킬로그램에 달했던 그녀의 몸무게는 열 네 살이 되기 전에 백 킬로그램을 넘어섰다]라는 대목을 보고 단숨에 책을 읽어 나갔다. 이미 그 때부터 이소설은 다른 소설과는 조금 다를 거라는 것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고래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고, 1,2부는 산골소녀 금복이 소도시의 사업가로의 성공과 그녀 주위의 인물들이 빚어 내는 천태만상을 그려 내고 3부…(생략)

훗날 금복이 남자가 되어 사랑한 수련역시 창녀출신이였다. 금복은 고래모양의 극장을 세운다. 옛날, 자신이 사랑했던 칼자국이 그러했듯이 금복도 영화를 볼 때 수련의 손을 꼭 잡아 준다. 사람들은 타인의 세계를 엿봄과 동시에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 허망감에 묘한 매력을 느껴 극장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수련은, 여자인 금복이 사랑할 만큼 그 자태가 매우 빼어나긴 하나 머리는 좋지 않았다. 수련은 뛰어난 말재주를 지닌 약장수의 속삭임에 넘어가 약장수와 사랑을 나눈다. 이에 상심한 금복은 하루하루를 술로 보낸다. 금복은 나이도 들었고 더 이상 금복에게 풍기던 냄새는 나지 않는다. 금복이 영화를 보고 있던 어느 날, 극장에는 불이 나고 금복은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손으로 지은 극장이 불에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불은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갔고, 그것은 금복의 마지막이였다.
불이 났을 때, 백 킬로그램이 훨씬 넘는 금복의 딸 춘희도 있었다. 춘희는 보았다. 노파가 비상구의 문을 하나씩 걸어 잠구는 것을. 그리고 노파는 춘희를 보며 씩 웃었다. 춘희는 대형참사의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이유인즉, 춘희는 박제된 코끼리를 불에 태운적이 있는가 하면, 이번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춘희 뿐이라는 것이다. 춘희. 그녀는 보통사람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몸뚱이를 가졌으며 생각은 하되, 말은 할 줄 몰랐으며 항상 엄마인 금복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금복은 춘희를 사랑하지 않았다.
금복이 사랑했던 괴력의 소유자 걱정이 죽은 뒤, 4년 후 춘희는 걱정을 똑같이 닮아 태어났기 때문이다.
금복은 춘희를 볼 때마다 자신 때문에 자살을 한 걱정의 얼굴이 떠올라 춘희를 사랑할 수 없었다.
어쨌든 춘희는 교도소 안에서 `바크셔`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바크셔란, 영국에 있는 한 지방의 이름이며 그 지방에 기원을 둔 돼지 품종의 이름이기도 하다. 춘희는 교도소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을 만큼 끔찍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춘희가 수감된지 만 10년째 되던 봄, 나라에서는 잃어버린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죄수들을 사면시켜주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그 중에는 춘희도 있었다. 춘희는 기찻길을 따라 사흘밤낮을 걸었다. 처음에는 춘희 자신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으나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비로소 자신이 새 아버지와 함께 벽돌을 굽던 벽돌공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춘희는 그 곳에 가면 이전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바삐 벽돌을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춘희의 생각과는 달리 무너진 가마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춘희는 뱀을 잡아먹고, 뱀 몸 속에 있던 개구리를 먹고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으며 매일 벽돌을 구웠다. 그럼 이전처럼 사람들이 와 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 춘희와 팔씨름을 하던 트럭장수의 아들을 만난다. 그 역시 지금은 아버지처럼 트럭장수의 일을 하고 있었다.
춘희는 트럭장수를 만나 사랑을 배우고 임신을 하게 된다. 춘희가 임신한 사실을 알자 트럭장수는 춘희의 곁을 떠난다. 춘희는 트럭장수가 돌아올 거라는 믿었다, 그러나 겨울이 되어 춘희가 아기를 낳을 때까지 트럭장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춘희는 혼자 아기를 낳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아기를 안고 눈밭을 헤매다 정신을 잃었다. 눈밭은 생각보다 따듯했다. 잠시 후, 정신이 들고 춘희는 재빨리 아기를 찾는다.그러나 눈밭에 파묻혀 버린 아기는 이미 죽어있었다, 아기는 너무 여리고 작았다. 춘희는 크게, 크게 울부짖었다. 아기를 보내고 춘희는 벽돌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춘희의 벽돌 만드는 기술은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되었고, 절대 줄지 않을 것 같던 그녀의 몸무게는 37킬로그램까지 줄었다. 팽팽하던 그녀의 살에는 주름살이 잡히고, 점점 기력도 잃어 갔다.
춘희는 여느 때처럼 벽돌을 만들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몸을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춘희는 눈을 감았다. 그것은 춘희의 마지막이였다.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낳기 마련이라고 고래 또한 그러하다. 한편의 복수극 이였나 하면 산골 소녀와 부둣가 장수의 사랑이야기가 있고 하찮은 게이샤를 위해 6개의 손가락을 바친 조직 보스의 이야기이고 거지에서 큰 사업가가 된 여/남 의 이야기 있나 싶으면 벽돌을 굽는 한 장인의 이야기이다.
이런 수많은 에피소드는 곧 하나의 이야기 이며 그 변화가 무궁무진하다. `고래`는 내가 기존에 읽던 소설과는 확실히 달랐다. 섞임과 확장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환상의 도가니를 만들어 낸다. `고래`의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짙고 괴상하다
박색의 노파와 그녀의 분출대상 반푼이. 이둘 사이에서 태어난 벌떼를 몰고 다니는 애꾸.
순정파 사랑을 하는 네 손가락의 칼자국과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 걱정. 쌍둥이 자매와 그녀들이 데리고 다니는 코끼리 점보. 금복의 소꿉 친구이며 뛰어난 말재주를 지닌 약장수. 걱정과 금복의 사이에서 태어난 거대한 몸뚱이의 춘희. 항상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금복까지.
이 괴상한 인물들의 우여곡절은 나를 숨가쁘게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 책의 제목이 `고래`라는 것은 [언젠가 물을 뿜는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라는 구절이 설명해주고 있다. 고래는 금복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동질감의 대상이였다. 그러하듯 금복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죽음을 피해간 적도 많았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절대 잡히지도 죽지도 않을 것 같은 고래가 사람들에게 잡혀 해체되는 모습은 금복의 인생을 암시하는 것이었을까?
`한편으로 저는 문학 좁게 이야기하면 소설 그 자체를 목표를 삼고있는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그대로 반영된 책.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일깨워 준 작가님께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