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생각

짧지만 긴 이야기 = 광수생각
조선일보에 처음 실린 광수생각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은,
“어? 이게 뭐야?”
였다. 예쁘장한 그림들과 달착지근한 스토리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조선일보에 처음 실렸던 광수생각은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만화 끝에 광수생각이라고 하는 것부터 특이했다. 그림도 별로 예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못 그렸다고 하는 게 좋을까? 굵은 펜으로 쓰윽- 그린 것 같은 그림. 연필로 꾹꾹 눌러쓴 것 같은 글씨. 어디서 본 듯한 내용. 이 모든게 특이하고 시선을 끌었었다.
하지만 그 만화에 조금씩 정이 가기 시작한 건 매일 오는 신문에 있던 유일한 만화였고, 또 신문에 실리는 만화답지 않게 올 칼라 였다. 그것도 이뿐 원색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만화 끝마다 한마디씩 써넣는 작가본인의 생각이 정곡을 찌르는 경우가 많아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었다. 언중유골이라는 말이 딱 이다.
그…(생략)

각을 통해서 우리도 입가에 조그만 미소가 머금어지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묻어 나오는 작은 에피소드들마다 실제 사연이 깔려있고, 만화라고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무엇인가가, 그게 무언지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가슴을 따듯하게 하는 얘기들이 이 책엔 숨어있었다.
광수생각은 다른책들과 달리 집중적으로 읽지 않고 쉬어가면서 읽었다. 두고두고 아끼면서 보고 싶었다. 만화와 그 사연을 한쪽 면에 보여주어서 숨겨진 사연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만화를 보면서 박광수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의 철학에도 공감이 갔다. 외모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 것 같다. 경찰, 교사를 싫어하는데 그가 가진 경험 때문 같다. 좀더 폭넓은 세상살이를 하는 게, 박광수에게도 필요하다. 신문에서 거부당한 만화를 보는 재미도 솔솔 했다.
난 광수생각을 늘 손이 가는 책꽂이 두고,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봤던 것을 또 보곤 하는데, 그의 만화에서 느끼는 따뜻함과 기분 좋은 웃음이 좋아서다. 그의 책에서는 나도 잊고 살았던 추억과 사랑과 그리움이 공존한다.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웃고 울고 런 반복했다. 그는 참 곰 같으면서 여우다. 생긴걸 보면 곰인데 내가 가슴깊이 간직하고만 싶던 무엇인가를 꼭 끄집어내 다시금 내 눈앞에 펼쳐놓아 가슴을 콕콕 찌르는걸 보면 영락없는 여우다. 개인적으로 그가 그린 사랑에 관한 만화를 좋아한다. 그의 감성은 언제나 나를 감동시킨다. 앞만 보고 가느라고 미처 되돌아보지 못했던 그리운 사람들,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그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책속에도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그의 만화는 참 다양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그의 만화한편을 보고 나면 생각할 시간이 참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왠지 모를 아픔 같은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존재와 일상들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기도 한다.
2권 3권이 계속해서 나왔지만 아무래도 전편만 못한 속편이 없다고, 1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광수생각은 자신이 겪었거나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 그 지극히 평범함과 솔직함이야말로 광수생각이 90년대의 한 현상으로까지 운위되게 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역시 1권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개인적으로 주장한다. 예를 들어 책 중 한 에피소드를 들여다보면 자식들과 부인이 유학문제로 해외로 나가고 홀로 국내에 남아서 그들에게 생활비만 보내는 가장, 우리시대의 아버지의 모습을 돈버는 기계로 묘사하고 있다. 정말 공감이 간다. 나도 우리 아버지를 오직 경제적인 도움만을 주는 존재로 무의식중에 인식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옆에 박광수씨 자신이 쓴 말, “아부지는 힘들다,” ‘맞아. 그래.‘ 하고 무릎을 치면서 새삼스럽게 아버지한테 죄송스럽다. 당신도 당신만의 고민과 감정이 있으시다 는걸 알면서 모른 척 했던 게 아닐까.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 정치 현실에 대한 풍자, 사랑에 관한 저자의 생각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거 같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 진하게 개입되어있는 작품들도 꽤 있다는 것이다. 이 만화가 주간신문에 연재되고, 또한 그 만큼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만큼 그에 따른 책임감도 따를텐데 말이다. 나의 짧은 생각인가? 하지만 그런 솔직함도 이 책을 펴게 만드는 매력 요소가운데에 하나인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광수생각에서 보여지는 것들은 작은 것들에 대한 애착이 기본 테마라고 생각된다. 작지만 중요한 것, 그리고 다시 찾아야 하는 것들에 대한 잔잔한 광수의 주절거림이 광수생각이다. 화려함을 추구하고 화려해야함을 강요당하는 요즘 화려하지 못한 분위기의 톤으로 화려하지 못한 내용으로 오히려 화려함을 지닌 것들 보다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사람들은 광수생각의 출발을 시사만화의 영역이라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광수생각은 시사만화만은 아니다. 가끔 시사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시사를 넘어가는 우리의 마음에 대한 것들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광수생각이 보여주려 하고 또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어하는 것은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일 것이다. 점점 각박해지고 점점 소중한 것들을 잃어 가는 요즘에 더 읽혀지길 원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광수생각이 더 인기 있었던 건 아무래도 신문에 실린 만화였기 때문에 아닐까한다. 보통 신문에는 시사만화정도를 싣는 것으로 알고 있았지만 광수생각은 시사뿐만 아니라 사랑과 따듯한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매일매일 얄팍한 신문지상에 실리곤 하던 광수생각이 더 멋진 만화가 아니었던가 라는 생각이다. 광수생각이 말하고자 하는 건 복잡한 논리가 아니다. 가족들과 주위의 사람들을 소중히 하자는 단순한 진리다. 그렇기에 두터운 커버에 두툼한 부피로 책장에 꽂혀있는 책 보다는 매일매일 익숙하게 우리 곁으로 배달되는 신문의 한 구석이야말로 광수생각이 있을 자리고, 가장 빛나는 자리가 아닐까.
하지만 1권부터 3권에 이르기까지 다소 비슷한 설정과 비슷한 스토리가 내용을 바꾸어 진행되는 것이 독자들에게 불만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매너리즘에 빠진 듯 하지만 나름대로 계속적인 변화가 작은 부분에서부터 엄연히 존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하고 싶다. 전체적으로는 변화하지 않는 듯 하지만 그래도 계속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횟수를 거듭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게되는 것에 맞추어 많은 지적과 격려가 있을 것이다. 광수생각은 그런 지적과 격려를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고, 또 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처럼 광수생각은 회가 거듭할수록 단점도 많이 노출시키고 있다. 작가 자신 또한 자신의 문제점과 작품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리고 이런 충고의 목소리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거 같다. 그것이 박광수라는 존재를 더 친근하고 푸근하게 느끼는 요인이 아닌 가도 생각한다. 그 넉넉한 외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