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를 읽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한번은 문학시간에 학습내용으로 서로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반 친구들이 워낙 입담이 뛰어나서 재미있는 수업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는데, 역시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 추억을 함께 한 사람이라야 의미가 있는 것이란 생각을 문득 하게 된 것이, 그 상황들에 대한 이해로 웃음을 지었을망정, 그 상황들에 대한 공감으로써 웃음이 나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내가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전학을 온 탓이리라는 생각도 없잖아있었다. 그만큼 같은 환경에서의 추억이 아니면 공감이 더욱 힘들 수밖에. 내가 나와 추억이 다른 사람에게 나의 옛 기억들을 설명하자면 서로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씁쓸함까지 느끼곤 한 적도 많다. 하지만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과 추억을 나누면 옛 생각에 폭 빠져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다.
이 소설은 내가 전혀 공감할 수…(생략)

1.4후퇴. 징용나간 오빠를 기다리다가 뒤늦어버린 피난 가는 길, 다시 들르게 된, 지대가 높아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현저동 집 문 밖에서 작가는 세상사람 하나 없는 공허함을 맛본다. 도중, 훗날 그 공허함과 작가가 가택수사를 하는 이 들에게 벌레 같은 취급을 받았었던 치욕적인 ‘벌레의 시간’들을 증언하는 글을 쓰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로 마침표를 찍는 이 책은 기대 이상의 흥미로움, 소중한 작가의 추억들, 그 시대의 이해와 함께 내 어리석었던 사고에 큰 깨달음을 가져왔다.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내용인지라 몇 장 읽어보고는 책장에 고이 꽂아 두었었다. 그 때부터 이 책을 다시 열기 까지도 ‘싱아’가 무엇인지, 대체 싱아에 대해 어떤 내용이 전개 될지 알지 못했다. 이렇게 싱아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나는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책 표지부터 작가의 말까지 꼼꼼히 읽어봤다. 책을 열기 전, 책 뒤표지에 싱아의 설명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싱아란 옛날 시골아이들이 즐겨먹었던 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작가는 책머리에 독자들에게 ‘나의 생생한 기억의 공간을 받아 줄 다음 세대가 있다는 건 작가로서 누리는 특권이 아닐 수 없다’ 고 말하고 있었다.
작가는 송도에서 이십 리가량 떨어진 박적골에서 풍성한 자연을 벗 삼아 코흘리개 유년시절을 보낸다. 교육문제로 엄마에게 이끌려 서울에서 초등학교 생활을 하게 된 작가는,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있었지만 막상 첫 발을 디딘 서울 집 현저동은 기대를 저버리는 허름한 곳이다.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해서 척박한 땅에 비실해 보이는 나무 몇 그루뿐인 산 하나를 친구 한 명 없이 혼자서 넘어가야하는 등굣길은 외로움에 가득하다. 아카시아 꽃을 따먹는 서울 아이들을 보고 그 아이들 몰래 아카시아 꽃을 먹어보고는, 아카시아의 씁쓸한 맛을 가시기 위해 새콤달콤한 싱아를 찾아 헤매지만 시골에서는 어딜 가나 널려있었던 싱아는 척박한 서울 땅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시골과는 현저히 다른 서울의 환경을 생각지 못하고 싱아를 찾아 헤매는 장면은 작가를 순박하다 할 수도 있으나, 애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 외로움을 달래려 하는 행동으로도 보여 안쓰럽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작가가 지금으로 치면 중학교과정인 고등학교에 다닐 당시, 일제치하의 모습을 그리며 당시를 묘사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한참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며 점점 더 살기가 어려워졌을 때 식량을 수탈당하고, 여자들은 정신대에 끌려갔으며, 남자들은 징용에 끌려 나가고, 학교수업은 오전 두 시간을 제외하고 일본이 시키는 일을 했다. 당시 우물을 기르던 여자들을 정신대에 끌고 가는 일도 허다했다. 어떤 부모는 자식을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게 하기위해 가마니에 숨게 했는데, 식량수탈을 하던 일본인이 그 가마니를 흉기로 찔러 수색하다가 자식의 옆구리를 찌른 일도 있었다. 때문에 어린 나이에 결혼을 서두르는 집들이 많았다. 여자는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게, 남자는 징용가기 전에 대를 이을 자식이라도 낳아놓기 위함이었다. 14살인 작가의 또래도 그 때문에 시집을 갔다. 또한 그 때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여인들이 젊은지 늙은 지 구분을 못 해, 젊은 사람이건 늙은 사람이건 닥치는 대로 겁탈하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식량, 자원, 인력 수탈 뿐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준 일본인들에게 경악을 금치 못했을 뿐더러 일제의 잔혹한 만행에 치를 떨었다.
1.4후퇴. 징용나간 오빠를 기다리다가 뒤늦어버린 피난 가는 길, 다시 들르게 된, 지대가 높아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현저동 집 문 밖에서 작가는 세상사람 하나 없는 공허함을 맛본다. 도중, 훗날 그 공허함과 작가가 가택수사를 하는 이 들에게 벌레 같은 취급을 받았었던 치욕적인 ‘벌레의 시간’들을 증언하는 글을 쓰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로 마침표를 찍는 이 책은 기대 이상의 흥미로움, 소중한 작가의 추억들, 그 시대의 이해와 함께 내 어리석었던 사고에 큰 깨달음을 가져왔다.
이해를 통한 공감으로 추억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작가의 말마따나 추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다음 세대에게 내 생생한 기억의 공간을 물려주는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