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를 읽고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를 읽고...
이 소설은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이다. 분명 책의 겉 표지에는 장편소설이라는 써 있지만 흔히 우리가 소설이라 부르는 것과 다르다. `작가가 꾸며낸 글` `허구성` 등 소설과 관련한 것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자서전도 아니다. 주인공이 대여섯 살부터 스무살이 될 때까지만을 다루고 있다. 소설인지 전기인지 수필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또한 개인과 이 땅의 역사가, 우리네 삶과 문화가 얼키고 설킨 것을 본다.
주인공 `나(박완서)`는 송도에서 조금 떨어진 박적골에서 코흘리개 시절을 보냈다. 그당시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듯 풍성한 자연과 벗하여 살면서 야생의 시기를 보낸다. 실개천에서 물장구를 치고, 풀과 꽃을 뜯고, 산열매를 먹으며 컸다.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면서 아련한 그리움과 기다림도 경험하고, 신비한 세계에 대한 …(생략)

맞아야 했고,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엄마의 쌈지에서 일전 짜리를 꺼내 사탕을 사기도 했다. 굿 구경에 빠지기도 하고, 엄마가 해 주는 옛날이야기에 넋을 잃기도 했다. 나에게 서울 생활은 새콤한 싱아를 먹지 못해 속이 울렁거리는 것과 같았다. 오빠가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살림도 피기 시작했다. 그래도 엄마는 집을 살 때까지 삯바느질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남의 돈을 유용해가면서까지 집을샀다. 일을 먼저 벌여놓고 나서 할아버지에게 알려, 땅을 팔고 급전을 끌어대는 등 뒷처리를 했다. 집이 없어 자식들이 업신여김을 당하는 걸 볼 수 없었던 맹목적인 모성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숙부는 창씨 개명을 하자는 뜻을 비친다. 그러나 오빠는 어려운 시절을 조금만 견뎌보자며 창씨 개명을 반대한다. 나는 이때 쯤부터 도서관에서 책 읽는 데 몰두했다. 복순이라는 친구와 함께였다. 내가 책읽기에 몰두하고 상급학교 입학 시험에 합격하는 동안 세상은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조선 청년들은 일본의 총알받이가 되어 전쟁터로 끌려가야 했고 처녀들은 정신대로 끌려갔다. 식량 사정도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상적인 사람살이는 계속되어 오빠는 결혼을 한다. 숨막힐 듯 아름다웠지만 몸이 허약한 여자였다. 그리고 얼마 뒤 해방이 되었다.
해방 후 한바탕의 혼란을 거치고 나는 학교에 다니며 문학에 심취하기 시작한다. 올케 언니의 병으로 우울한 집안 분위기 때문에 더욱더 독서에 빠져들었다. 결국 언니는 죽고 만다.
해방 뒤에 좌우익이 갈라져 대립할 때 나는 그들의 이념을 내 나름대로 판단하고 좌익 쪽으로 기울었다. 오빠의 영향도 컸다. 학교에서는 소설가 박노갑 선생을 담임으로 만나 나도 문학에 소질이 있을 거라는 자기 발견의 계기를 갖게 된다. 결혼한 오빠는 아이도 낳고 좌익 활동에도 거리를 둔다.
1950년 스무살이 된 나는 서울대 문리대에 입학한다. 그리고 그해 6.25가 터진고 만다. 오빠는 집에 세들어 살다 잡혀간 사람을 길에서 만나, 석방된 공산주의 죄수들을 데리고 집에 온다. 나는 학교에서 민청 조직에서 일을 해야 했다. 오빠는 의용군에 나가게 되었다. 그 전쟁통에 올케는 또 아이를 낳았다. 공산주의 세상이 또 뒤집혀졌다. 반공이 애국이 되고 복수와 밀고가 줄을 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불려다녀야 했다. 숙부 집도 심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1.4 후퇴로 피난을 가야할 때, 오빠가 돌아왔다. 상처를 입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온 것이다. 식구들은 피난도 가지 못한 채 서울에 올라와 처음 자리잡았던 현저동에 몸을 숨긴다.벌레와 같은 시간들 고통의 시간들을 되새기며 나는 언젠가 글을 써 증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삶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다일제 말 강압적인 식민통치와 해방의 혼란, 좌우익의 대립과 민족 상잔의 전쟁 속에서 성장기를 보낸 사람의 삶을 몇 줄로 요약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한 개인이 절절히 풀어놓는 삶의 발자취를 몇 줄로 요약하는 것 또한 얼마나 재미없는 일인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어설픈 요약이 원작의 맛을 그르치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다. 한 개인을 어설프게 겉만 보았을 때 그의 슬픔과 기쁨, 고통과 즐거움, 그가 살아온 삶의 깊이를 발견할 수 없는 것과도 같다. 그만큼 한 개인의 역사는 만만히 보아 넘길 수 없는 거대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실제 작가 박완서와 소설 속의 주인공 박완서는 거의 구별할 수가 없다. 작가 자신도 소설이라 이름붙였지만 자기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다. 아기 때를 제외하고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했으니 소설의 시작 부분은 1930년대 중반쯤일 것 같다. 그때부터 스무살이 막 지난 1951년 1.4 후퇴 언저리까지를 다루고 있으니 그야말로 성장기의 추억을 고스란이 담은 셈이다.
이렇게 연도를 따지다보니 소설의 주인공이며 실제 인물인 박완서는 참으로 기구한 시대를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격동의 20세기를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잔혹한 아픔 하나쯤 갖지 않은 사람이 없으리라는 글 한 구절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제의 황국 신민 정책의 강화로 신사 참배와 창씨 개명을 강화하는 등 민족 정신을 죽이던 때, 중국을 침략하고 우리나라를 군사기지화하던 때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다. 한창 민감하던 사춘기 때 해방을 맞았지만 좌우익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란을 느껴야 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 서고, 세상을 판단하는 눈이 생길 때, 전쟁으로 인한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이같은 어두운 시대의 그늘은 그대로 한 개인의 삶에 영향을 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알게 된 일본말 이 천황의 칙어를 넣어 두는 `호안덴`이라는 것이며, 창씨 개명으로 식구들 의견이 분분했던 것, 해방 직전의 급박한 식량 사정이며 흉흉한 분위기, 해방 후의 혼란과 참혹한 전쟁 체험 등이 다 그렇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어두운 시대의 그늘을 조금 비껴간 개인의 체험 세계도 역시 존재한다는 걸 느낀다. 사회와 개인은 교집합처럼, 얽혀 있으면서도 서로 독립된 부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달라져도 변치 않는 인간사가 있다. 인간 속에서 느끼는 고독, 미묘한 인간의 심리, 자의식, 한 단계 커가며 헤어지고 만나는 인간들....
또한 이 작품에서 우리는 작가가 거리를 두고 자신의 지난 날을 돌이켜 보고 있음을 느낀다. 때로는 다른 이를 바라보듯 자신의 심리를 파악하고, 자기 피붙이에 대해서도 냉정한 판단을 서슴지 않는다. 친구가 방귀를 뀌면 코를 쥐고 창문을 열며 온갖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정작 자기가 방귀를 뀌면 의연하게 앉아 그 냄새를 맡는다. 남이 조금 안 좋은 일을 하면 게거품을 흘리며 비난해도, 정작 자신이 그런 일을 하게 되면 변명과 합리화를 일삼는다. 그러나 이 글에서 작가는 자신의 지난 날을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삶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총독부 관리가 되는 것을 최고의 성공 쯤으로 여기는 어머니나 집안 식구들에 대해 자신의 집안에 대해 가혹한 평가를 내린다. 내 나라야 어느 지경에 가 있든지 간에 땅 파먹는 것보다는 붓대 놀려 먹고 사는 걸 더 낫게 치고, 더 낫게 치고, 이왕 붓대를 놀리려면 관청에서 놀리는 걸 더 높이 여기는 걸 보면, 양반 의식 중에서 선비 정신은 빼 버리고 아전 근성같이 고약한 것만 남아난 게 우리 집안의 소위 근지가 아니었나 싶다.
해방기의 혼란 속에서 좌익에 기울었던 자신의 행동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 혼란을 좌익과 우익, 진보와 반동의 대립이라는 이념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 들었고, 내가 박수 치고 역성들어 줘야 할 편은 좌익이라는 생각에 망설임이 없었다. 어머니의 맹목적인 자식 사랑이나 자기 중심적인 모순된 행동을 묘사할 때면 싸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기에 그 냉정 어린 시선을 넘어 피붙이의 본능이 아닌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어머니를 이해해 갈 때 그 애정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이 작품을 읽으며 우리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이 세상에 태어나 성숙해 가는 것의 비애, 엄숙함을 느낀다. 삶은 저녁 노을 처럼 처연한 아름다움이라는 것, 환희와 비애가 뒤범벅된 것이라는 것, 개인의 삶이 사회와 뒤엉켜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 소설의 가치는 성장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는 것, 당시 사회상과 개인의 삶을 잘 연결지어 보여준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 할머니 시대에는 이런 놀이를 하고 놀았구나, 이런 식으로 집을 꾸몄구나, 이런 이야기들이 유행했구나 하며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풍속 교과서다.
고향 박적골의 집 구조를 이야기하며 개성 지방 주거 양식의 특성을 알게 한다.
풀로 각시를 만들던 놀이는 민요 속에서 듣던 바다. 어쩌면 그리도 섬세하게 어린 날들의 놀이를 기억하고 있는 지 놀라울 정도다. 그뿐 아니다. 뒷간(화장실) 풍경이며 화장실에 얽힌 민간 신앙 등을 소개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서울 변두리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현저동 풍경이나 그 때 잘 먹던 눈깔 사탕, 물이 귀해 물장수에게 물을 사먹던 풍경 등 50여년 전 서울 풍경도 재미있다.

그는 1970년에 [나목]이라는 장편소설이 <여성동아> 소설 공모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마흔이라는 뒤늦은 나이에 작가 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이후 그는 전쟁의 처절함을 다룬 소설, 여성 문제를 다룬 소설 등을 써냈다. 어느 소설이나 삶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번득이고 있으며 작가의 뛰어난 글솜씨가 읽는 맛을 더해준다. [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흉년] [오만과 몽상]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미망] 등의 장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배반의 여름] [엄마의 말뚝] [꽃을 찾아서] 등의 단편을 썼다. [엄마의 말뚝]은 작가의 전쟁 체험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이라 일컬어 지기도 한다.
박완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이어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를 펴냈다. 3년에 걸친 전쟁 기간 동안 보고, 듣고, 체험한 일들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떤 나날을 보냈는가. 내가 살던 시대는 어떤 시대였나? 그 시대의 모습은 어떻게 내 개인의 삶에 반영되었는가를 묻는다. 언젠가 우리도 증언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내 삶의 나날을 기록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