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많던 싱아는 누가다 먹었을까 싱아~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나는 물 좋고 공기 좋은 박적골에 살았습니다. 박적골에는 두 양반과 열여섯 정도 되는 양반 아닌 집이 있었지만 양반과 양반 아닌 사람들과의 구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는 늘 우리가 양반이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인 나는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나또한 할아버지를 잘 따랐고 할아버지께서는 송도에 갔다 오시면 늘 나에게 줄 것을 사오시곤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서당을 내셔서 글을 가르치셨습니다. 나도 할아버지 밑에서 글을 배웠고 가끔 내가 가르쳐 본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뒷간에 가셨다가 중풍을 맞으셨습니다. 간신히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에 의해 발견이 되어서 더 큰 화를 모면 할 수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해 엄마가 오빠의 뒷바라지로 서울로 떠나셨습니다. 맏며느리가 서울로 떠난다는…(생략)

우리 가족은 아버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대를 물려받은 오빠의 굳은 의지로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1.4후퇴 6.25전쟁을 겪었습니다. 그렇게 박적골에서 코 흘리게 시절을 보내고 문밖 현저동에서 문안 개성까지 나의 유년시절을 이러했습니다.
거의 단편소설만 읽던 나에게 이런 장편소설을 읽었다는 것은 사뭇 뿌듯한 기분이 든다. 작은 신명조의 글씨는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서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나지만 이런 책들을 읽고나면 아.. 책이 이래서 나에게 중요한 것이구나.. 하고 크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난후 소설하면 배운데로 허구성이 강할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한 사람의 일대기를 사실로서 나타낸 글이라서 그런지 친근감이 느껴지고 더 실감나고 재미있었다. 나의 추억의 고향 박적골에는 싱아가 많았는데 삭막한 도시에는 싱아는 없고, 아카시아가 피어있다... 그래서 박적골에 많았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라는 책제목이 나온 것 같다. 때 묻지 않던 깨끗한 자연에서 피던 싱아는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