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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생애를 그린 이야기 - 금시조
어린 시절 고죽은 정말 외롭게 혼자 자랐다.
아버지는 어릴 때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탈상(사람이 죽은 뒤, 그 친족이 그 죽음을 슬퍼하며 몸가짐과 행동을 조심하는 시기)도 못 참아서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총각과 야반도주를 하고 만다. 졸지에 고아가 된 고죽은 숙부와 같이 살게 되었는데 이 숙부가 상해(상하이)의 임시정부에서 독립 운동을 할 생각으로 중국에 가게 되었다. (상하이의 임시정부는 1919년에 세워졌으니까 이 시기의 시대배경은 1920년에서 1930년대로 보면 된다.) 당연히 숙부는 그 먼 중국까지 아이를 데려갈 상황이 되지 못했으므로 (게다가 고죽의 숙부는 독립운동에 참여를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경 즉 일본경찰에게 쫒기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활동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본의 경찰력이 미약한 중국으로 망명을 한 것이다.) 그때 숙부는 사면초가의…(생략)
솟아오르는 환영을 본 고죽은 그제야 편안히 눈을 감는다.
예술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정한 재료와 양식, 기교 등에 의하여 미를 창조하고 표현하는 활동. 또는 그 산물.’ 이라고 한다.
즉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 다시 말해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사람은 작가의 생애나 인생을 바탕으로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시대나 사회적 배경을 통해 작품을 관찰하기도 한다. 또 그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그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읽을 수가 있다. 만약 그림이라면 색채와 구도가 얼마나 잘 배합되었는지, 시라면 단어나 문장이 아름답고 운율이 잘 맞아떨어졌는지가 판단의 요소가 될 것이다.
<금시조>에서 주된 갈등으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판단의 기준이라고 보면 된다. 예술작품뿐 아니라 세상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데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 사회가 옳다고 인정하는 가치 또한 있게 마련이다.
그 시대나 사회가 정한 기준에서 벗아나면 틀렸다고 평가받기도 하고 말이다.
이 책을 보고나서 나는 석담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고죽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알쏭달쏭했다.
내가 읽은 작품은 스승과 제자이자 두 예술가의 갈등과 고민을 그린 소설이다.
이 두 서예가의 갈등을 통해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석담은 예술과 정신은 한 몸이며 예술이 인생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고죽의 생각은 달랐다. 고죽은 스승 석담의 예술관에 반감을 품은 것이다.
주인공 고죽(옛날 문인이나 화가, 학자들은 본래의 자기 이름 대신 따로 부르는 이름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아호 또는 별호라고 한다.
주인공을 호칭하는 ‘고죽’은 본명이 아니라 아호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은 유명한 예술가이자 서예가이다. 심지어 대통령도 사람을 보내어 고죽의 작품을 얻어 가려고 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예술가였다.
나이가 든 고죽은 곧 자기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뜬 고죽은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조금씩 빠져 들어가는데,,,,, 금시조는 제 15회 동인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1981년에 처음 발표되었다.
서예가로서 마지막 작업을 준비하는 고죽의 현재와 그의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알 수 있는 회상장면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회상 장면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바로 스승 석담선생과 고죽의 갈등이다.
두 사람의 갈등은 단순한 스승과 제자, 즉 사제관계가 아닌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두 예술가의 갈등이기도 하다. 작품의 중요한 시대적 배경은 일제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물화가 우리나라(당시 조선)에 전파되기 시작한 구한말이다. 이때는 근대적인 가치관과 전통적인 가치관이 부딪쳐 거대한 혼란을 겪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석담이 주장하는 예술은 전통적이면서도 동양적인 가치관인데 고죽은 그 가치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작품의 금시조는 인도의 신화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라고 한다.
불꽃을 뿜으며 용을 잡아먹는다는 금시조는 머리에는 여의주가 박혀 있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입으로는 불을 뿜는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금시조가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여덟 명의 수호신령 중의 하나라고 말하지만 이 작품 속의 금시조는 예술의 최종 경지에 이르렀을 때 만나는 환상의 새를 뜻한다. 많은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금시조를 찾아 고민한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꿈을 품듯이 말이다. 이렇게 예술가가 등장하여 그들의 사상이나 정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을 예술가 소설이라고 하는데 금시조는 이문열의 예술가 소설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고죽과 석담선생의 대화를 잘 살펴보면 두 사람의 의견차이가 잘 드러난다. 석담선생은 고죽의 서화에 ‘도’가 없다며 꾸짖는 대목이 나온다.
석담선생은 서화를 높은 경지의 학문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화는 심화라고 주장하며 내면에 충실하려고 했던 것도, 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시들고 메마른 대나무와 매화를 그린 것도, 예술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통해 더 높은 것을 얻으려는 전통적인 예술관을 바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죽의 생각은 스승 석담과는 달랐다.
고죽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서화 그 자체의 완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죽의 예술관은 전통을 벗어난 근대적인 예술관이라고 할 수 있다
고죽은 석담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적인 세계를 만들어 가고자 노력한다. 옛날 서양 미술사의 대가들도 대부분은 개인의 느낌이나 감상을 드러내는 것을 억제하고 정해진 법도에 맞춰서 그림을 그렸다.
그들은 귀족의 초상화를 그려 주거나, 궁전이나 성당의 벽을 장식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예술가들은 점점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꿈과 환상의 세계를 그리기도 했다.
피카소의 경우처럼 사람의 얼굴을 조각조각 해체하기도 했다.
주제나 생각이 섞여있지 않은 작품으로 아름다움 자체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진 것이다. 고죽이 생각하는 예술은 그것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소설의 중반에서 석담 선생이 죽음을 앞두고 관상명정을 “고죽이 쓰게 하라“는 유언을 남긴다.(그때 고죽은 석담의 그늘을 벗어나 그림을 팔아서 술을 사 마시고,
부인과 자녀를 돌보지 않은 채 떠돌아다녔다. 사람들의 관심을 끈 예술가 중에는 고죽처럼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는 등등 사회적 비난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가끔은 있다. 고죽은 그렇게 떠돌아다니다가 지쳐서 스승에게 돌아오는데, 석담의 지기인 운곡선생이 고죽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고죽은 평생 자신의 스승은 석담을 미워하면서 떠돌며 살았을 것이다.)
석담선생이 죽음을 앞두고 고죽을 제대로 인정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그간의 오해와 반목을 풀고 진정한 화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고죽에게는 더 큰 과제이자 숙명이 남았으니.... 그것은 바로 선생이 말한 자신만의 ‘금시조’를 찾는 일이었다. 고죽은 석담선생을 통해 금시조를 알게 되었지만 고죽의 금시조는 석담의 금시조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석담은 글을 쓸 때 힘차게 날아오르는 금시조와 같은 의지와 투철함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석담선생의 금시조는 동양적 이념의 상징인 것이다. 그에 비해 고죽은 자유로운 삶에서 자기가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기교 있게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고죽의 금시조는 예술적 완성을 상징하는 관념의 새였다는 것이다. 평생을 바쳐 완성한 작품이 불에 활활 타들어가는 순간, 아무도 몰랐겠지만 고죽은 그제야 금시조를 보게 된다.(비록 그게 환영이었더라도 말이다.)
예술 그 자체의 예술을 만난 셈이다. 고죽의 서화는 철저한 진실도, 고죽의 삶 자체도, 고액의 화폐도 아닌 바로 고죽이 꿈꿔온 진정한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마지막 순간에 고죽에게 금시조를 만나는 영광을 줌으로써 예술 그 자체를 사랑한 예술가의 편에서 손을 들어 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금시조를 읽으면서 고죽과 석담의 갈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마지막 순간에 고죽이 발견한 금시조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계속 궁금해졌다. 즉 석담선생이 시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의 영혼을 작품 안에 고스란히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고죽은 예술을 예술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죽은 자기가 평생 써 온 붓글씨가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들을 모두 불에 태워 버리는 순간 금시조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본다. 죽기 직전 고죽은 자신의 모든 작품을 태워 버림으로서 자신만의 금시조를 만난다. 고죽의 작품은 작가의 파란만장한 인생이나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닌, 예술 그 자체로의 예술로 남은 것이다. 나도 취미나 적성을 살려 한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한다면 나만의 금시조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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