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읽고나서 나는 고백한다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며칠 전, 나는 심하게 아팠다. 밤새 열이 나고 몸이 으스스 춥더니만 기어코 다음날 앓아누워 버리고 말았다. 감기약을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한결 몸이 가벼웠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그도 그럴것이 하루 사이에 설사를 다섯 번이나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횟수는 날이 갈수록 더해져 사흘째 되던 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은근히 소심한 편인 나는 혹시 장티푸스나 뭐 그런 무시무시한 병이 아닐까 걱정이 되어 병원에 찾아갔다. 공교롭게도 이때가 현대의학의 불확실성에 관한 책 아툴 가완디의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를 읽고 있던 때였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현대의학이 불완전하고 의사도 인간인 이상 모든 의학적 지식을 알지는 못한다는 것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못마땅…(생략)

백한다, 현대의학을>역시 현대의학의 우수성과 의사의 노고를 치하하는 한 의사의 자축성 글에 불과한가?

아니다. 저자는 책의 서문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맺고 있다. `의학은 보기보다 덜 완벽하며, 동시에 보기보다 더 특별하다.` 그는 의사이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는 편향적 시선을 애써 극복하고, 의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얘기들을 담담하게 풀어간다. 의사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선천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닌, 계속해서 노력할 수 있는 재질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주고(`칼 쓰기 연습과 도둑 학습`), 의사들의 과실이 전혀 드문 일이 아님을 고백하면서도, 그 책임을 전적으로 의사들의 불성실함에 돌리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므로 의사의 책임이 아니라는 식으로 손쉽게 도피하지 않는다.(`의사들이 과실을 범할 때`) 자칫 의사에 대한 도덕적 불신으로 인상지어질 수도 있는 몇몇 의사들의 만성적 무기력증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서 의사들에게 공통된 인간에 대한 강도 높은 책임감을 말함으로써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있다. (`좋은 의사가 나쁜 의사가 될 때`)

나의 엄살을 비웃듯, 그러나 다행히도 내 병명은 장염이었다. 이제 밥도 먹고 체력이 회복되어 혼미하던 정신도 점점 제자리를 찾아간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의사들에 대한 불신을 모두 버렸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고도 물론 말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현대의학이라는 게 완성된 것이 아니고, 그 지식에 기반하여 의료 행위를 실시하는 의사들 역시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항상 내게 최선의 진료와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라는 점을 더욱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알게 된 것이 있다면, 현대의학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의사들 역시 그 새로운 지식을 중단없이 받아들여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의학은 우리의 환상만큼 완벽하진 못해도, 맹목적 불신보다는 훨씬 특별하고 그래서 희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