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나는빠리의택시운전사
나도, 모순을 살고 있었다.
불현듯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대한민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2002 월드컵 때 그렇게되 외쳤던 `대~한민국`과는 다른,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게 될 `이 곳`에 대해 난 한 번이라도 진지한 성찰을 해보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국사시험을 잘 본다고 언어영역 점수가 잘 나온다고 내가 대한민국을 `Corea`를 사랑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나도 이미 `모순`이며 `모순`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난 `대~한민국`을 열렬히 외쳐댔지만 사람들이 소위 격동의 역사라고 말하는 현대사도 잘 모른다. 난 아직도 70년대 하면 유신반대 투쟁보다도 촌스러워 보이기만 하는 장발머리와 새마을 운동, 경제개발계획, 고도성장 같은 시험에나 나올법한 단어들을 떠올린다. 김지하 시인…(생략)

상당주의 많은 학생들이 우리의 현대사를 너무 모르고 있다. 정말 어렸을 때부터 배워 온 `민주주의`라는 것을 위해 한때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질 못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조금이나마 그런 걸 `가슴`으로 느끼게 해 준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리고 난 책장을 덮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게 어떤 눈물이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홍세화씨가 말한 대로 `가슴의 요구`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바보였다.
나는 1986년 생이다. 내가 `사회`라는 것에 관심을 조금이나 가지기 시작하였을 때쯤에는 길거리에선 데모라는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었고 사람들은 소위 `운동권`이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을 색안경을 끼고 쳐다보았다. 내가 본 어린이 권장도서는 대부분 반공소설이 많았고 어렸을 때 낯선 아저씨들을 모두 간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최근에 알게 되었다. 내가 두살 때 한 청년이 고문사를 당했다는 사실을. 그 때 난 잠시 멍했다. 난 민주화운동 같은 일들이 언제나 내가 태어나기 전의 과거로만 여기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살아왔던 그 동안만은 우리 나라가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구현하는 민주주의 국가였음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로 가려면 멀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한다. 나는 정말 바보였다. 일상의 타성에 젖어서 과거를 모르는 바보였다. 정말로 이 책에 나온 말처럼 과거를 모르고 사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일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전태일 평전을 읽고 너무 감동을 받은 나머지 나도 `노동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과거에 `민주화 운동`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멋있게 보였다. 나도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다. 나도 이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내 생각을 이 책, <나는 빠리의...>에서 반성하게 되었다. 홍세화씨가 대학교 때 택시 운전을 하고 싶다는 뜻을 그의 친구에게 비쳤을 때 그의 친구가 한 말을 읽고 말이다. 그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노동현장에 들어갈 때, 일생을 두고 그 현장에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에 있다고 봐. 우리는 현장에 들어가서라도 되돌아 올 수 있는 길이 항상 열려있지만 일반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지. 그들에겐 노동 현장이 바로 `생존`이지만 우리들에겐 `의식`일 뿐이거든."
난 깨달았다. 이제까지 내가 껍데기만을 동경해왔다는 것을. 난 그 당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의식적으로만 동경해 왔지 그들의 치열한 `생존`수단으로서의 노동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사회를 변혁하겠다는 요구도 자기과시욕구였던 것 같다. 진정으로 가슴으로 느끼며 투쟁하던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른... 그래서 Sylvie라는 프랑스 처녀가 한 말에 공감이 갔다. "한국에는 Militant(활동가)은 적은데 dirigeant(지도자)는 많은 것 아닌가요?" 이론투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우러나온 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직도 멀었다.

난, 개똥을 먹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나도 `자유도 민주도 인간의 기본권도 없던` 그 암흑의 시대에 학생이었다면 나도 그들처럼 `저항`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 당시에 저항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받는 이분법의 논리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난 신문에서 나오는 다른 나라들의 독재 지도자에 대한 유혈 시위를 아무 생각 없이 읽게 된다. 우리도 그런 과거가 있었다는 걸 잊고 말이다.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망명신청을 할 때가 떠오른다.
그가 아무리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려고해도 `우리`가 아닌 이상 그들은 실감을 못한다. 마치 내가 다른 세계의 민주화 투쟁을 보고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에 대해 내가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40년의 감옥을 사는 세계 최장기수가 있는 나라, 야당 지도자를 남의 나라에서 납치하여 수장하려 하던 나라와 어떻게 다른가. 삼청교육대가 있는 법을 능가하는 긴급조치와 지명되는 국회의원이 있는, 그리고 일상적으로 고문이 행해지는 나라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라고 말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불과 20년 전 자화상이었다는 사실이 충격일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재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어른들은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들 말씀하신다. 아직도 장기수들이 많고 그 장기수들이 출소하더라도 너무 오랫동안 감옥에 있었던 나머지 바깥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었다. 신문지상에서 떠들어대는 의문사에 대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고 국내의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임금으로 혹사당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 나라가 인권 상황이 열악한 세계 30개국으로 선정되었었다는 글을 보면서 난 씁쓸했다. 그리고 역사 발전의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독립전쟁에 승리하고 권력을 잡은 뒤엔 일당독재를 계속하게 돼서 민주화에 역행하게 된 알제리, 인류 역사를 위하여 필요한 사람은 일찍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Sylvie의 말, 폴란드의 초대 대통령 바웬사가 프롤레타리아 출신이었지만 그가 집권하고 나서 지지율이 하락하게 된 이유. 이 모든 것을을 난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사람이 권력을 잡게 되면, 그 체제가 안정되면 생각이 바뀌는 것일까? 역사는 시민의 `자유`와 `참여`가 확대되는, 소수에게 집중되었던 권력과 부가 다수에게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하는데 말이다. 어떤 사람이 그랬다. 우리 나라에 아직도 진정한 민주주의가 자리잡히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직접 `쟁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프랑스 같은 나라는 시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공화정을 세우고 제도와 법을 만들었지만 우리는 광복 후에 얼떨결에 그 제도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것으로는 난 아직도 납득이 안 된다.
지금 어떤 대학생들은 일부러 학생 운동에 가담하기도 한다고 한다. 정치를 하려면 과거에 운동경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는 그런 것도 내세우기 위한 일종의 이력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면 공허하다고. 근본적인 대책을 무시한 채 무조건 데모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닌 데 현실과의 괴리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말만 거창하게 하는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한다. 신경숙 씨의 `외딴 방`이라는 소설에 보면 이런말이 나온다.
그 당시 주인공에게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왜 죽고 누가 다시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라 당장 끓일 물을 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생존`의 요구를 무시한 채 달려온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진정으로 개똥을 먹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변혁의 의지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굳이 투쟁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애써 남에게 내세우려는 게 아닌 자발적 참여가 이제는 우리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 같다.

똘레랑스에 대한 몇 가지 생각
홍세화씨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똘레랑스(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자유에 대한 존중)라는 이 말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뿐만 아니라 이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당시 이 말이 일종의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켜서 심지어 똘레랑스라는 이름의 커피숍도 생겼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이제까지 우리 나라를 미국하고 일본하고만 비교해온 것을 배운 건 사실이다. 선생님들도 아무렇지 않게 미국은 그렇지 않는데 우리는 이렇다, 늘 그런 식으로 비교를 해왔다. 그러나 홍세화씨가 쓴 프랑스의 `똘레랑스`는 우리가 많이 배워야할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일상 생활에서 보여주는 그러한 행동들은 솔직히 놀라웠고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이 되기 힘든 일이었다.
고등학생들이 학급 당 인원이 많아지자 등교를 거부하고 거리에서 데모를 하는데 택시 기사들까지 가담하여 지지 해주고 그로 인해 생긴 교통체증을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동료 택시 운전사를 배려해 일보러 4인 이상의 환승은 승차거부를 한다. 프랑스에서는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싸우고 이 사상과 저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하여 한국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미워한다는 말도 공감이 갔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이 자유에 대한 존중이고 개인의 권력에 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난 아직도 `권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검찰청, 경찰서 같은 것들이 연상된다.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의 개인은 `권력`에 대하여 똘레랑스를 갖고 있음에 반하여 한국의 개인은 똘레랑스없이 `권력`에 의해 희생되고 강제되었을 뿐이라고. 그래서 내 머릿속의 권력의 이미지는 그렇게 박혔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권력은 그 현대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역사나 사회에 대해서 젼혀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의 현대사는 배우면 배울수록 화가 난다는 말을 이제는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전통을 가진 프랑스가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도 똘레랑스가 서서히 자리잡아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버스 파업이 있어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불평하기보다는 `그래도 그 사람들 생각도 해줘야지`라고 말하고 자기의 진정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것은 그런 우리의 변화에 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난 아직도 모순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방황하기보다는 진정한 문제의 식을 가지고 살고 싶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에 단편적인 지식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제대로` 살고 싶다. 일상의 타성에 젖어 무의미하게 앞만 보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며 말이다. 현대사가 아무리 화가 나도 알 건 알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내가 모르는 모순들이 끊임없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 모순들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려고 한다. 그게 이 책이 나에게 일깨워 준 `가슴의 요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