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를 읽고 국어

「 빠리 택시운전사로부터의 배움 」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사실 나는 이 책의 저자인 홍세화 씨의 ‘쎄느 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먼저 읽었다. 우리 나라와 프랑스 사이를 넘나들며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친 비평을 담은 에세이였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쎄느 강…’을 읽는 동안 세상을 다르게 보며 배우게 된 것이 하도 많아서, 조금 더 배워보려는 욕심에 이 책을 찾았다.
홍세화 씨도 말했듯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분명 ‘나는 서울의 택시운전사’, ‘나는 도쿄의 택시운전사’와는 분명 다른 어감을 풍긴다. 사실 나는 그 제목에서,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프랑스’ 혹은 ‘빠리’라고 하면 느낄 ‘낭만’을 느꼈다. 이 책의 서두는 그런 낭만의 도시 빠리를 소개하는 부분이다. 굉장히 친절한 어투로 빠리의 건물과 거리를 하…(생략)

경 단체들이 일인 시위를 시작하고 아주 가끔 명동성당에 진을 친 데모대를 보는 것이, 운동권이라는 낯선 단어에 대한 단상의 전부이다. 사실 내가 나열한 저 예들 중에는 운동권과는 별 관련이 없는 사례가 들어가 있는 것도 같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민주화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누구에게서도 그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고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마치 딴 세상 이야기 같은 책 속의 내용은 그런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나타내 주었다. 내용 중 망명 허가증을 받기 위해 프랑스 관리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들이 알 수 없는’ 분단의 비극과 군사정권 아래의 모순적 실상을 울분에 섞어 토해내는 부분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나조차 진심으로 울컥했고 이유도 모르게 부끄러웠다. 투쟁하는 사람들, 그들에 대해 생각해 본 것은 아마 처음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이 ‘투쟁 전사’ 들에 대한 내용뿐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마치 ‘우리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그 동안의 네 무관심은 이것으로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 같이, 내가 그들에 대해 충분한 관심을 가지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충분한 죄책감을 가지게 하고 울분을 느끼게 한 후에 차분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만약 민주화 운동 이야기 뿐이었더라면 이 책은 그냥 관심과 죄책감과 울분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빠리에서의 망명 생활. 가족의 생계 유지를 위해서, ‘만인이 우러러 보는’ 서울대를 졸업한 저자는 낯선 도시에서 택시 운전을 시작한다. 이 이야기에서부터 또 다른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고달픈 택시 운전사의 생활과 빠리에 이방인으로서 남은 애환, 그리고 그 애환만큼이나 커다란 고국에 대한 애정이다. 그러한 고국애는 가차없는 비평과 조언으로 쓰여 있다.

비평과 조언의 일부로 저자는 프랑스의 본받을 만한 점들을 여럿 소개하였다. 그 중에서도 단연 ‘똘레랑스(tol?rance)’는 돋보인다. 똘레랑스는 우리말 단어로서는 완벽히 번역해 낼 수 없는 개념이다. 저자는 그것을 「a.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 b.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자유」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한국사회에서도 남과 다른 사고가 그 자체로 용인되고 소수의 견해가 힘있는 다수에 의해 억압당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책을 덮은 후에도 ‘똘레랑스’라는 단어는 잘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나라의 잔디밭에 써있는 `잔디밭 출입금지`와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라는 프랑스의 잔디밭에 써 있는 팻말의 차이는 무엇인가? 똘레랑스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의 행동이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우선 남의 행동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똘레랑스는 극단주의와 흑백논리를 거부하고, 비타협보다 양보를, 처벌이나 축출보다 설득과 포용을, 홀로서기보다 연대를 지지하며, 힘의 투쟁보다 대화의 장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권력의 강제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한다. 똘레랑스의 실천은 비단 프랑스 인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분명히 복잡하다. 적어도 내게는 아직 어려운 각종 정치 사회적 문제, 그리고 저자의 프랑스 생활 이야기, 빠리에서의 한국인들, 똘레랑스, ……. 그러나 나는 ‘누구든 아프게 살아온 사람의 증언에 우리는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아프게 살아온 사람은 사회의 아픈 단면을 잘 안다. 저자는 우리가 그의 눈을 통하여, 프랑스라는 거울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한국인이오.’하면 ‘북쪽? 아니면 남쪽?’이란 질문에 그저 ‘꼬레 뚜 꾸르(그냥 한국이오.)’라고 대답하던 저자가 한국에 돌아왔다. 아마도 이 책이 크게 성공했던 덕이 작용했던 것 같다. 어쨌든 정부에서 내준 귀국 허가서를 받고 ‘갈 수 없는 나라’였던 꼬레에 발을 내디뎠던 저자의 기분은 어땠을까? 비록 ‘빨갱이’라는 말은 사어(死語)나 다름없게 되었지만.
신문 등지에 홍세화 씨의 기고가 나오면 꼭 챙겨보곤 한다. 항상 날카로운 논조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으며 느낀 것들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홍세화 씨는 실천하는 운동가이다. 복잡하게 느껴졌던 이 책을 세 번 읽으면서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내게 준 가르침은 하나로 압축되었다.
‘네 자신과 네 주위에 관심을 가져라. 그리고 네가 느낀대로 실천해라.’
그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운동과, 관용의 자세인 똘레랑스도 모두 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