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나는 빠라의 택시운전사를 읽고)
책을 읽기 전에는 흔히, 저자에 대한 지식을 숙지해 두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기에 가장 손쉬운 방법은 책의 앞 속표지에 있을 저자 약력을 보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책을 읽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아예 주눅이 들어 버렸다. 경기 중, 고를 졸업해서 서울 대학교에 두 번씩이나 입학했다는 그의 학력에 책을 보기도 전 한방 먹어 버린 것이었다. 학력 따위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그다지 옳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일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이성으로 어찌할 수 없었던 듯 하다.
그래, 인정하자. 홍세화, 그는 지식인이다. 60, 70년대 역사적 격변기를 살았고, 어쩌면 피해를 봤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프랑스에 망명해 있는 상태이고, 택시운전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고.
별 생각 없이 읽어 내려가면, 이 휴먼 스토리 - 에 누…(생략)

족을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관광객이나 일반인의 잘못에 대한 비하와 냉소적인 평가로, 프랑스의 택시운전사들은 천국에서 살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택시운전사들은 지옥에서 살고 있다는 그 단순한 비유로 그 두 단어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프랑스에 망명을 신청하는 대목에서는 냉소의 수준을 벗어나 우습기까지 했다. 국내에서 자신이 속했던 `남민전` 이란 반정부 단체가 문제시되어 망명을 신청하는 그 장면 말이다. 같이 혁명운동을 하던 친구들은 독재의 압제 하에 숨을 거두었는데 - 자신은 도망간 주제에 뭐 잘났다고 이런 글까지 써 조국에 내 놓는지. 그래, 당시의 시국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은 나도 인정할 수 있다. 고등학생씩이나 되어서 그 정도도 이해 못하겠는가. 무력으로 국민을 억누르던 독재와 민주화 투사들에게 가해졌던 안기부의 고문 같은 것들이겠지. 그러나, 그렇다면 말이다, 정말 자신이 온 몸으로 불의에 맞서 싸우는 투사였다면 어떻게든 국내로 들어와 그런 상황들과 싸워갔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달콤한 자기 합리화로 양심의 무덤에 묻기엔 이 고등학생의 눈에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똘레랑스라고. 프랑스 인들의 국민성이란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사고로 타인을 수용할 줄 아는 - 체면과 양식에 얽매여 마땅히 주장해야 할 자신의 권리마저도 주장하지 못하는 동양인이 보기에는 멋지고 환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말이란다. 똘레랑스가 얼마나 멋있고 매력 있는 단어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나친 게 아닌가싶다. 그토록 그가 사랑하는 조국의 아름다운 미덕은 잊었단 말인가. 또 프랑스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상호 원수들 간에 `약탈`해간 문화유산의 반환 및 양도양수에 대한 약속이 있었다. 그 약속을 저버리고 아직까지 돌려주기를 거부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던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자칭 지식인이자 민주화투사인 그라면 더욱 더 칭찬해 줄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적어도 책의 서두에서 말미까지 `찬양`할 만한 것은 아니다.
믿었던 조국에게서 배신당한, 자신이 걸어가야 마땅했을 조국의 역사에게서 추방당한 `지식인`의 아픔이라는 것이 이렇게 형상화되어 돌아왔다. 그런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주축이 되었을지 모르는 `지식인`을 냉대한 대가다. 뭐가 어쩌네 하며 여러 소리 늘어놓았지만 결국 원인제공은 우리가 한 셈이다. 우리 역사의 치졸했던 한 조각이 이런 글을 쓴 `지식인`을 있게 하였으며 그의 글을 보고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 어떤 학생을 만들어 냈다. 역사라는 이름의 흐름은 작게는 작은 개인의 야심에서, 크게는 국가적 차원의 모략으로부터 발전해 왔다. 그것이 잘못 된 길로 흐를 때 작게는 작은 개인의 아픔으로 그쳤지만 크게는 국가적 차원의 손실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을 저지하고 치유하기 위한 움직임 또한 작은 개인의 의지에서 출발해 왔다. 사람은 누구나 의지를 가지며, 그 의지대로 행동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막상 남들보다 앞서서 행동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주인공을 꿈꾸지만, 한발 물러선 입장에서 주인공들을 지켜보고 응원하거나 비난하게 되는 게 아닐까. 홍세화라는 사람은 이미 그 주인공이 되었다. 그 암울했던 시절의 투사였든, 택시운전사이든, 베스트셀러의 작가이든, 비난받는 망명자이든 말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는 아픈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의지를 갖고 그대로 행동했던 인물이다. 그것만은 아직은 역사라는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에 있고, 실제로는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내가 그에게 비난일색의 말을 할 수만은 없는 점이기도 하다. 그가 이 책을 통해 토로해 낸 이야기가 정말 합리화 따위가 아니라 그의 참된 의지였고 노력이었다면. 나름대로의 `지식인` 을 지향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내 자신에게 폄하 받을 만한 행동에 대한 경계로 삼기에도 괜찮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