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사감과 러브레터를 읽고 B사감과 러브레터

? B사감과 러브레터 / 현진건
독서감상문
한 개그프로에 ‘다중이’라는 캐릭터가 나왔던 적이 있었다. 캐릭터의 성격이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을 보이다가도 그 뒤에 숨어있는 이중적인 속내를 드러낸다고 해서 ‘다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시시때때로 인물의 내면과 겉면을 바꿔치기하는 개그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는 극단적인 모습에 가까운 B사감을 통해 인간의 이중적인 성격에 대해서 재미있게 풍자하고 있다.
B사감과 러브레터에 나오는 B사감은 바로 ‘다중이’와 같은 모습이다. 그녀의 겉면은 속마음과 전혀 다르다. 기숙사로 날아 들어오는 모든 편지들을 꼼꼼히 확인하고 검토하다 달달한 러브레터가 보일라 치면 온 몸으로 부들부들 떨어대며 역정을 쏟아낸다. 그리고 나면 그 비련의 여주인공은 즉시 공포의 사감실로 호출된다. 정말 남자라면 치가 떨리는 듯 하느님 아버지를 찾아가…(생략)

어 들어왔을까 궁금해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자고 작정한 세 소녀는 소리의 출처를 따라 나섰다. 그들이 찾은 그 소리 나는 방은 이상하게도 사감실이었다. 누가 대담하게도 아무도 없는 사감실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그 남자라면 치를 떠는 B사감이 그 주인공일 것인가? 안을 들여다본 소녀들의 눈은 그 광경을 조심스레 비추었다.
사감실의 침대 위에는 학생들에게서 뺏은 것으로 보이는 많은 러브레터들이 널브러져 있으며, B사감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주웠다 놓았다 얼굴에 대고 문지르기 까지 하며 남자와 여자의 일인이역을 해댄다. 끔찍한 광경인 것이다. 남자가 되어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다가도, 불연 듯 저쪽으로 돌아서서는 간드러지는 여자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온갖 교태를 부리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여학생들은 쯧쯧, 혀를 차며 B사감을 안타까워한다.
B사감은 학생들에 대한 질투심이나 자질구레한 감정들을 히스테리적인 행동들로 풀어낸다. 글 앞부분에 묘사된 그녀는 늙어가는 것이 두려운 영락없는 노처녀의 모습이다. 자신도 남성에게 사랑받고, 연애해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이미 그녀의 젊은 시기는 지나가고 없다. 시기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외모 또한 매력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속상한 일임은 분명하다.
B사감의 그 ‘러브레터 무찌르기’는 자기보다 새파랗게 어린 여학생들에게 벌써부터 달콤한 사랑의 메시지가 오가는 것이 아니꼬워 보였기 때문에 일어난 치졸한 질투였다. 그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철저히 세기의 독신주의자 인 양 행세하면서. 그 질투심은 학생들을 문초하는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 바라보는 눈빛이 어떻더냐, 어떤 달콤한 말을 속삭이더냐 등등 필요이상으로 남자에 대해 캐물으며 어쩔 수 없는 본능을 내보이는 그녀에게서 살짝 본심을 읽을 수 있다.
밤마다 벌어진 그 B사감의 이상한 행동은 역시 그런 이유에게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많은 러브레터들을 읽어보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침으로서 그 대상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다. 그 불쌍한 모습에, 세 번째 처녀는 동정의 눈물을 흘린다. 얼마나 딱한 처지인가, 하면서.
B사감의 이중적인 모습에서, 그녀가 얼마나 속으로 연애에 대한 갈망을 품어왔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철저하게 자신을 숨겼고 밤이 되면 자유로운 그녀만의 공간에서 낮 동안 억눌린 감정을 마음껏 표출했던 것이다.
비록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나, 그것을 겉으로 끝없이 드러내는 것보다도 숨겨놓고 아닌 척 행세하는 것은 타인이 보기에 치졸하고 역겨워 보이게 마련이다. 내면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B사감처럼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히스테리적인 감정을 내뿜는 것은 그다지 올바른 컨트롤 방법이 아닌 듯 하다.
인간적인 본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므로 그것을 스스로 적절히 억제하고 통제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