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신화 그리스로마신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이번 중간고사를 준비하면서 읽었던 ‘사람의 아들’은 평소 종교와 신에는 전혀 무관하기만 했던 나에게 다시 한번 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 ‘그리스 로마 신화’는 다른 수많은 책들보다도 더 눈에 들어왔다. 이미 예전에 한번 읽어보았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 최근에 출판되어 아직은 못 읽어본 2편을 읽어보고 싶었지만, 과연 1편은 전에 읽었을 때 내가 이윤기 씨가 숨겨둔 수많은 크고 작은 열쇠들을 찾아 제대로 된 상자의 문을 열어보았나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그 때도 이윤기 씨의 들어가는 말에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이야기와 자전거 타기에 비유한 신화 이해하기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테고, 상상의 날개를 펼쳐 신화 속으로 빠져 보려는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지와는 다르게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고, 솔직히 말해서 몇 편의 유치한 이야기들로 해…(생략)

인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란 이 실타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첫 열쇠는 외짝 신발이다. 그는 신화 속 외짝 신발을 ‘신데렐라‘와 ‘콩쥐 팥쥐‘ 이야기로 까지 나아가 그 상징성을 언급한다. 신화를 우리가 잃어버린 신발 한 짝에 비유하며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이를 상기시켜 준다.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의문은 인류가 태곳적부터 궁금해 하던 문제였다. 신화는 이에 대한 웅대한 서사시를 갖고 있다. 천지의 개벽, 신들간의 전쟁이야기 그리고 신들의 탄생 등은 말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정말로 유치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 수많은 신들이 엮어나가는 드라마는 뒷날 인간 세상에서 그대로 되풀이된다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나타난다. 솔직히 말해서 잘은 모르겠으나, 신화가 인간 이해의 열쇠고, 신화 이해의 열쇠가 상상력이라는 것에서 나오는 ’상상력은 인간 이해의 열쇠‘ 라는 결과는 신화의 그 황당무계함과는 달리 너무나도 현실적이기에 신화에 대한 다른 시선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것이 이윤기 씨가 숨겨둔 두 번째 열쇠이다.
세 번째 열쇠 사랑이란, 너무나도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지만,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또 다른 별명이 음탕한 여신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랑의 뒷면에는 육욕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이 음탕한 여신의 아들로서 사랑을 다시 한번 아름답게 승화시키면서 사랑과 마음에서 기쁨이 나온다는 가장 근본적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경시되고 있는 작지만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더 건네주는 것이 신화인 것 같다.
분수도 모르고 태양 마차를 몰았던 ‘변신 이야기’에 실린 파에톤 이야기와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의 경고에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신성한 떡갈나무 숲을 벌목하려 하다가 끝내 걸신병에 걸린 에뤼쉬크톤의 이야기는 생태계 파괴가 가져올 무서운 재앙을 경고하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신화에 대해 더 놀랍게 느낀 것은 과연 어떻게 그 과거 환경 오염과는 거리가 먼 그 시대에 만들어진 신화로부터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 느끼는 신화는 결국은 인간에 의해 씌여진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죽는 데에도 저승의 강을 건널 뱃삯이 필요하다는 저승 강의 뱃사공 론의 6번째 열쇠 이야기는 무슨 일을 하거나 돈을 요구하는 부패한 사회상을 슬쩍 빗대면서 죽음의 문제를 건드린다. 음악의 힘으로 죽음과 지옥을 헤쳐나간 오르페우스가 인간의 약점인 의심과 호기심 때문에 결국 사랑하는 에우뤼디케를 잃지만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예술이 인간을 구한다는 니체의말을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에우뤼디케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다른 여인들의 사랑을 무시하다 그 소름끼치는 복수에 의해 죽게 되는 이야기에서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라는 우리의 옛말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8번째 열쇠 그리스 신화의 대홍수 이야기에서 홍수의 영웅 데우칼리온과 퓌라의 자손인 인간다운 인간과 그들이 뿌린 돌에서 나온 두 종류의 인간이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돌의 자손인가 아니면 인간의 자손인가 하는 의문의 빠진다. 또 여기서 이윤기 씨는 우리의 근원을 돌의 자손에 둠으로써 우리 인간의 강인함을 증명해 준다. 이는 편한 생활에만 익숙해 있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요즘 같은 기숙사 생활에서 너무나도 나태해져만 가는 내 모습에 화살이 날아와 꽂힌 것같이 내 머리를 때렸다. 과연 내가 부산이라는 낯선 곳까지 와서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과연 내가 이 돌의 자손으로서의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흰 뱀, 검은 뱀 이야기는 고대 원시 신앙에서 뱀이 갖는 의미를 다루고 있다. 허물을 벗고는 젊은 몸으로 되살아나는 뱀을 보며 고대인들은 부활의 개념을 생각해 내고 그래서 뱀은 신비롭고 성스러운 동물이라 생각했었다. 의사들의 상징물이 서로 꼬여서 기둥으로 기어올라가는 두 마리의 뱀인 까닭은 뱀이 생명과 부활이 상징이라는 고대 신앙의 믿음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술에 취한 주정뱅이 디오뉘소스를 신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역시 대지의 풍요와 다산 신앙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도깨비 방망이와도 같은 화수분 단지와 풍요의 뿔 이야기, 결국 이 뿔의 의미가 사타구니의 뿔을 거쳐 조선 여인들의 버선으로 이어 가는 부분에서 나는 약간 민망하기도 했으나 작가인 이윤기 씨의 그 상상력에 놀라울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기억과 망각을 제시한다. 삶이란 기억하고 잊고 하는 것이다. 기억에 의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망각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날들에 대처해 나간다. 기억이 없다면 가족과 친구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망각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삶을 꾸려 나갈 창조성을 얻지 못한다.
신화는 결국 우리에게 보이는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가 엄연히 존재함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 같다. 이윤기 씨는 어떤 강의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신화를 우리 삶속으로 끌어들이고 상징을 읽는 삶을 사는 것은 앞으로 살 삶을 미리 사는 것과 같습니다. 신화를 읽는 데에는 세단계가 있는데요. 신화읽기 1학년은 이 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고 2학년은 왜 이 신의 이야기가 있는지 아는 것이고 3학년은 어떻게 우리 삶에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이미 3학년까지 가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중용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측불원(其測不原). 도끼자루를 깎아라 도끼자루를 깎아라 그 깎는 법이 멀리 있지 않다. 신화는 오른손에 쥐고 깎고 있는 도끼자루입니다. 신화라는 것이 아버지가 만든 도끼자루이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이 신화라는 보이지도 않고 말도 안 되는 허구성 짙은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작용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 너무 아쉬웠고, 이번 기회를 통해 신화라는 것, 그 이야기를 넘어 우리의 삶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알아볼 수 있는 타임머신과도 같은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아쉬웠던 점은 겉표지에 나온 ‘우리네 정서’의 의미를 여전히 모르겠다는 것이다. 서양의 신화를 ‘콩쥐 팥쥐’나 ‘도깨비 방망이’, ‘버선’ 등의 연관 시켜보았다는 시도는 좋지만 과연 그것이 서양의 정서를 우리의 정서로 끌어오는데 얼마나 기여를 했을까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을 이번 기회로 다시 읽어보고 나서도 전과 다름없이 생각나는 한 가지는 이건 거 같다. 어쩔 수 없는 유치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사람의 아들에서도 느낀 바이지만 신화란 단지 그 사회의 혼란을 어떻게 해보려고 의지하고 무엇인가를 합리화 시키려는 그 사회 사람들의 억지와 비논리적인 상상의 그럴듯한 결정체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의 아들’에서 민요섭의 마지막 사상으로서 이 모든 것들은 일단 무시하고 정말로 신 그 자체로서 순수하게 생각한다면, 신화 속 나름대로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상징과 의미를 아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이윤기 씨의 의도대로 쉽고 재미있게 신화를 이해하는 길이 될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