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금오신화
한국 최초의 소설로 인정된다는 김시습의 금오신화. 생육신의 한사람 이었던 김시습은 그의 사상들을 작품에 표현하고 있었다. 처음 금오신화를 읽은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기껏해야 3, 4학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나는 만화로 되어있던 금오신화에 대해서 그저 만화책 이라는 느낌밖에 받지 못하였다. 느낌을 받았다기보단, 아무런 생각 없이 금오신화를 만화책으로 받아들이며 읽었었다. 그리고 조금 더 머리가 자란 후,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이 된 지금, 다시 한번 금오신화를 펼쳐보았다. 국어 수행평가가 없었으면 다시 펼쳐보지 않았을 금오신화. 아마도 난, 지금 읽지 않았다면 후회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초등학생일 당시엔 보이지 않았던 여러 신비스러운 점과, 김시습의 사상들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
내가 읽은 금오신화의 첫 작품은 ＜만복사저포기＞이었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만복사 작은 방 한쪽에 …(생략)

장을 넘겼다.
두 번째 작품은＜이생규장전＞이었다. 전반부는 살아 있는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후반부는 산 남자와 죽은 여자의 사랑을 다룬 애정소설로 만복사저포기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이생규장전 역시 개성의 이생과 최씨 여자가 나옴으로써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사람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자주적 성격을 지녔으며, 힘겹게 사랑을 성취하는 과정과 사랑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좌절되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소외된 자의 고독을 표현하였다. 이생규장전에는 여러 편의 시가 나왔다. 주로 사랑을 다룬 내용이었다. 아무리 초등학생일 때보다 컸다고는 하지만 아직 나는 어른이 아니기 때문일까. 힘겹게 성취하여서 죽어서까지 이루려는 그 사랑이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드라마나, 책에서 빈번히 다뤄지는 내용이지만 단지 재미로만 느끼기 때문인지 자주 접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다. 어른이 되면 알 수 있을 거라는 말이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다.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인 ??어른이 되면 다 알수있어.??라는 부류의 말. 정말 어른이 되면 사랑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게 될까?
＜취유부벽정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싱숭생숭한 마음에 세 번째 작품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취유부벽정기.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신비스러운 맛이 느껴져서인지……. 취유부벽정기는 한 남자 상인과 선녀 사이의 사랑과 고국에 대한 정을 담은 애정소설이다. (그러고 보면 김시습은 사랑이란 가치를 중요시 하였었나 보다.)개성 상인 홍생과 선녀가 된 옛 기자의 공주가 평양 부벽루에서 사랑과 고국에 대해 시로 화답하며 즐기고, 선녀와 헤어진 뒤 홍생은 선녀를 그리다 죽어 하늘에서 선녀를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 평양을 배경으로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토속적인 성격과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대체로 수양대군의 단종폐위사건을 빗대어 표현한 작품으로 해석되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점은 느끼지 못하였다. 고국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에서 단종폐위사건을 드러낸 것일까..? 아니면 다른 부분에서..? 난 사랑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런 것조차도 해석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선녀는 옛날 기자라는 나라의 공주라고 하였다. 기자……. 기자라는 나라가 실제로 존재하기는 했었는지, 존재했었다면 어떤 나라였는지 궁금해진 나는 인터넷으로 기자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기자는 리포터를 뜻하는 기자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그냥 김시습의 세계에 존재하는(실제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아름다웠던 나라로 기억하고 싶다.
다음 작품은＜남염부주지＞이었다. 왠지 제목에서 염라대왕 같은 단어를 뜻하는 듯 했다.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내 예감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남염부주지는 김시습의 사상을 표현할 목적으로 지은 듯 하였다. 전반적인 줄거리는 유교의 이념을 숭상하고 불교의 천당지옥설을 부정하던 경주 박생이 어느 날 밤 꿈속에서 저승의 염라대왕을 염부주에서 만나 불교나 유교나 같다는 등의 심오한 이야기를 나누고 크게 깨닫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김시습은 유교나 불교나 모두 같음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난 김시습이 아니기에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그러하다. 유교나 불교나, 혹은 천주교, 기독교. 모두가 발생지나 종교의식들만 다를 뿐이지 결국 본질은 같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 때문에 종교를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귀찮기 때문에..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다.
여러 잡다한 생각을 하며 마지막 작품,＜용궁부연록＞을 펼쳤다. 내가 읽은 책의 용궁부연록 속에는 시가 한편도 실려 있지 않았지만(만화책이다 보니 어린이를 상대로 해서인 듯 했다.)사실은 10여 편의 한시가 실려 있다고 한다. 김시습의 문학적 소질이나 시적능력을 판단하는 데에 좋을 것 같았는데 아쉬웠다. 이 작품은 문사 한생이 꿈속에 용궁으로 초대되어 가서 겪은 일이 주된 내용으로 약간 비극적 성격을 드러내면서 현실과 이상의 대립을 하나의 문제로 제기하여, 자신은 지적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자 하나 세상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데서 오는 김시습 자신의 불만을 나타낸 작품인 듯 하였다. 그때의 세상은 세조의 단종폐위사건으로 인하여 한창 떠들썩한 세상이지 않았을까. 마음껏 재능을 펼치고 싶었으나 부덕한 임금 밑에서 벼슬을 하고 싶지 않았던 김시습의 심정이 이해가 될 듯 하였다. 사람들은 용궁부연록을 금오신화에 실린 다른 작품들과 기본적인 성격은 비슷하지만 문제의식은 깊지 않은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나는 김시습 본인의 처지를 반영했기 때문에 가장 인상에 남지만 말이다.
금오신화를 끝까지 읽고 난 후의 나는, 김시습이 자주 의식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섯 편 모두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워 이야기를 풀어 나갔기 때문이다. 또 자유연애가 허락되지 않았을 당시의 배경에서 죽을 만큼 사랑을 나누는 것은 (어디에서 본 것만 같은 구절이지만→)김시습은 시대를 앞서간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저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절개가 곧은 인간으로 김시습을 알고 있던 나에게 금오신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시 한번 김시습이란 인간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어서 뜻 깊은 독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