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나목
6.25, 우리나라의 아픔이 담겨 있는 그 상황에 대해 그 동안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그 동안 그 시대적 상황 같은 것만 생각하고 별로 느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주인공인 `경아`와 친했지만 `경아`가 사랑하고 일부러 잘 그린다고 소개해준 `옥희도씨`에게 기어이 돈을 주지 않아 사이가 멀어진 여자 종업원은 나중에 알고 보면 아버지 없이 두 잘생긴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사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경아`와 결혼하는 `태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는 수 없이 전구나 갈아 끼우는 직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옥희도씨`도 화가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은 그리지 못한 채 많은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이나 하고 있었다. 자신의 적성이나 특기를 살리지 못한 채 모두 그냥 생기는 일이면, 돈이 된다면 무조건 일…(생략)

데려가 보려고도 했지만 정작 어머니는 아무 관심도 없이 매일 똑같은 반응으로 `경아`를 대해 준다. 그리고 어머니는 매일 오빠들 생각만 하는 것 같다. 나는 나중에 어머니가 깨어나서 어떻게 남자는 하나도 남지 않고 여자만 이렇게 남았나 하며 하늘을 원망한다. 나는 그 시대가 남아선호사상이 짙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마지막 남은 자식을 더 잘해주지는 않고 죽은 사람들만 안타까워하면서 매일 회색 빛으로 지내는 삶이 싫었다. 그런 삶의 태도는 비판하고 싶다.

또 싫었던 것은 미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에게 파티를 공짜로 열어준다고 해놓고 안 좋은 상황을 만들어 그 상황을 구경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읽으며 어이가 없었다. 자신들의 여흥으로, 즐기고자 먹으려고 싸우는 상황을 연출한 것 같았다. 특히 일방적으로 비하하는 그 태도는 그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경아`가 집으로 가면서 가장 싫어했던 길, 무너지고 온통 회색 빛같이 느껴지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어두운 길, 아마 그 길은 지금쯤 번화한 거리가 되어있을 텐데, 예전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분위기가 상상되었다. 우리 국토의 수난…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경아`는 자신을 꼬시는 외국인에게 몸을 맡기고 `이젠 되었다`라는 포기하는 감정으로 있다가 "돈 브레이크 미!! (Don`t break me!!)"라며 거부하게 된다. 이 때 느낀 것은 왠지 `경아`가 우리나라로 비유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제 수난은 그만 당하고 싶다는 우리 조국의 울부짖음 같았다. 상황은 확연히 다르기는 하지만 아마 그 때의 우리 땅이 느끼는 느낌은 같지 않았을까 한다. 짓밟히고, 전쟁으로 황폐화되고…더 이상은 부서지기 싫다는 우리나라의 외침 같았다. 하지만 `경아`가 실질적으로 왜 그랬는가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나에게 주는 가장 큰 감상은 온통 주위가 회색 빛으로 느껴진다고 할 때의 `경아`가 나와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왠지 같은 일상의 반복과 별로 자유시간을 갖지 못하는 우리는 주위가 온통 회색 빛으로 보인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같은 감정은 아니지만, `나도 그런 느낌을 가진 적이 자주 있었는데…`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경아`는 `옥희도씨`를 사랑하고 사귀면서 `옥희도씨`가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고 선택해주길 바라는 갈등을 한다. 하지만 그의 부인 때문에 질투도 한다. 자신을 쫓아다니는 `태수`에게 자신은 `옥희도씨`와 사랑하는 사이라고 자부도 한다. `옥희도`씨는 자신이 `경아`를 사랑하고 있지만 그것은 `경아`가 자신의 삶에 색깔을 찾아주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나중에는 결국 `경아`는 `태수`와 결혼을 하게 된다. 나중에 `태수`를 닮은 두 아이를 낳고 `태수`와 함께 그제야 인정받은 죽은 `옥희도씨`의 미술 전시회에 간다. 그 곳에서 `경아`는 예전에 미완성으로 본 `옥희도씨`의 완성 작을 보게 된다. 그 그림에 대해서 느낀 것, 모습에 대하여 말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나고 있다.

이 소설은 실제로 작가 `박완서`가 만나본 화가를 대상으로 쓴 작품이라고 했다. 하지만 작가 자신이 그 분에 대해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완전히 재구성하여 쓴 작품이라고 했다. 아마 화가 `옥희도씨`가 대상이었던 것 같은데, 어떤 느낌으로 쓴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가장 비슷한 부분은 `옥희도씨`가 화가로서의 자신을 알기 위하여 고민하는 그런 장면인 것 같다.

시험이라는 부담 때문에 약간 강제적으로 읽은 책이지만, 이렇게 조용하고 고요하게, 급격한 감정의 변화 없이 뭔가를 느끼며 읽은 적은 별로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역사의 한 장면보다는 그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연 어땠을까 하는 의문을 한번쯤 던질 수 있는 그런 생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