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멋대로 해라를 읽고나서 네멋대로해라

네멋대로 해라를 읽고
언젠가 신문에서 `네멋대로 해라`의 광고를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그땐 그야말로 아무생각없이 보면서도 아아~ 이 언니가 자퇴생인데 그 경험을 쓴 거로구나.. 라고만 막연히 생각했다. 그땐 책이 나온지 얼마 안된 1999년이었고, 난 그때 초등학생에 불과했다. 나에겐 학교라는 울타리는 편안하고 안전한 것이었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마냥 즐거웠으며 학교에 공부하러간다 라는 개념도 전혀 없었다. 뭐 학교가 아니더라도 공부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학교라는 것이 도망치고 싶은 공간이 된다는 것은 절대로 상상할 수도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광고를 보고도 전혀 아무런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넘겼었다. 그리고 그 후로 4년이 흘렀고 난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의 광고를 처음 봤던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나는 이 책이 어떤 내용이라는 것만 듣…(생략)

일이 되어 있었고,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좋아하는(존경하는) 감독들과 배우, 영화들의 목록을 내 머릿속에 채워놓고 있었다. 난 어렸을 때 부터 책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고 솔직히 편독(?)하는 경향이 많긴 하지만 책읽는것에 그다지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 편이다. 어릴 때는 `라이온 킹`을 여러번씩 보며 매번 눈물을 글썽였고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 전에도 이야기를 스스로 생각해 내는 것을 굉장히 즐기는 편이었다. (초등학생때 매번 잠자리에 누워서 잠들기 까지 내가 했던일은 그날 본 TV 만화의 다음 줄거리를 내멋대로 구성하는 일이었다.) 지금도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에 어울리는 장면을 머리에 떠올리거나 특이한 소재가 생각나면 공책에 적어두거나 하는 것을 즐긴다. 그런 나기 때문에 당연히 영화를 찍어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있고 얼마전에 우리학교 영화써클에 들까도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그만두었다. 하지만 김현진은 내가 그토록 해 보고 싶은 일인 영화를 찍다가 학교에 환멸을 느끼고 그만두었다. 나는 이렇게 정신이 딴데 팔려있으니 사실 공부에 그다지 취미가 있는것도 아니고 학생으로서의 의무감정도만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다. 게다가 영화를 만드는데 꼭 일류대학에 들어가야해? 라는 다소 삐딱한 생각도 가지고 있다. 이런 내 앞에 영화를 찍으려다가 학교의 반대에 부딪혀 학교를 자퇴하고, 여러가지 활동을 하다가 영상원에 합격한, 이 김현진이라는 사람의 행적은 나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했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그녀를 동경하는 마음한편에 나는 절대로 저렇게 할수는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왠지 서글펐다. 물론 그녀의 길이 꼭 옳았다고 할 수 는 없는 것이고, 인생을 사는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 것이니까 내가 그녀같이 못한다고 해서 내 인생에 뭔가 큰 걸림돌이 생기진 않겠지만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고, 그렇다고 진짜로 자퇴할 생각을 했다고 하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난 분명히 그녀처럼 모범생인`척`하지만 스스로는 그다지 모범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뭐든 확실히 하려고 하긴 한다. 선생님 말씀은 일단 잘 듣고 교칙도 잘 지키며 나에게 맡겨진 일도 확실히 한다. 이건 모범생의 기초덕목이긴 하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 이외에는 그다지 모범생`틱`한 면이 있는진 잘 모르겠다.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젠나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왠지 모르는 반항심이 들끓곤 했으니까. 단체기합을 받거나 체벌을 받을때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한적은 거의 없었다. (사실 진짜로 내가 잘못해서 벌받은 적은 그다지 많진 않다.) `혼자놀기`를 좋아하는 특성탓에 그다지 사교적인편은 못 되었던 나는 나를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분명히 성실하고 조용한 모범생으로 비추어졌을지도 모른다. 김현진은 모범생인척하면서(그녀도 어느정도는 모범생의 기초덕목을 갖추고 있었다) 결국 그 센 `깡`으로 선생님에게 당당히 대들기도 했지만 나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만 대들었고 김현진의 행동은 내가 언젠가 한번씩은 마음속에서 꿈꾸었던 것들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세상에, 김현진은 내가 언제나 마음속에만 묻어두었던 것들을 직접 실현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같이 앙칼지고 매사에 확실하며 깡다구 있는 성격도 아니고 어쩌면 그녀만큼 머리가 좋지도 않다. 나는 못했지만 그녀는 했다- 이 사실이 나로하여금 이 책을 묘한 기분으로 보게 만들었다.
그녀가 책에서 말한 것들은 청소년들, 그리고 학교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는 학교를 그만두면서 잃은 것이 많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녀가 그려낸 학교는 분명 바람직한 모습을 하고 있진 않다. 난 솔직히 그녀가 다닌 학교가 좀 심한 편이고 우리학교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자유가 많이 보장되고 널널한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대한민국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상 어느정도의 공통분모는 있다. 고등학교 1개월차인 내가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진 별로 없지만 벌써부터 우리를 찍어누르고 있는 대학입시로부터의 압박감과 수많은 과목들, 7차 교육과정에 이르러 오히려 늘어난 수업시수, 그리고 귀가 후 학원에서의 제 2차전까지... 고등학교에 1개월간 다니고 느낀 것은 앞으로의 험난한 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뿐이었다. 물론 처음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어 느끼는 설레임과 새로움을 빼고서는 말이다. 불합리한 학교의 행정 시스템과 그로인한 선생님들을 수업준비 외의 잡다한 업무, 당연히 그것으로 인해 선생님들의 수업준비가 충실히 되기 힘들다는 점은 엄마가 선생님인 나로서는 당연히 중학교때부터 뻐져리게 느껴왔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교실에서 공부하면서 추위에 떨고 더위에 몸서리쳤던 것이 벌써 몇년인가. 돈내고 와서 공부하면서 이런 대접을 받는가에 대한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나마 고등학교 오니까 교실에 에어콘이 있길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했지만 중학교 시절 내내 선풍기 몇대로 먼지 풀풀 날리며 한여름을 나던 그때의 끔찍함(?)이 새삼 억울하게 느껴졌다. 그런 대접을 받는것에 대해 불평은 많았으면서도 왜 우리가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억울한 마음 그 이상의 것을 떠올리지 못했다는 것이 의아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단지 학교의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머리모양 스타킹의 색깔 구두의 모양 그 밖의 그 모든것들을 구속받으면서도 나의 마음 속 한켠에는 학생이니까, 당연한거야. 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있었던 것 같다. 어느정도의 현명한 대처방식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난 복장불량으로 걸린적이 한번도 없다. 단순히 타협하면 되는 거였다. 굳이 반항을 하고 학생부에 끌려가고, 그런 에너지 낭비 시간낭비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느꼈다. 그냥 지키면 편한것을, 지킨다고 내가 어떻게 되는것도 아닌 것을, 이런 생각을 하면서 교칙에 대해 속으로 궁시렁궁시렁 생각하면서도 그냥 지키고 살았다. 어쩌면 단순히 귀찮아서였을지도 모른다.
`학생의 인권`, 왜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지 모르겠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거늘, 학생도 엄연히 인간이고 대한민국 국민인 것을, 지금까지 난 학교의 구속에 너무나도 익숙해지고 길들여져 있어서 우리가 선생님들에 의해 선도라는 이름하에 개인의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해본적이 없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도 어쩌면 어른들이 바라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싹해졌다. 조금 어긋난 이야기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난 도덕이라는 과목이 싫다고. 도덕교과서는 어른들이 원하는 우리의 모습을 제시한 책이다. 어른들이 마치 우리를 그들 뜻대로 그렇게 `올바르게` 살길 바라며, 우리를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가길 바라며 우리의 생각의, 행동의 틀을 그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일정범위내로 구속해 버리기 위해 쓴 책이 도덕교과서라는 약간은 과장된 생각을 하면서도 왠지모르게 억울한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배움의 주체는 분명 학생인데 당연하게도 학생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교육현실이다. 반쯤은 반항심 섞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지금 우리는 무언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왜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은 우리와 똑같은 나이인데도 우리보다 훨씬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가. 그래서 결국 그들이 우리보다 잘못되는 것도 아니다. 오리혀 더 성공하기도 한다.
.... 이러한 억울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면서도 나는 이 쳇바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결국 나는 이곳에 있는 것이다. 하다못해 내가 지금 열받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결국 길게 보면 대학입시를 위한 것이지 않은가? 주어진 상황에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만 가끔은 김현진처럼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피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아마 그 피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거다. 그건 용기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에겐 나만의 길이 있다고 믿어서이기도 하다. 나하나의 힘으로는 이런 거대한 교육시스템에서 `탈락`하는 일 이외에는 피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이 현실과 타협을 하며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고 확실히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나에게 대리만족을 주고, 그리고 오히려 빠져나오지 못할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주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절망감이 꼭 나쁜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오기를 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즐기게 될 수도 있으니까. 꼭 지금, 고1때는 아니더라도 성인이 되어서 이 사회에 나가서는 나도 김현진처럼 내가 꿈꾸어왔던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그런 용기를 이 책은 나에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