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읽고 느리게산다는것의의미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읽고>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피에르 쌍소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허둥지둥 바쁘게 움직이는 생활에서 결연히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낡은 가치들 중에서도 가장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느림`이다. 그에게 있어 느림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다. 느림은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다. 느림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나이와 계절을 아주 천천히 아주 경건하게 주의 깊게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지혜가 있다. 그것은 갑자기 달려드는 시간에게 허를 찔리지 않고, 허둥지둥 시간에게 쫓겨 다니지도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로 알 수 있는 지혜이다.
우리는 그 능력을 `느림`이라고 불렀다. 느림은 우리에게 시간에다 모든 기회를 부여하라고 속삭인다. 그리고 한…(생략)

화급함의 순간 나는 매양 묻는다. `나는 무엇을 쫓고 있는가? 나를 쫓아 오는 것은 무엇인가?` 때론 `나도 쉬고 싶다!`라는 고함을 지르고 싶다. 그 흔한 광고 문구인 `차 한잔의 여유`는 여전히 멀리만 느껴진다. 왜?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뒤쳐지면 안돼, 남 보다 앞서야 돼!` 라는 식의 원인모를 경쟁심이 공휴일에도 내 머리 한 꼭지를 차지하고 있다는데 있다.
그런 까닭에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 제목, 내 마음이 갈구했던 책의 목차는 내 눈에 쉽게 들어왔다. 포도주 한 잔의 지혜, 모데라토 칸타빌레... 얼마나 아름다운 소제목인가....
그러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참으로 느리게 읽히는 책이다. 문장도 문장이고, 스타일도 스타일, 번역도 번역, 그리고 인쇄도 인쇄 나름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자의 세상에 대한 시각, 상황, 대응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는 사뭇 우리(아니면 내게만)의 그것과 많은 편차가 있었다.
저자는 한가롭게 거닐고, 고급스러운 권태가 필요하며, 한잔의 포도주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접근은 도저히 공감하기 힘들었다. 우리는(적어도 한국은) 유럽, 특히 프랑스와는 여러 가지 여건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저자의 문장은 법정스님, 이해인 수녀, 아니면 피천득님의 그것처럼 간결하고 담박하지 않다. 저자는 그의 책이 느리게 읽히기를 원했던 것일까?
서평이라는 것이 항상 책과 저자와 그 사상에 대한 감복과 예찬으로 덮여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 맞는 책은 누구에게는 지겨울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다이아몬드가 원주민에게는 그저 반짝이는 돌일 수밖에 없으며, 원주민의 멧돼지 이빨은 우리에게 그저 짝 잃은 이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내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그저 제목이 아름다운 책이었다.
유태인들의 학살지였던 한 감옥에서 살아남은 단 한명의 유태인은
"내게 희망을 준 것은 감옥 창가에서 밀려들어온 햇살과 그 햇살에 춤추던 하얀 먼지들이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것이 진정한 여유가 아닐지.. 가장 절망스러운 상황일 때 찾는 여유.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행복.. 흔히 바쁘게 살아가며 마음으로 쫓기는 사람들이 말하는 삶의 고통이란 여유를 느끼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
우리가 땀흘리며 살아갈 적에 이마에 동그랗게 와닿는 순박한 햇살이나 흐뭇한 달빛에 매력을 느끼며 한번 하늘을 쳐다보는 그 것이야 말로 피에르 쌍소가 말한 느리게 산다는 의미인 것 같다.
또 한가지 요즘 나오는 쓰레기 문학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내게 특히 와닿은 구절이 있다. 그것은 바로 루이르벨송의 말을 인용한 부분이었다.
"내가 50세라는 산봉우리를 넘어서야만 비로소 제대로 될 수 있을 것이며, 그러기 전까지는 작품에 필요한 도구들을 절대로 갖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젊었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
마음으로 쓰는 글. 경험이 축적된 여유있는 글. 멋진 말이 아닌가. 작가 지망생들의 정신을 깨우쳐 주고, 더 앞서 진한 감동으로 와닿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작가 지망생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조급함을 반성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