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읽고 다다를수없는나라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읽고,.
여름 한낮,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나의 계절이 보인다. 벚꽃 만발했던 봄은 아직도 등 뒤에 있는데 내 발은 어느새 뜨거운 여름볕을 밟고 있다. 발등을 기어오르는 여름볕이 온몸을 달구면 나는 문득, 가을의 문턱에 서 있게 되겠지. 시간은 그렇게 나를 아주 문득인 것처럼 급속도로 계절의 문턱을 넘게 만든다. 계절의 틈새마다 고여 있는 삶의 냄새를 나는 훗날 모조리 기억할 수 있을까?
이 책 크리스토프 바티이유의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읽은 후 나는 괜스레 마음이 고즈넉해져 버렸다. 우울도 슬픔도 아닌 이상야릇한 감정에 젖어 시간의 형체를 파악하려 마음의 눈을 한껏 떠보았다. 그러자 어딘가로 치달아 가는 나의 계절과 시간이 보이는 듯했다. 아무것도 싣지 않고 그저 투명한 빛깔로 흘러가는 시간들이 말이다. 이 책이 내게 준 선물이 있다면 바로 그러한 상태를 경험케 했다는 것이다.
베…(생략)

그들이 추구해오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기타 감정의 이물질들을 모두 버리고 순백의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던 그들. 서로에 대한 깊은 갈망과 사랑으로 항상 붙어 다니던 그들은 육년 뒤 한날 한시에 죽게 된다.
옮긴이 김화영 님의 표현대로 이 소설은 만남을 찾아가는 망각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선교사들 이야기 외에도 베트남 황제 칸도 등장하는데 그들은 모두 소설 속에서 죽고 잊혀진다. 망각은 죽은 이들에 대한 기억을 허용치 않으며 또한 온갖 가치들을 무화시켜 버리는 독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만남이란 소설을 읽은 독자의 마음에 따라 각기 다르게 해석되어 질 것이다. 내 경우에 있어 만남은 삶의 본질과의 만남으로 해석되었다. 시간의 그물에 걸려드는 온갖 잡스러운 것들을 배제해 버린, 극도로 텅 빈 상태, 그런 상태가 삶의 본질이라면 말이다.
인간이란 결국 어딘가에서 흘러나와 어느 순간 또 어딘가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 존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인간은 온갖 허물을 벗고 시간에 얹혀 천천히 흘러가기만 하면 된다. 시간과 계절의 틈바구에 고인 삶의 냄새들은 망각의 늪에 떠내려 보낸 채로.., 오로지 우주가 들려주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말이다.
여름 한낮 내 마음은 여전히 고즈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