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를 읽고 달과 6 펜스

달 과 6 펜 스 (the moon and sixpence)
많은 사람들은 자신 안에 또 다른 ‘나’를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실제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또 다른 내가 이따금씩 나타나 우리에게 희망과 아쉬움을 남기고는 깊은 내면 속으로 사라져 버리곤 한다. 많은 세월 속에 이제는 늙어버린 할머니의 마음에 풀밭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던 어린 소녀의 모습이 함께 들어 있듯 , 조금도 일상의 여유조차 찾기 힘든 샐러리맨에게 본인조차 몰랐던 요리에 대한 재능이 숨겨져 있었듯이 말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반복적이고 약간은 지루하기도 한 일상에 파묻혀 자신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간과하고 모른 척 지나쳐 버리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형식적인 ‘나’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내면의 자아를 발견한다고 해도 시간적, 공간적 여유를 핑계로 무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하…(생략)

. 여기에 화가"고갱"을 모델로 했다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이 찾았던 새로운 삶에 대한 메시지가 하나의 반증을 제시해 주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의 표현, 진리에 대한 영원한 탐구를 하는 데는 자신을 얽매이게 하는 세상의 규칙과 법들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자신의 삶에서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서머셋 모옴’의 소설 ‘달과 6펜스’에 등장하는 인물인‘찰스 스트릭랜드’는 참으로 묘한 운명을 가진 화가이다. 이 소설은 소설가인 ‘나’라는 인물이 그와 만났던 이야기에서부터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가 원했던 진정한 아름다움의 표현이 무엇인지를 그와의 대화와 만남, 또는 그가 만났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들려준다.그 이야기들을 통해 보면 ‘스트릭랜드’는 분명히 호감을 가질 수 없는 별난 사람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도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에게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삶의 이야기가 결코 단순하지 않고, 그의 삶의 목표가 결코 범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인 기질이 엿보였던 미켈란젤로와 같은 인물도 아니었고 어렸을 때부터 심지어는 땅에까지 그림을 그릴 정도였던 밀레와 같은 인물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는 화가가 되려고 마음먹기 전까지는 미술과는 연관성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인물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런던에 거주하며 증권 거래소에 나가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다정한 아내와 귀여운 자식들을 가진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었던 것이다. 아내는 문인들과 교류하며 기쁨을 얻는 사교적인 인물임에 반해 그는 무미건조하게 생업에만 몰두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건실한 가장이 편지 한 통만을 남겨 놓고 연락도 없이 홀연히 파리로 떠나는 사태가 벌어진다. 1년 전부터 그는 자신이 애타게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준비해왔으며, 이젠 가정을 절연한 채 오로지 예술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던 새로운 자신을 깨우쳤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처음에는 기초적 혼란 감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그 혼란 감은 그를 일시에 판이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고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외로운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뒤로 그는 아무에게도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다.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세상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그런 이방인과도 같은 존재 같았다. 그렇기 때문 에 어떤 것도 그가 그림을 그리는 것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 그는 아무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 속에서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최상의 아름다움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극도의 가난과 불편 속에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고 타인과의 교제와 남의 이목 또한 상관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아파도 신경 쓰지 않았다. 때로는 그런 책임감 없는 행동이 잔인함과 극악함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의 세상에 대한 무관심함과 부주의함이 나를 너무 화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 몰인정한 사람이 다 있을까... 그러나 그토록 미워하던 사람에게도 한편으로는 측은함이 들 듯이 그에게 늘 동정 어린 시선이 쏟아진 이유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림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림 밖에 없었던 사람.. 그림에 목말라 하고 그림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있던 영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스트릭랜드`는 신비로운 타히티 섬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비로소 그의 예술적 본연인 원시적인 건강성, 일체의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사물을 발견한다. 격식이나 윤리를 요구하지 않고 가식적인 대인관계가 필요치 않은 그 곳은 그가 추구해왔던 미의 조형에 몰두 할 수 있는 낙원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까지 그림을 통해 아름다움의 추구를 하였다고 한다. 그 노력으로 빚어진 그의 그림들은 후에 루브르 박물관에 걸릴 만큼 매우 유명하게 되었고 그 또한 천재적인 예술가로써 오늘 날 많은 이들에게 알려 지게되었던 것이다.
나는 처음에 스트릭랜드가 고갱을 모델로 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스트릭랜드와 어떤 예술가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어렴풋이 느껴졌지만 타히티 섬에 그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막연한 짐작으로만 미루어져 있었고 그가 도착한 후에는 조금 더 빨리 알아채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스트릭랜드가 실존 인물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대한 흥분감이 벅차 올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트릭랜드가 고갱을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한 천재 예술가에 대한 경배심에 가려 한 인간의 내면으로부터의 억지스럽고도 당연한 변화의 미동을 눈치채지 못할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는 스트릭랜드를 바보스럽고 괴팍한 성격의 이기주의자인 인물로 밖에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자기 예술에 대한 극심한 희생과 찬양, 그리고 뜨거운 열정이 점차 그를 보게 하는 나의 시각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꿔놓았다. 평범했던 인간으로부터 일종의 경건함까지 들게 했던 그의 모습까지 스트릭랜드의 일생은 참으로 대담했던 것 같다. 만약 그가 고갱이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에게 인간적으로 묘한 감동을 주는 스트릭랜드의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는 것은 고갱의 삶의 단편적인 한 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찰스 스트릭랜드는 고갱의 소설 속 분신이기도 하지만 완벽한 동일 인물은 아니다. 그래서 내가 고갱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을 하고 그의 삶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이 살았던 삶을 보았을 때 내가 느낀 감상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스트릭랜드의 무모한 용기와 강한 집념과 의지에서 나오는 어찌 보면 신성함과 광기의 뜨거운 열정을 마음으로 느꼈고 결코 그것이 헛된 것이 아니며 나도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용기와 집념과 의지를 가질 수 있는 일과 어떤 계기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만약 내게 그런 일과 계기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가 있을 자리라고 생각해 왔던 삶을 버리고 순식간에 새로운 삶으로 전환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런 계기가 생긴다면 나는 미련 없이 속세적 인 것을 모두 버릴 수 있을까? 갑자기 안정된 생활과 직업..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이 애타게 찾는 그 무언가를 위해 그 동안 쌓아 왔던 것들을 희생할 수 있을까? 나는 아마 그럴 용기가 없을 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날 용기도, 어두운 곳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견뎌낼 자신도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 자신이 한없이 약해 보이기도 했지만 모든 미련을 버린 그가 약간은 외로워 보이기도 또 한편으로는 그럴 용기를 가진 것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스트릭랜드처럼 자신의 삶의 궤도를 완전히 바꾸지 않아도 새로운 삶의 가치를 표현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생각된다. 예술로써 표현 할 수 있는 가치는 매우 많지만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비단 예술 뿐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활의 모습이나 성격으로부터 표현될 수도 있다. 그런데 물질 중시의 풍조는, 생활을 통한 자기 표현이 자기가 문명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로 성공하지 못한 생활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도시에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안정된 생활을 하던 의사가 가난한 시골 벽지 에 와서 약하고 빈곤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료진료를 하며 한평생을 보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 사람이 별로 성공한 삶을 살지 않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남을 위한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넉넉하고 평안한 노후를 맞고 싶다는 모순된 생각을 대부분 갖고 살아가는 것 같다. 서머셋 모옴도 이 모순에 대해서 부정적인 눈치이다. 이러한 모순이 새로운 ‘나’를 이끌어 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불합리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일상적인 생활에 얽매여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어설프게 자신이 만들어 놓은 좁고 답답한 공간에서 탈출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몫이다. 나의 무한한 용기와 의지를 일으키게 하는 일과 계기가 다가오기를 막연히 바라며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내 스스로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찾으며 그 가치를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내게 확고한 지표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릭랜드의 의지와 신념을 꼭 닮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내 삶의 존재이유를 제시해주는 구원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