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노먼 베쑨 닥터 노먼 베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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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07-19

닥터 노먼 베쑨 닥터 노먼 베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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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노먼 베쑨


질병을 돌보되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작은 의사라 하고,
사람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보통의사라 하며,
질병과 사람,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그 모두를 고치는 의사를 큰의사라 한다고 했다.
닥터 노먼 베쑨 그가 사회주의자가 되기 전까지 그는 소위 잘 나가는 의사였다. 토론토 대학 의과대학을 다니던 중 1차 대전이 시작되자 캐나다 군대에 참가했고 부상을 당해 다시 캐나다로 돌아왔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런던에서 수련을 받는 동안 그림을 사고 파는 등의 일을 하며 생계에 보탰다. 11살 많은 여인과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한 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의사일을 시작했다.
가난과 우여곡절 끝에 명성을 얻을 무렵 결핵에 걸려 죽음을 앞두게 되었다. 이혼하여 부인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삶을 마감하려했다. 그러나 어느 의학 잡지에서 결핵의 새로운 치료 방법을 읽고서 자신에게 그 수술을 해달라고 했다. 흔히 쓰지 않는 모험 같은 수술법으로 한쪽 폐를 못쓰게 하는 대신 결핵을 치료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베쑨은 결핵을 연구하면서 세계적으로 흉부외과의 권위자가 되었다. 몬트리올에서 결핵환자등을 돌보며 의사생활을 하였다.
아무리 치료를 해서 돌려보내도 가난한 환자들은 위생적이지 못하고 결핵걸린 사람이 많은 자기 동네로 돌아가면 다시 병에 걸리기 일쑤였다. 치료기술 이전에 의료제도와 사회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사회의료(사회주의의료, socialized medicine)을 캐나다에 도입하자고 주장해서 의사집단에게 왕따를 당했다. 하지만 나이 서른 아홉에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최고의 흉부외과 의사로서 돈 잘 벌고 있던 노멘 베쑨에게 인생의 새로운 장이 펼쳐졌다.
스페인이 내전에 휩싸이자 당시 스페인으로 달려간 국제주의자들처럼 노먼 베쑨은 고심 끝에 1936년 11월 마드리드로 갔다. 부상자가 후송도중 피를 많이 흘려 죽는 것을 보고 세계 최초로 이동식 구급차(노새가 끄는)를 도입하고 수혈을 하는 혁신적…(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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