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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과 현재
`달과 6펜스`를 읽고
아내와 두 아들이라는 안정한 가정과 주식 회사 사무원이라는 평범한 직업을 가진 찰스 스트릭랜드는 갑자기 집을 떠난다. 이유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위해 현재의 편안한 삶을 모두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남은 생을 그림만을 그리며 보냈다.
하나 밖에 없는,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삶을 사는 데에도 사회 구조라는 것에 억눌려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 별로 좋아하거나 재미있어 하지도 않은 일을 단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계속 반복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나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닐까?
아직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과학은 내 적성에 맞는 학문일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약간의 능력과 가능성이 보인다고 무턱대고 과학을 하는 것은 아닐까…(생략)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면 나는 `맞은` 것이다. 하지만 내 것보다 더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이나 규칙이 있다면 나의 것은 `틀린` 것이 되어 버린다. 내가 만든 모델이 지금 `맞은` 것이라 해도 앞으로 나는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은 다르다. 예술은 내 마음을 표현하고 남에게 전달하는 학문이다. 그렇기에 나의 작품에 내 마음을 거짓됨 없이 충분히 담았다면 나는 언제나 맞다.
나는 예술 중에서도 앤드류 로이드 웨버처럼 작곡을 하고 싶다. 예술을 크게 나누어 보라면 미술, 문학, 음악이 있을 것이다.
미술에서, 내가 만든 작품은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다.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내 작품 원본을 보기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의 생각을 느끼기 힘들다. 그에 비해 문학은 많은 사람들이 나의 생각을 더 쉽게 느낄 수 있다. 내가 자필로 쓴 것과 지구 반대편의 공장에서 인쇄되어 나온 것은 똑같다. 문학은 글씨가 나타내는 생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말이 나타내는 생각을 보는 것이니까.
노래들은 대체로 가사로써 문학의 시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음악 중에서도 노래는 문학의 장점을 갖는다. 거기에 음악에는 장점 하나가 더 추가된다. 더 많은 사람들의 느낌이 들어갈 수 있다. 내가 어떤 곡을 작곡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듣는 것은 나의 느낌 뿐이 아니다. 연주자에 따라, 노래 부르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곡이 나온다. 시대가 지나도, 그 시대의 경향에 맞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가능하므로 시대에 뒤쳐지지도 않는다. 게다가 뮤지컬 이나 오페라 같은 것은 각 인물이 처한 상황을 동작으로도 나타내 주므로, 잘못된 번역으로 생기는 어색함을 줄여 주고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내가 보지 못했던 음악의 단점이나 기타 분야의 커다란 장점도 있겠으나, 이러한 이유로 나에게는 음악, 그 중에서도 작곡이 가장 이상적이다. 왠지 음악을 통해서 라면 내 생각의 많은 부분을 다른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작곡하고 싶은 음악은 김민기가 작곡한 노래들 같은 음악이다. 동요같은 느낌의 단순한 가락을 사용하는 곡. 성악곡처럼 샾과 플랫이 사방에 붙어 있지 않고 두껍게 울리는 목소리가 필요로 하지 않으며, 가요처럼 내가 힘든 높은 음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누구나 금방 따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락 속에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사가 들어 있다. 가사 안에는 현재의 슬픔, 그것을 극복 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특히 그 노래들을 김민기 자신이 부를 때면 울음이 터질 것 같다. 나보다도 더 낮은 음역을 사용하는 기교가 하나도 없는 목소리. 음과 박자만 완벽하게 맞춘다. 하지만 오히려 절제된 표현 속에서 더 많은 슬픔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김민기의 곡들을 많이 접해 보면서 동요 같은 쉬운 가락을 사용하고 기교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대중성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중성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찰스 스트릭랜드가 과거의 것을 모두 떨쳐 버리는 장면이 어떤 면에서 멋있기는 하였지만 스트릭랜드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많았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자기가 자신에 관한 것을 모두 던져 버리는 것은 그 사람 마음이다. 그러나 처음 집을 떠날 때에 아내와 두 자식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아내와 두 자식들은 스트릭랜드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들이다. 스트릭랜드 없이는 그들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특히 아이들은 그들이 원해서 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라 스트릭랜드와 아내의 의지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체이기에, 나는 스트릭랜드가 그 아이들에 대해 권리와 함께 커다란 의무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스트릭랜드는 이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였다.
또 스트릭랜드는 병에 걸린 자신을 치료해 주는 사람의 아내도 빼앗았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 정당한 행위일까? 찰스 스트릭랜드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그런 행동을 했을 때 발생할 일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만약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사회 구조에 관여 받지 않을 경우 내가 정말 무엇을 할 것인지를 깨닫는다 하여도,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와는 조금 다른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사회 구조에서 벗어나고 현재를 완전히 떨쳐 버리는 것보다는, 사회 구조와 현재를 내가 원하는 것에 맞춰 바꾸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을까? 가령, 내가 작곡을 한다고 할 때 나는 지금까지 해 오던 과학 공부를 모두 잊어버리는 것보다는, 음과 진동수의 관계 같은 지식들을 응용하여 선율에서의 어색한 부분을 고치는 데에 사용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과거에 열심히 공부했던 모든 내용을 내 목표에 쏟아 부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안정한 삶을 유지하는 데에다가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의무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내가 잃는 것은 하나도 없다.
찰스 스트릭랜드가 죽기 직전, 아직 완성하지 못한 그의 전 인생을 불어 넣은 그림을 태우라는 부분은 정말 안타까웠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완성하지 못한 그림은 발표하지 않는 것. 그것은 그림을 그린 사람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상당히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그 자신도 원하지 않을 것이고 전체 사회에도 크게 바람직하지 못하니까. 나라도 완성하지 못한 그림은 공개하기 보다는 태우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럼에도 매우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완성했더라면, 아니면 완성이 덜 되었더라도 한 번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찰스 스트릭랜드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것저것 나에 관련된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분명히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와는 다르고, 순간순간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할 것이다. `현실을 피할까`, `현실을 나에게 맞추어 바꿀까`와 같은 상황에서.
그래도 과학을 하든 음악을 하든, 한 가지 찰스 스트릭랜드의 기본 정신은 그대로 이어 갈 것이다. 육체적 편안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돈 몇 푼, 6펜스보다는, 내 마음과, 다른 많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가득 채워 줄 저 하늘 높이 달에 다가가기 위해 앞으로의 인생을 살 것이라는 것. 빛을 비춰 주면 6펜스도 빛나고 달도 빛나지만, 동전은 나만 볼 수 있고 녹이 스는데 비해, 달은 모두가 볼 수 있고 영원히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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