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를 읽고

돈키호테를 읽고
"유럽인으로서 돈키호테를 읽고 소화하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 라고 T.S 엘리어트는 말했다. 이 말은 이 작품이 유럽인의 정신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돈키호테처럼 시대를 초월하여 만인으로부터 환영을 받아왔고 또 그 환영받는 이유도 가지각색인 작품도 드물 것이다. 작가 자신도 작품 속에서 아이들은 뒤적거리며, 소년들은 읽으며, 어른들은 이해하며, 노인들은 칭찬하니, 요컨대 이 책은 만인의 손때가 묻고, 연구가 되고 알려진 바 되어, 여윈 말이 지나가는 것만 보아도 "저기 로씨난떼가 간다"고 외칠 지경이라고 스스로 자기 작품의 위대한 보편성을 자부하였다.
이야기는 라만차 (스페인의 지방이름) 의 어느 마을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마을에는 시간과 돈의 대부분을 먹고 입고 기사수련에 관한 책을 탐독하는데 쓰는 귀족이 살고 있었다.
가…(생략)

간섭한 까닭에 더 불행하게 된 사건에서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자기가 바라는 대로의 세계가 정말 실현된 듯이 행동하겠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관념이 현실인 듯 행동한다. 그는 둘씨네아 아가씨에 대해서 환상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둘씨네아가 있는지 없는지 알 바 아니다. 나는 단지 그 아가씨가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개인의 자유로운 실존이 사물의 사실성을 앞선다는 철학관 적인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돈키호테는 광인이 아니라 집념의 인간으로 보는데 옳을지도 모른다.

보통 돈키호테적 인간과 햄릿 적 인간을 대립 시켜 전자를 생각 없이 행동만 하는 타입으로 보기도 후자를 행동 없이 생각만 하는 타입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돈키호테의 철학적인 모습을 생각지 않은 얄팍한 상식론에 불과하다. 이에 비하면 돈키호테의 최후는 확실히 구슬프기 짝이 없다. 이상 추구 적인 용사의 말로가 보잘것없는 시골 홀아비 지주로 돌아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비애감을 준다. 인생이란 그래서 비극이란 말인가?

그러나 한편 그 임종의 장면은 자아의 정화가 성취되는 승리의 순간으로 볼 수 있다. "집에 계셔서 재산을 돌보시며 자주 고해성사를 하시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세요" 하고 가정부가 그에게 충고한다. 이 평범한 충고는 보통사람에게는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할 것이지만 환상과 가상으로 가득한 우주의 신비를 탐색하고 돌아온 피곤한 이상주의자에게는 귀중한 충고가 될 수 있다. 우리의 긴 여행은 고향의 아름다움을 새로이 발견하게 해줄 때 가장 의의가 있다. 내가 가진 진리로 일단 그것으로부터 떨어졌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것을 진리로 알아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합리적이고 냉철한 똑똑함 때문에 스스로 함락해 가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한번쯤은 어리숙한 돈키호테가 되어 달려가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저 거침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풍차 속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