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를 읽고 박완서의 두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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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11-03

두부를 읽고 박완서의 두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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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증언자로서의 작가

처음 읽어보는 박완서씨의 수필이었는데 나에겐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할 거리들을 주는 글들이었다. 그중 첫째는 작가가 자신의 언어에 관해 언급한 내용이었다. ("내 안의 사대주의 엿보기")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면서도 충격적이었던 것은, 내가 `박완서의 글을 읽어야겠다`라고 생각한 이유가 바로 `한국의 언어`를 찾기 위해서였는데, 박완서 그는 자신의 언어수행이 일본어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래, 한국어 말살 정책을 역사 교과서 속에서 들어는 봤으나 그 정도로 우리의 혼인 언어를 성공적으로 말살시켰었는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나의 아버지도 한글로 된 책보다 일본어책을 더 쉽게 읽으시고 나이가 드실수록 일어책만 읽으시는 걸 보면서도 이 나라의 언어를 책임지는 작가들은 다른 줄 알았었다. 그래서 요즘 너무 번역본을 많이 읽고 있다는 자책감에, 그리고 요즘의 젊은 작가들 역시 번역체의 글들에 물들어 우리 언어의 진득한 맛을 못내고 있다는 생각에, 우리 언어의 원형을 찾기 위해 박완서로 눈을 돌려보고자 했던 것인데, 그마저 온전치 못한 언어로 고민하는 세대였다니...
그렇다면 우리의 언어를 찾기 위해선 1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말인가? 한국인의 20세기 언어를 대표하는 작가를 우리는 갖지 못했다는 것인가? 결국 일제 36년의 영향은 한 세기를 통틀어 미치는 것이며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갈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닌가? 정말 커다란 실망이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작가의 오빠 세대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정도 남겨주고 있지만...) 그렇게 실망하고 나니 <두부> 속의 다른 글들을 읽으면서도 그의 언어의 온전치 못함이 자꾸 불쾌하게 다가왔다. 왜 활자로 된 글에서 "거였다," 이런 불온전한 투를 쓰는 거지? "--처럼이나" 이런 말도 있나? "만큼이나"가 아닌가? "골통"은 또 뭐람... 그나마 나를 감동시켰던 단 한 구절은 "째지게 곱고 앙증맞은 옛날 채송화"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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