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전을 읽고 만세전2

나는 평소에 근대 소설은 잘 읽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고대 소설을 읽고 말겠다. 고대 소설에는 도술도 부리고 변신하고 하는 기이한 것들 때문에 재밌고 흥미진진한 맛이라도 있지, 근대 소설은 각종 서양 문화가 밀려오는 개화기, 일제 강점기 때 주로 지어진 것이라 대화도 제대로 이해가 안되고 내용도 이해하기 힘들어 두 세 번은 읽어야 겨우 내용 이해가 갈 정도로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수능 언어영역에서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 읽는 것을 차일피일 미뤄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염상섭의 `삼대`라는 소설이 이해하기는 조금 난해했으나 각각 다른 성격, 사상을 지닌 삼부자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방학 때는 내가 조금 등한시했던 근대 소설을 주로 읽자고 다짐했기 때문에, 예전에 삼대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도 있고 해서 주저 없이 이 `만세전`이라는 책을 읽게되…(생략)

이 가는 부분도 많았다. 느낌도 달랐다. 자신의 나라를 빼앗은 나라에서 공부해야만 하는 굴욕과 고통, 그러한 모순 아닌 모순이 그들에게도 괴로웠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공감이 가게 되었다. 내가 `당시 지식인들은 현실 개혁의지가 없는 바보같은 놈` 이라고 비난은 했어도, 만약 내가 그 당시의 지식인이라고 상상해보니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내가 3.1독립 선언서를 발표한 민족대표 33인처럼 용감하고 현실 개혁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혼자서 적극적으로 개혁을 부르짖는 것은 내가 생각해봐도 좀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 경찰들의 감시도 심해서 쉽게 그렇게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지식인들의 모습이 이 책을 읽은 후, 내게 더 절실하게 느껴지고 지식인들의 고뇌가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것 같았다.
동경W대학 문과에 재학중인 주인공 `이인화`는 시험 기간 도중 아내가 위급하다는 형님의 전보를 받지만 이상하게 슬퍼하는 기색도 없고 도덕을 가식만 넘치는 위선이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가는 듯 보였다.
게다가 정말로 부인의 병이 위독한 것은 안중에도 없는지 곧장 가지도 않고 가는 도중 도중마다 여자를 만나러 다니니 나로서는 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지식인이라면 이성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가는 곳마다 일본 경찰들에 의해 시달리고, 배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요보` 라고 놀려대며 매매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일본인들의 이런 말을 들으며 민족의식을 느낀다는 둥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다. 오히려 그런 말을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어야 한다고 말하다니 약간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나는 만세전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부분의 부인의 죽음과 정자에게 보낸 편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 개혁의지나 혁명을 일으킬 마음이 확실히 드러난 것은 아니나, 적어도 나에게는 정자와의 관계를 정리하려는 듯한 내용의 편지는 그 동안에 복잡했던 여자 관계를 청산함은 물론 자신의 의식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리고 아내가 죽었을 때, 처음에는 담담한 이인화였지만 나중엔 아내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정자를 일본이라고 보고 아내를 우리 조선이라고 본다면, 더 이상 조선 현실을 무감각하게 보지 않겠다는 개혁 의지와 각성 의지가 조금이나마 보이는 것이 아닐까?
내가 조선의 과도기적 시기를 직접 겪어보지 못하여 솔직히 이 책의 내용을 정확히 다 이해했다고는 못하겠다.
내가 당시 시대를 직접 경험해 봤다면 작가의 의도와 당시 지식인들의 심정을 더 잘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 우리는 이인화같은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생 정도면 이제는 아는 것도 많고 불의과 정의도 구별할 줄은 알지만, 용기가 없거나 보복이 무서워서 실제로 정의를 행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가만히 있으면 나에겐 아무 해도 없는데 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나 역시 많이 그래왔다. 그러나 만세전을 읽고 나서 많은 것을 느꼈다.
우리도 이인화처럼 한탄만 하다 세월을 보내는 쓸모 없는 지식인이 되는 것보다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지식인답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수수방관하는 자세보다는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지행합일`을 실천하는 길, 옛 선비들의 정신을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