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을 읽고 모순

모순
소설의 화자 나, 안진진은 대학 휴학 중 건축 회사 사무원으로 일하며 김장우와 나영규 두 남자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는 25세의 여자다. 그녀의 가족은 술주정뱅이이자 집 나간 지 몇 년 동안 소식 없는 부랑자 아버지와 시장에서 양말?속옷을 팔아가며 가족의 생계를 잇는 억척스러운 어머니, 그리고 제대 후 여자 문제로 조직의 보스 노릇에 여념 없는 철없는 남동생 안진모 이렇게 셋이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와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어머니와는 상반되는 풍족하고 평온한 삶을 사는 듯 보이는 이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고 성실한 이모부, 그들의 딸 주리와 주혁 이 넷은 안진진이 갖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진 이들이다.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 그에 따른 극심한 빈곤 등으로 안진진은 세상에 냉소적이며, 사랑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모부처럼 완벽하고 성실한 나영규와 아버지를 연상시키는…(생략)

`이모의 삶`을 나영규는 제공해줄 것임을 알면서도, 그녀가 사랑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김장우는 그런 삶을 주지 못할 것이기에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 할하면서 살아 갈 것이다. 되어가는 데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프롤로그 부분에 ??안진진??이 하는 말이다. 이름에서부터 무엇인가 모순 되었다. 진짜가 두 번이나 쓰였는데 성이 안씨라니 정말로 진실이 아니란 말인가. 쌍둥이로 태어나 똑같은 얼굴을 하고는 선을 본 타이밍의 차이로 엄마는 시장 밑바닥의 삶을 이모는 우아한 사모님의 삶을 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거기다가 자식들의 행세까지 비교 당하니 어머니가 불쌍 할만도 한데 그녀의 어머니는 씩씩하기만 하다. 남편의 잦은 구타, 가출에도 불구하고 군말 없이 시장에서 일하시고 남동생이 사고 쳐도 군말 없이 수습하는 모습은 절망에도 무너지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그에 비해 우아하고 아름답고 고운 이모의 모습에서 화려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생명력은 없어보였다. 자식들이 똑똑하고 잘났어도 이모의 자식들에게서는 이모부와 똑같이 정이 없어 보였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바보 같은 인상이 들었다. 이 점을 부각시켜 주인공의 삶을 부각시키고 싶었나보다. 화려함 뒤에도 이면이 있다는 것을.
결국 마지막 반전처럼, 어머니와 이모의 인생처럼 정말로 진실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안진진??은 이 모든 것을 다 지켜보았음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려고 마음 먹었을까? 결혼은 역시 사랑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모님에게서 느끼고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모부와 비슷한 사람을 택한 진진의 선택은 뒷맛이 씁쓸한 커피를 마신 기분이 든다. ??사랑은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도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등?? 이런 기분 때문에 사랑을 포기한 그녀는 과연 어머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님 이모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될까.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에 자신의 생각을 바꿔서 말한다. ??인생은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 된다.?? 그래 실수는 되풀이 된다. 항상 틀린 것을 또 틀리는 그런 실수를 반복한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삶... 그래서 그녀가 추구할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어제도 오늘이고 오늘도 오늘이고 내일도 오늘인 삶.. 스파클이 파파박 터지는 듯한 놀라움이라고는 털끝 만치도 없는 삶.. 그 삶을 사는 그녀를 보며 나같은 사람은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샘도 하고 하나의 핑계꺼리라도 잡아 욕하기도 하겠지.. 그런 멸시 아닌 멸시, 부러움 아닌 부러움 속에서 어제와 하등 다를 것 없는 오늘을 살아내기란 너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정신적으로 이상을 나타냈을 지도 모른다. 오늘에 갇혀버린 자신이라니... 이어지는 하루하루에서 탈출할 방법을 그녀는 죽음이라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래.. 이렇게 풀어놓고 보니 이제야 그녀를 알겠다. 죽음이라도 없었더라면, 그녀는 생지옥에서 몇 십년을 더 죽은 채로 살았어야 했다. 그래.. 차라리 죽은채로 무덤가를 떠돌며 자유롭게 세상 구경하는 편이 그녀에겐 더 더 나았으리라..... 불쌍한 그녀..... 이제야 진진의 이모에 대한 연민이 싹튼다.
그런 면에서 보면, 너무 생에 닳고 닳은 진진의 어머니는 행복한 사람이다. 작가가 피력했듯이... 남편복 자식복 지질이도 없는 사람, 그러나 그녀는 그런 남편도 자식도 버리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그녀만의 방법으로 복은 아닐 지라도 화는 당하지 않으리라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아다시피 장사에 찌든 몸을 이끌고 책을 보고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진진의 어머니는 이것들을 해낸다. 한순간 과장법을 통해 이겨내지 못할 무서운 것이 찾아온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또 금방 툭 털어내고 해결책을 찾아 책방을 현장을 돌며 최선을 다한다. 그런 그녀의 삶에 진보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퇴보는 없었다. 그리고 해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그녀는 하루도 심심할 날이 없었다. 아마 그녀의 머리 속에는 `심심`이라는 단어가 지워졌을 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대조적이면서도 또 같은 진진의 이모와 어머니의 두 삶.. 작가가 의도한 것처럼 나는 그녀들의 삶에서 인생의 모순, 세상의 모순을 느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방패와 가장 강한 창을 동시에 팔았던 장삿꾼이 그것이 모순인 줄을 알고 입을 꾹 다문 것과는 반대로.. 난 이 모순을 느끼며, 진진이처럼 인생은 참 살아볼 만한 것이다.. 라는 것 그것... 그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